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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늘 손수 지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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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 스님 추모 - 연기영 2002년 02월 240호
평생을 수행이 철저하고 자신을 엄격히 지키시는 큰스님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해인사를 찾아간 것은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종단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지식인 불교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경기대 고준환 교수, 서강대 박광서 교수 등과 교수불자연합회를 창립하려고 뛰어 다닐 때이다. 우리 교수불자들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창립 기념법회에서 증명법사로 모시고 법문을 해 주실 선지식을 찾고 있었다. 그 때 우리 교불련 임원들은 만장일치로 해인사 부방장으로 계시던 혜암 큰스님을 모시기로 하여 처음 친견하게 되었다.
큰스님을 직접 친견하기 전에는 체격도 상당히 우람하고 위엄이 있어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 뵙는 순간 평소 상상했던 혜암 스님과는 판이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몸집도 작고, 깡마른 체구에 유난히 눈빛이 맑고 깨끗하여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자상한 어버이 같이 말씀하시면서도 엄청난 힘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시간만 나면 해인사 원당암을 찾았다. 처음에는 진짜 눕지 않고 정진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와 하루 한끼만 먹는 일일일식一日一食을 하며 수행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큰스님 계신 곳을 찾아 다녔다.
호기심으로 가서 철야정진을 자주 하다 보니 유발상좌가 되고 말았다. 96년부터는 재가불자들의 참선수행을 위해 달마선원을 신축하여 매년 하안거, 동안거와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에 철야 용맹정진을 큰스님이 직접 지도하셨다. 선의 생활화, 대중화에 남다른 애정을 쏟으셨다. 한 사람이라도 올바른 공부방법을 가르쳐야 된다는 사명감이 투철하신 분이었다.
흔히 큰스님들이 가지고 계시는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정법선양을 위한 교화방편으로 늘 자상하고 부드럽게 가르침을 주셨다. 누가 찾아와도 시간만 있으시면 사회적 지위나 직업에 관계없이 만나서 올바른 수행방법을 가르쳐 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조계종 종정에 취임하시고 난 후에 우리 도반들과 인사만 드리기 위해 뵌 적이 있다. 그 때 큰스님께서는 장장 7시간 쉬지 않고 법문을 해 주셔 모두들 놀랜 적이 있다.
물도 한모금 마시지 않고 그동안 수행하시면서 체험하신 일화들을 소개하시면서 시종일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일러 주셨다.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으면 무엇보다도 공부에 대한 용맹심이 저절로 솟아나곤 했다.
큰스님을 자주 뵈면서 참으로 인간적이면서도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잠시도 잊지 않으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사를 늘 손수 지니고 다니셨다.
큰스님을 모시고 다니면 어려운 일도 저절로 풀리곤 했다.
지난 1997년 가을의 일이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한국의 달’ 행사에 불교문화사절단 60여 명과 함께 독일로 모시고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독일사람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려 주는 각종 행사가 한 달 동안 열렸다.
우리 교수불자연합회가 주관하여 불교문화예술제를 개최했다.
공연, 전시회도 있었는데 특히 큰스님 법문이 독일인들에게 대단한 감명을 주었다.
가을의 독일날씨는 주로 비가 많이 오고 음산하다. 그런데 그 당시 행사기간 동안에는 우리 나라 가을 날씨처럼 화창했었다.
함부르크주 정부의 관료들이 농담으로 ‘혜암 스님의 원력으로 한국의 좋은 날씨를 독일로 가져왔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진정으로 큰스님은 온화하고 소박한 성품을 지니셨지만, 내면은 활화산처럼 수행의 법력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늘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