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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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자의 소리 - 이장호
1987년 08월 66호
6.10 이후 봇물 터지듯 분출되는 일천만 불교도를 포함한 전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도도한 장강을 이루면서 피사현정(破邪顯正)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국민적 저항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미 ·일 외세의 사주와 지원 아래 4천만 국민들의 절실한 요구를 외면한 채 끊임없는 억압의 칼날을 휘둘러 온 현 정부는 6.26 평화대행진 이후 독재의 아성에 소리없는 자기붕괴의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8.15 이후 민족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외세를 등에 업은 매국 독재정권이 이 땅에 들어선 이래로 독재권력은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국민들의 자발적인 의사표시와 민주적인 제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요구 행위에 최루탄 난사와 고문, 살인, 투옥 등으로 일관하여 응답해 온 현 정부의 부도덕성, 비정통성은 전 국민들의 ‘고뇌에 찬 중대 결단’에 밀려 민중의 대해(大海)에서 표류·함몰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서 일천만 불교도의 이해와 전 국민들의 고통의 소리를 외면해 온 우리 불교계의 지도적 인사들은 부처님 전에 머리숙여 참회하고 중생의 고통에 화답하는 진정한 불보살로 환생하기를 촉구하고 싶다. 또한 이것을 계기로 우리 불교도도 가일층의 정진과 불퇴전의 용기를 가다듬어 정토구현의 그날까지 힘차게 나아갈 것을 기대한다.
한편으로 작금의 축제 분위기 같은 현 상황에 대해 우리 불교도는 물론 전 국민들은 배전의 경각심을 가지고 사태전개를 예의 주시해야 하리라본다. 민정당과 정부에서는 6.29 노태우선언과 7.1 대통령담화라는 것을 발표하여 직선제 개헌 등 야권의 주장을 전격 수용하면서 마치 민주화의 주역이라도 된 듯 제도언론을 조작하고 갖은 생색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6.29 선언은 바로 전 국민들의 민주화투쟁의 성과물로서, 노태우 대표가 주머니에서 꺼내준 시혜적 선물은 결코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의 7년 학정에 대해, 광주 민중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사건에 대해, 수많은 용공조작, 고문, 살인사건 등에 대해 일언반구의 공개적인 사과나 반성의 빛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민족의 영웅, 민주화의 기수 운운하는 점이 바로 민주화의 앞길에 짙은 암운을 드리워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남한에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는 미국 행정부의 내정간섭 행위가 그 극에 달하여 6.29선언의 배경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6천만 민족의 생존권을 일천여기에 달하는 핵무기를 배치하여 위협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민족의 이해를 지켜내야 할 한국군의 작전권을 거머쥐고 군사 쿠테타의 위협 속에서 몸을 움츠리게 하는 미국의 존재는 이땅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장애요인이 되는가에 대해 자문해 보아야 한다. 레이건의 친서를 휴대하고 태평양을 넘나드는 미국 관리들의 입김은 진정 이 땅의, 이 민족의 민주화와 민족통일에 얼마나 부정적인가를 심각하게 반추해 보아야 한다.
이 땅의 민주화는 수입개방 강요, 보호무역 강화 등으로 민중들의 생존권을 철저히 유린하려 드는 미국 행정부의 친서와 내정간섭 등으로 결코 달성될 수 없다. 더구나 민족 종교로서의 불교의 민족사적 위치를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민족의식의 마비, 퇴폐적 양키 저질문화의 도입 등으로 일천만 불자를 공분케 한 장본인이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라 할 때, 우리 불교도는 미국의 공작정치와 내정간섭에 의해 국민들의 민주화열망을 호도, 기만한 6.29선언, 7.1 담화 이후의 정국변화를 우려하면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민족의 분단을 영구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일체의 사상, 이데올로기, 문화, 정치행위 하나하나를 철저히 극복하지 못할 때 민족자주는 허구이며 민주화는 언제든지 침범, 유린될 수 밖에 없다. 파사현정, 정법수호의 기치 아래 민족통일의 역사적 책무를 완수해야 하는 우리 불교도는 민족의 자주화와 민주화, 민족통일의 차원에서 온갖 사악한 마구니들을 정법의 칼로 단죄해 나가 정토구현의 신 새벽을 힘차게 달려나가야 하리라. 민족종교를 자부하는 불교가 이 민족의 고통의 근저에까지 파고들지 못하면 어찌 민족 종교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 현실이 민족분단에 의해 크나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안다. 이산가족의 고통, 핵 공포, 전쟁으로부터의 공포, 과다한 군사비, 반공 이데올로기의 획일화로 인한 자유로운 학문, 사상의 봉쇄 등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전가받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분단상황을 주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외세 민족 자주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하는 양 가장하지만, 민주화를 위해 군의 정치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리하여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민족분단의 영구화라는 미국의 사활적 이해에 부합될 때에 한해서이다. 피사현정의 철퇴를 반민족의 매국세력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