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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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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송복 1990년 02월 96호
죄수들에게 가장 가혹한 벌이 독방에 혼자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혼에서 가장 불행에 처한 여자를 독수공방(獨守空房)하는 여자라고도 말한다.
이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빈방[空房]이든 가득 찬 방[滿房]이든 혼자 있게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장 어려운 일이다. 요사이는 텔레비전, 라디오 혹은 VIR이라는 것이 있어서 혼자서 지내기가 아주 수월하도록 돼 있다. 흔히 말하는 무료라든지 권태가 잘 안 일어나도록 생필품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을 가장 꺼리고 가장 두려워한다.
요사이 어디서나 고스톱이라는 화투놀이가 유행하는데 이도 따지고 보면 혼자 못 있는 사람들의 습성에서 온 것이다. 옛날에도 사람들이 사랑방이나 머슴방에 모여 잡담을 나누며 홀로 있는 어려움을 풀었는데 그래도 심심하면 새끼를 꼬든지 가마니를 찌든지 술추념을 하든지 그러고도 모자라면 화투놀이 집고땡이들을 했다.
지난번 시골에 가 보니 이젠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함께 섞여 고스톱 놀이를 하고 있었다. 세상 참 많이 달라졌구나하는 생각에 앞서 사람들 정말 ‘홀로 있기’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났다. 옛날에 비할 바 없이 홀로풀이 도구( TV )가 누구 집에나 다 놓여 있는데도 그것 가지고는 홀로 있는 어려움이 끝내 달래지지 않아서 결국 고스톱판으로 나온 것이라 생각하면 ‘홀로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물론 요사이 고스톱은 사행심리로, 투기심리로 돈 욕심에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심심풀이 달램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 자체가 사회적 동물이어서 혼자서는 결코 못 살도록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설혹 먹고 업는 것이 해결된다 해도 시간 자체를 혼자서는 못 메우도록 돼 있다. 호랑이처럼 홀로 살지도, 지내지도, 못하도록 돼 있는 동물이 사람이다.
시간은 요구하든 요구하지 않든, 좋든 싫든, 반기든, 거역하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오게 돼 있다. 이 오는 시간이 싫으면 그냥 흘려 보내도 시간이 뭐라고 사람에게 꾸지람하거나 반응하지 않는다. 시간은 그저 말없이 왔다가 말없이 갈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시간을 마냥 의식하고 그 시간에 이래, 저래 반응을 드러낸다.
이 시간을 의식하고 이 시간에 반응을 드러내는데 참 묘하게도 사람들은 여럿이 합쳐서 하려고 한다. 혼자서 의식하고 혼자서 반응하는 것을 가장 두렵게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것이 그래서 중요시되고 그래서 또한 가족이라는 제도가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서 가장 수명이 길고 그 수명은 결코 다함(盡)이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또한 가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상태, 아내가 없거나 남편이 없거나 부모가 없거나 자식이 없거나 한, 불완전 가족을 사람들은 불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가족이 제대로 다 갖추어진, 아내도 남편도 부모도 자식도 다 구존(具存)한 완전가족 속에 사는 사람도 공휴일의 홀로 지내는 무료함을 달래지 못해서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같이 지내줄 친구를 찾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수 없어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마도 거의 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특히 나이 쉰이 훨씬 넘는 친구들 중에서 이런 친구들이 주위에 대다수인 것을 보며, 그것도 시간이 갈수록 더한 것을 본다. 참 인간이란 볼수록 재미있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인다.
요사이는 65세가 넘어 정년 퇴직하는 선생님들을 많이 보고 또 많이 만나게 되는데 이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총의(總意)는“아직도 얼마든지 더 가르칠 수 있는데…”라는 끝을 흐린 유감의 뜻이다. 어떤 분은 듣기 민망하고 안타까울 정도로 정년을 거부시하고 부정시한다. “고생스러이 나와서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이젠 안 가르쳐도 연금도 나오니 홀로 앉아서 연구하면 얼마나 편합니까”라고 하면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한다.
한평생 내내 사람을 상대로 살아오다 보니 홀로 물러나서 지낸다는 것 그것이 이만 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분은 정년을 바로 사형선고라고 까지 말하기도 한다.
학문이란 대개 혼자 연구하는 것이고 따라서 학자들은 보통사람과 달리 홀로 있는 것이 잘 훈련된 사람들이며 습관화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홀로 물러나 있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나도 예외일까 하는 생각이 요사이는 종종 일어난다. 그것도 지천명(知天命)이라 해서 하늘의 명이 무언지 깨닫는 나이라는 쉰을 넘어선 지도 수년이 지난 지금 이런 생각이 이는 것은 무슨 까닭에서일까? 지천명이란 홀로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나이라는 뜻일까.
사실 지금까지는 예외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그렇게 한번 주장해 보고 싶을 정도로 혼자 있는 것을 더 즐기고 더 탐해 왔다. 혼자만 내버려 두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일년이고 이년이고 얼마든지 즐거이 지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내내 해왔다.
더구나 요 근래에는 해외의 명문대학에서 학위를 하고 돌아 온 제자들이 십 여명이나 되고 더더구나 그들이 시간강사 자리 하나 얻으려 동분서주하는 것을 보면 빨리 빨리 세상이 가서 정년퇴직하자는 생각이 더 절실히 있고 어떤 때는 정년 전에 그만 물러나서 홀로 즐길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히 이는데, 이 생각을 아내에게 넌즈시 건네보면 아내는 펄쩍 뛰는 정도가 아니라 얼굴을 금새 새파랗게 해서 당신 어디가 좀 잘 못된 게 아니냐는 듯이 쳐다본다. 그리고는 사람이 겸손하지 못해서 오만해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비난에 규탄이 몇 며칠 계속되고 그리고 혹시라도 다른 선생님들이 들으면 그 선생질도 정말 제대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침을 놓는다.
나는 정말 홀로 좀 있고 싶은데라고 들어가는 소리로 말하면 그 홀로가 며칠 홀로가 될 것이냐고 또 면박을 준다.
정말 홀로 있다는 것이 그렇게도 힘이든 것인가. 나이 예순을 넘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처럼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자기가 쌓아온 것을 힘이 닿는 데까지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만일 가르치지 못하면 국가적
낭비라고까지 생각하는 것, 그 생각이 정말 옳은 생각이며 실제로 가르침을 받는 사람도 원하는 생각일까.
젊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제 좀 가만히 홀로 좀 있어 주시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며 더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옛 스승이라는 위신과 체면을 생각지 않는다면 이제 좀 물러나 주시오 하는 것이 정작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 쪽의 생각이며 바램이 아닐까.
사실 나이 많아서도 학교에 나와서 젊은 사람들과 같이 있겠다는 것, 그리고 더 가르쳐 보겠다는 것, 그것이 바로 노탐(老貪)이 아닌지. 학교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홀로 있지 않겠다는 그 자세가 바로 노욕(老欲)이 아닌지. 만일 일찍부터 내 마음을 잘 닦아서 내 마음이 원숭이 갈이[心猿], 내 뜻이 말 같이[意馬] 되어 있지 않다면 그래도 내가 홀로 있기를 거부할 것인지.
당나라 석두대사(石頭大師)의 선(禪) 이치를 설명하는 참통계(參同契) 주석에 마음의 원숭이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생각의 말은 사방으로 달린다(心猿不定意馬四馳)는 말이 있다. 명나라의 왕양명(王陽明)의 글에도 마음은 원숭이 같고 생각은 말과 같아서 붙들어 매어 안
정시킬 수가 없다(心猿意馬全縛不定)는 구절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원숭이처럼 늘 왔다갔다 한다. 마치 원숭이가 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제자리에 있기 어렵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도 말처럼 사방으로 달린다. 말의 본성 달리는 것이듯이 사람의 생각도 안정시키기가 보통으로 어렵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홀로 못 있는 것이다.
이 마음과 생각을 일찍부터 붙잡아 매서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것, 요사이 학생들 말로 헤매이지 않도록 하는것, 그것이 바로 연구자들의 훈련이며 도 닦는 이들의 수련이 아닐까.
그래서 마음이 원숭이가 아니라 마음이 되고, 생각이 말이 아니라 생각 바로 그 자체가 될 때, 홀로 있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것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