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왜 데모를 하는지 모르겠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청사자의 소리 - 윤영희 1987년 08월 66호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이 민주화 조치 8개항을 ‘높으신 어른’께 상신(上申)하고 그 상신을 시혜를 베풀듯 근엄하게 수용하겠다던 7월 1일의 기자회견을 들으면서 지각있는 많은 이들은 두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는 6월10일 이후 지독한 최루탄 개스에 온 몸이 쓰리고 물집이 생겨도 이번에 또 어물쩡하게 넘어가면 이 땅에 민주화는 영원히 안올 것이라는 비장한 각오로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목청껏 외치던 국민의 힘, 그 역동성에 대한 한없는 기쁨이며, 또 하나는 국민 앞에 사과 한번 할 줄 모르는 집권자의 뻔뻔스러운 권위에 대한 분노의 감정 그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이 시점에서 과거의 잘못된 것을 굳이 들추어내어 잘못을 밝히는 게 무슨 소용이 었겠읍니까만 두번 다시 없었으면 하는 일이기에 꼭짚고 넘어 가야만 하겠습니다.
보름 가까이 진행되고 있던 온 국민의 노도와 같은 민주화 열기를 희석시킬 속셈을 갖고서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김 영삼총재와 각 당총재 및 김 수환 추기경을 두루 만나 ‘사실상 호헌철회’라는 어정쩡한 말로 넘어 가려고 안간힘 쓰던 때에 우리 불교 또한 큰스님 세 분이 청와대로 초청되었읍니다. 아! 그런데 앞서 만난 많은 이들이 민심이 이미 떠났음을 알렸고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했으며, 연일 보도되던 수만명의 집단시위, 십이만 경찰력의 한계 등을 통해 국민의 뜻을 신문 몇 조각으로도 알 수 있을 때 “왜 데모를 하는지 모르겠다”던 큰스님의 말씀은 불교 자체가 민주주의이며 민족과 전통을 같이해 온 민족종교라는 뿌듯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불자들의 가슴에 상처를 입혔으며, 또한 민주화를 갈망하며 싸우던 시민과 학생들 모두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읍니다.
큰스님께서는 불법연행되어 물고문으로 죽임을 당하고 그 범인까지 은폐조작하는 일을 겪은 우리 종철이 법우가 눈앞에 어른거리지 않으신지요? 의문의 죽음을 당한 신 호수 씨 등 청년 노동자들의 사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일이며 고통받는 이들과 같이 살아 가겠다고 ‘위장’ 취업했던 권양의 성고문사건 등의 일들을 잊었단 말이신지요? 민주주의를 부르짖다 최루탄을 맞아 사경을 혜매고 있던 한열이 소식도 물론 접하지 못하셨나보군요. 그토록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이땅에서 왜 데모를 해야만 하는지를 그래도 모르셨다는 말입니까? 큰스님 ! 세계의 독점자본이 한 몫 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몰려드는 이땅의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뼈빠지게 일해 좋은 수확올려도 제값 못받아 찌들어 가는 농민들의 삶, 환경미화란 명목으로 보금자리를 강제철거당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의 고통, 그밖에도 너무나 많은 이 땅의 모순들을 보고 부처님의 제자인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명약관화한 것입니다. 그것은 현실에 영합하지 않으며, 정권에 아부하지 말고, 중생의 불정을 믿으며, 중생이 자기의 고(苦)에서 떨쳐 일어날수 있도록 계도하며 동사(同事)하는 자세가 아닐런지요.
6.10 대회 이후 연일 계속되는 민주화를 외치던 현장 곳곳에 스님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은 곳은 없었으며, 현장을 지도하시며 우리의 갈 길을 시민·학생들에게 꾸ala없이 내 보이시던 모습, 사복 전경에게 무참히 맞으며 끌려가던 학생들을 손수 구해주시던 모습, 6월 20일 조계사 앞에서 보여주셨던 스님들의 의연한 자세 들은 명동성당에서처럼 시민들과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듯한 신부님들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며 시민들에게 감명을 주었읍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9. 7 해인사 승려대회 이후 성숙해가는 불교의 사회참여로 인해 불교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된 이 청년 불자는 가슴 뭉클하였읍니다. 이러한 훌륭하신 스님들의 노고를 자랑하지 않고 옥의 티를 너무 크게 부풀린 것같은 기분에 미안한 감을 가지면서, 9.7 해인사 대회 때에 큰스님이 하신 범문을 끝으로 촌고를 마칩니다.

“불교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해 호국불교의 개념을 특정 정권 아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바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