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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별이 사라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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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 스님 추모 - 진명 2002년 02월 240호
임오년 초하루를 보내고 방송국에 일찍 나와보니 보도부 기자들은 이미 해인사로 가서 큰스님의 열반에 관한 소식을 계속 보내오고 있었고 제작부 식구들도 바쁜 움직임이었다.
큰스님 가시는 그 길에 나는 어떤 인사와 음악으로 배웅을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았다.
스님은 이미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 드셨는데 거기에 또 어떠한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어떠한 말이나 음악은 다 남아 있는 우리들의 위안일 것이다.
그렇듯이 현상계에 남아서 호흡하고 있는 우리는 어떤 매개체로 그 허전함을 채우려고 한다.
가끔 큰스님들의 열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시는 길을 배웅하는 나만의 곡이 있다.
요절한 러시아의 작가 레르몬또프 (Lermontov 1814~1841)의 시에 곡을 붙인 ‘나 홀로 길을 가네’ 라는 곡이다. 이 곡에서 나는 생의 미진함 때문에 허허로움과 생을 달관한 나그네의 충만함을 함께 느낀다.

나 홀로 길을 가네 돌이 많은 길은 안개 속에서 반짝인다.
밤은 고요하고 황야는 신의 음성에 귀 기울인다.
별은 다른 별에게 소곤거리고 있다.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장엄하고 놀랍다!
대지는 맑고 푸른 빛 안에서 잠들어 있다.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것을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이미 삶에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의 일에서 어떤 후회도 없다.
나는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모든 것 잊고 잠들고 싶다.

음악이라는 것은 같은 곡을 감상할지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또 사람의 감정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는 법이다. 이 곡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감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을 다 잠재운 열반의 그 충만한 자리에 나는 이 곡을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으로 헌공하고 싶었다. 큰스님의 영결식이 거행되던 날 수많은 종도들의 소리없는 탄식과 가야산에 깃들어 사는 뭇 생명들이 노래하는 열반송를 들으시며 큰스님의 법구는 연화좌대에 처연히 오르셨다.
만장이 수놓은 가야산은 연화장세계가 되었고 타오르는 불꽃으로 생사거래生死去來가 없는 자리를 보이시며 그렇게 가셨다. 비록 육신은 허공에 놓으셨지만 수행자의 눈이 되고 길잡이가 되는 가르침으로 남으신 큰스님을 생각하며 모기윤 시, 김희조 작곡 ‘해인사 인경소리’를 베이스 이요훈의 노래로 전파에 실었다.

한밤의 인경 소리 숲 속에 은은한데 아름다운 명산 가야 우뚝 솟은 절경이라.
돌층계 밟고 올라 송림 속 다다르니 귀한 보물 팔만장경 지니오신 해인사라.
홍류동 흐르는 물 은이요 옥이옵고 정다운 멧새소리 청산이 비파련가.
달 뜨는 저녁하늘 번져가는 염불소리 옛 어른의 숨결인 양 그윽히 들리는구나.
봄, 여름 기화요초 비단이요 향기러니 가을바람 타는 단풍 이 아니 선경인가.
진세의 공명 잊고 깨끗이도 살꺼이다.
내 마음에 스며드는 해인사 인경소리

이제 가야산의 봄비로, 이름 모를 꽃향기로, 눈부신 가을 단풍으로, 순백의 겨울 눈으로, 홍류동 골짜기 계곡의 청아한 물소리로 그렇게 오셔서 후학들에게 길이 해인사의 인경소리 되어 간단없는 정진을 경책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