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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梵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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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3년 03월 133호
아마도 이 땅의 백성만큼 종을 가까이 한 풍속, 삶의 양식을 지니고 사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어찌보면 고난 많은 역사의 터밭에서 삶의 한恨 같은 소리들이 이 종소리에 스며 서리서리 녹아 있다고 해도 별로 부족하지 않으리라. 단지 몇 마디로 종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종에 관한 얘기들은 이 땅에 삶을 부지하는 흰옷 입은 백성들, 그 생명의 뿌리 같은 그런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멀리는 저 신라의 불국토 토함산 구비구비를 돌아 서라벌의 온 누리에 울려 퍼졌던 애린愛隣의 전설을 담고 있는 황룡사 에밀레(성덕대왕신종)종에서부터 가까이는 우리의 새벽 같은 희망을 담고 있는 보신각 종소리, 이 모든 소리들이 이 땅의 백성들 가슴의 숨결로 면면히 녹아 흐르고 있지 않을까.

문종성 번뇌단 聞鍾聲 煩惱斷
이지옥 출삼계 離地獄 出三界
지혜장 보리생 智慧長 菩提生
원성불도 중생 愿成佛 度衆生

우리의 사원는 이렇게 날마다 종소리를 새벽의 산사에 울리면서 이 종소리 들어 사바세계의 무성한 번뇌의 파도를 고요롭게 잠들기를 기원한다. 또 얼키고 설킨 힘든 세상 가시텀불 헤치고 나갈 슬기로운 지혜를 길러서 보리(깨달음)의 마음을 내게 하며 이 땅의 고난과 아픔의 한을 여의고 삼계의 윤회를 훌훌 벗어나 모든 백성이 다 부처 이루도록 축원하고 있는 것이다.
청매화 봉우리 벙긋대는 이른 새벽의 봄날 해인사 구광루 연화문 문살을 통해 깊게 가라앉은 종소리의 여운들은 아마도 저 깜깜한 혹암지옥의 광경들도 기뻐 옷깃을 여미리라.
그리고 다시 태어날 희원希願의 생을 숨죽이며 기다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