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자 조선! 나아가자 조선!
굳세게 힘차게 나아가자 조선!
나아가자 조선…
산고개로 구불구불 휘어진 신작로의 미루나무 가로수에 물이 올랐다. 자주빛의 잎사귀가 뾰록뾰록 내어밀고, 아이들은 회초리를 꺾어 피리를 만들었다. 버들피리소리와 종달새 소리가 푸른 히늘높이 아름답게 퍼져올랐다.
5월이 오고 있었다.
감자밭에 감자싹이 내밀듯 말듯한 어느 날, 학교에서 바라보이는 신작로 앞 지서에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붉은 깃발을 앞세운 청년들이 습격을 한 것이다. 총소리가 몇 번 울려나고 지서의 유리창이 부서졌다. 지서장님이 청년들에게 끌려갔고, 장터 마을은 사흘 동안 시끄러웠다. 읍내에서 온 경찰들이 급히 소동을 일으킨 청년들을 붙잡아 들였다. 많은 청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그 중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청년도 있었다. 지난 겨울, 집을 나간 모과나무골 장씨의 아들 무영이가 그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장씨는 무영이의 시체를 가져다 산에 묻은 뒤, 문을 꼭꼭 닫아걸고 누워버렸다.
경찰들이 모과나무골에 몰려왔다.
마침 점득이는 점례와 함께 외갓집 감자밭에 돋은 쑥부쟁이를 칼로 도려내고 있었다.
“누나, 우리도 따라가 보자.”
점득이는 건너편 우차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돼, 무서워.”
점례는 얼굴빛이 하얘져 있었다.
외갓집 숙모는 아침부터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려 애쓰면서 그저께 산에서 묻어온 산나물을 데쳐 널고 있었다. 돌담에 비스듬히 사다리를 걸쳐 놓고 싸리나무 발을 깔았다. 슬쩍 데친 산나물은 냄새가 향기롭다. 외숙모는 널리 나물을 고루고루 펴면서 승호 생각을 했다.
지서에까지 와서 소동을 벌인 청년들 속에 승호도 틀림없이 끼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승호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어디론가 달아났을까? 달아났으면 어디로 간걸까?
그 때였다.
사립문을 난폭하게 밀어버리며 총을 멘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엄마! 나와!”
누군가 한 사람이 그렇게 큰소리로 말했다.
“누구세요?”
외숙모는 엉거주춤 선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 집이 김 승호네 집이 아니오?”
제일 앞장선 경찰이 물었다
“네, 우리 승호가 어디 있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외숙모가 말했다.
“시침떼지 말어!”
경찰들은 집 안으로 몰려들어갔다. 모두 다섯 명이었다. 방문을 열어보고 헛간으로 들어가 보고, 뒤란 짚동 사이도 뒤졌다. 그러나 승호가 집 안에 있을 리 없다. 경찰들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이 굳어져 퍼렇게 서슬이 나 있었다.
“어디다 숨겼어?”
“아니에요, 숨기지 않았어요.”
외숙모는 겁에 질려 겨우 말했다.
“끌고 가!”
그 중에서 가장 계급이 높아 보이는 경찰이 큰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의 경찰이 달려들어 외숙모의 팔을 뒤로 모두어 밧줄로 묶었다.
“어쩌려고 이러시는 거에요?”
외숙모는 무서워서 떨며 물었다.
그 때 사립문으로, 들에 나갔던 외숙부가 들어오고 있었다. 보리밭 고랑의 흙을 깨느라 통나무 고무대를 메고 있었다.
“여보!”
외숙모가 들어오는 남편을 불렀다.
“어어!”
외숙부는 경찰에 손을 묶인 외숙모를 보고 눈을 크게 떠 바라보았다. 금방 얼굴빛이 파랗게 질렸다.
“누구야? 승호의 애빈게로군.”
아까 외숙모를 묶으라고 명령하던 그 경찰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른 경찰 둘이 외숙부한테로 달려갔다.
“아들을 어디다 숨겨 뒀소?”
“숨기다뇨?”
판화작가/이 철수
“이것들이 꼭 같이 의논을 했군.”
경찰 하나가 외숙부의 뺨을 주먹으후 후려쳤다.
“여보!”
외숙모가 소리쳤다
외숙부는 고꾸라지고 경찰들은 달려들어 차고 때리고 짓밟았다.
“아버지!”
빨래터에 갔던 승숙이가 엉겁결에 이고 들어오던 빨래옹배기를 떨어뜨렸다. 옹배기는 깨어져 흩어지고 빨래는 흙투성이가 되었다.
토벌대 군인들이 떼지어 들이닥친 것이 그 때였다. 간혹총을 멘 군인도 있었지만 거의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토벌대들은 매를 맞고 있는 외숙부를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가더니 부엌 앞 장독대의 항아리를 부수기 시작했다. 아직 간장을 띄우지 않은 햇장이 독이 깨어지면서 콸콸 쏟아져 외양간 수채까지 흘러내려갔다. 고추장 단지도 깨어지고 소금단지도 박실이 났다. 묵은 된장, 간장, 구석 쪽에 놓인 밀기울 단지도 깨어졌다.
“불을 질러버려!”
고함소리가 나면서 부엌쪽 지붕에 불길이 타올랐다. 온통 수라장이 되었다. 매를 맞은 외숙부는 밧줄에 묶여 끌려가고 대신 외숙모는 풀려났다. 그러나 외숙모는 저녁나절까지 까무라쳐 깨어나지 못했다.
토벌대들이 벌집쑤시듯 모과나무골을 쓸고 간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다. 잠깐 동안 그렇게 마을은 전쟁터가 되었고 집이 온채 다 탄 집이 있는가 하면 반이 타기도 하고 불이 붙다가 제풀에 꺼진 집도 있었다. 점득이 외갓집은 다행히 부엌 지붕만 중간쯤 타다 꺼졌다.
외숙모를 방에다 눕혀 놓고 어머니는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승숙이와 승기는 종일 무서워 떨면서 울었다.
외숙모가 깨어나 벽을 기대고 앉았다.
“승호 아버지 어디 갔나?”
“모르겠어요. 남식이네도 석호네 아버지도 대추나무집 어르신네도 끌려가셨대요.”
어머니는 누룬밥을 끓여 그 물을 한 그릇 외숙모에게 권했다. 외숙모는 몇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외숙모는 소리내어 울기 사작했다. 울면서 말했다.
“승호는 부지런하고 너무 착한 아이야, 승호는 아무 잘못한 일이 없어.”
“그래요, 승호는 절대 나쁜 짓을 할 애가 아니에요.”
어머니도 따라 그렇게 말했다. 승호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숙이 어머니!”
밖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가 문을 열어보니 대추나무집 중탁이네 어머니 지내골댁이었다. 중탁이 동생 귀욱이를 데리고 지내골댁은 잠깐 망설이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점례혜어머니도 계셨군요. 어렵지만 방을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들어 오셔요. 들어와서 말씀하셔요.”
지내골댁은 귀옥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둘 다 안절부절 몸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승숙이네는 그래도 다행이군요. 우리 집은 모두 타버렸어요.”
“옥이 아버지도 끌려가셨대지요?”
외숙모가 물었다.
“잡아갔어요. 우리 중탁이를 내놓지 않으면 죽인댔어요.”
“어머나! 얘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외숙모도 다시 부들부들 떨었다.
이날 밤, 모과나무골엔 불이 켜진 집이 몇집뿐이었다. 전에 점례가 아기를 업어줬던 박주사네 집과 그 아랫쪽 석류나무집, 그리고 큰 골목길 양쪽으로 늘어선 좀 큰집들이었다. 아이들은 무서워 숨죽이며 소근소근 이야기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외갓집에서 외숙모님과 함께 주무시고 대신 승숙이와 승기, 그리고 지내골댁 귀옥이는 점득이네 집에서 잤다. 캄캄한 방안에서 다섯 아이들은 얇은 이불 하나를 덮은 채 서로 껴안고 밤이 깊도록 얘기했다.
“승숙아, 우리 오빠랑 너희 승호 오빠랑 이젠 집에 못 오니?”
귀옥이는 아까부터 울고 또 울었기 때문에 코가 감기든 것처럼 메어 있었다.
“오빠가 오면 토벌대가 잡아 가버릴테니 와서는 안 돼!”
“그럼, 언제까지 못 돌아오니?”
“나도 몰라 그건…”
“무영이 오빠처럼 죽지나 않을까?”
“죽지 않을 거야.”
아이들은 그러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지만 꿈에 낮에 있었던 일들이 나타나 깜짝 놀라 눈을 깜짝 뜨는 아이도 있었다.
다음날, 승기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석호 동생 태호도, 남식이네 주식이도 못 갔다. 마을에선 집나간 청년들 가족들을 멀리했다. 아버지들은 끌려간 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어머니들은 거의가 실성해서 누워있거나 앉아서 꼼짝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산으로 갔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잔대도 캐서 먹고 송기도 벗겨먹었다.
승숙이 누나는 벌써 전부터 집안 일을 거들어왔지만, 외숙모가 몸져 눕자 살림을 맡아서 살아야 했다. 지내골댁과 귀옥이는 점득이 외갓집 건넌방에 임시로 살았다.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남편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어떤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지치면 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아버지들은 돌아오지 않고 청년들에게 끌려갔던 지서장이 죽은 시체로 강변에 버려져 있었다. 또 한번 소동이 벌어질 줄 알고 모두가 무서워 떨고 있는데 이번엔 어쩐 일인지 조용했다. 오히려 쉬 쉬 하는 눈치까지 보이면서 지서장의 시체만 거두어 갔다. 그리고 이틀 뒤, 끌려갔던 아버지들이 돌아왔다.
“엄마 외숙부님 돌아오셨어!”
점례가 외갓집에 갔다가 얼른 그 소식을 알고 달려온 것이다.
“오빠가 오셨다고!”
어머니는 논두렁에서 걷어온 나랑나물을 다듬다가 얼른 일어나서 갔다. 점득이도 점례도 함께 따라가보니 외숙부는 얼굴만 조금 야위었고 다른 덴 아무렇지 않았다. 외숙모는 겨우 일어나 집안을 치우고 있었다. 된장독, 간장독이 깨어져 흩어진 걸 어머니가 대충 치웠지만 집안은 그대로 어지럽혀져 있었던 것이다.
“오빠, 몸은 다치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외숙부의 건강이 제일 걱정이었다.
“괜찮다. 우리 승호를 찾아 주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가둬놓겠다더니 갑자기 풀어주더구나.”
“지서장이 죽었대요.”
“글쎄다. 아마 그래서 겁이 났던 게지. 순순히 우리를 풀어주는 걸 보니…”
“애들은 대체 지금 어디 있는 걸까요?”
어머니가 조금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아마 가까운 곳 어디서인가에 몰려 있는 모양인데, 더 이상 큰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걱정이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대체 어쩌자고 그러는지 무서워요.”
“내가 처음부터 잘 타이르지 못한 게 후회스럽구나.”
“하지만 승호는 너무 착한 애잖아요.”
“글쎄다. 어쩐 일인지 모두 착하고 성실한 얘들만 집을 나갔으니 알 수 없는 일이야.”
정말, 그건 누구나 다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 경찰들의 총에 맞아죽은 무영이도 그렇고 다른 청년들 모두가 모과나무골에서는 훌륭한 마음씨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버지들이 돌아오자 사람들은 다시 살기 위해 불타버린 집을 일으켜 세우고 정돈을 했다. 그러나 총에 맞아죽은 무영이네는 보따리를 싸들고 마을을 떠나 버렸다. 장씨의 부인인 은이네 어머니는 앞뒤 산이 올리도록 큰소리로 통곡을 했다. 엄마 손을 잡은 은이도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동구밖 길로 걸어서 갔다.
아이들은 친하던 동무 하나를 떠나 보내고, 마을 사람들은 함께 살아온 이웃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