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고생에 가슴이 아파요
“부모 형제를 떠나온 지가 벌써 오년이 됩니다. 법고 싶어도 제 형편이 이러니 나설 수가 있어야지요.”
“나야 그래도 서울에 와서 돈을 벌고 있으니 그런대로 괜찮지만 시골집에서 동생들과 고생하시는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오빠들도 다 도시에 나와 농사지을 사람도 없을 텐데 … 도시 같으면 자식들 효도받고 쉬실 나이에 일만 하시니 내가 큰 불효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올 해서는 안되겠지만 식구들 눈치가 보여서 힘들어요. 우리집은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 같이 사는데 그래도 고정수입이 있는 것은 나뿐이에요. 사실은 나도 월급을 타면 친구도 만나 술도 한잔하고 또 저금을 하여 장가갈 준비도 하고 책도 사보고 싶고 한데, 온 식구가 월급날만 되면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니…”
“집안형편 때문에 나는 중학교만 마치고 일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또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면서 공부하였어요. 그동안 언니는 자기가 대학을 졸업하면 부모님께 효도를 하겠다고 하면서 월급을 한 푼도 내놓지 않았어요. 결국 내가 번 돈으로 생활을 했는데 언니는 이제 와서 내가 무식하다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누구때문에 공부를 할 수가 있었는데… 그런데도 어머니는 언니만 두둔하는 것 같아 집에 가기가 싫어져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맨날 돈타령이에요. 일도 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싸움이나 하고 술먹고 그리고는 집에 와서 돈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곤 해요. 부모님이나 내가 뭐라고 하면 자기한테 집에서 해준 것이 무엇이 있냐고 대드는데 속상해 죽겠어요.”
“공장에서 알게 된 오빠가 있어요. 그 오빠는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해서 참 호감이 갔어요. 다른 사람들은 월급을 타면 술마시고 고고장을 가고 해서 흥청망청 다 써버리는데 이 오빠는 한 번도 그런 것을 못 보았어요. 그 오빠하고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좋겠는데 막상 앞에 가면 나도 모르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시하게 돼요.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하니 안타까워요.”
가난은 속수무책인가
“한 번도 마음놓고 돈을 써 본 적이 없읍니다. 하루하루 돈을 쓸 때마다 걱정이 앞서요. 만약에 식구 중 누구라도 병이 나면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죠? 얼마 안되는 월급을 이리저리 아껴쓰는 아내를 보면 언제까지 이렇게 경제적인 곤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남의 땅을 빌어 먹고는 살 수가 없어 날품을 팔더라도 서울이 낫겠지 하고 왔는데 여태 이 신세야. 하긴 우리 같은 사람 만나보면 다 거기가 거기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만 공부시키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결국 돈이 없으니 그 놈들도 제대로 공부도 못 시키고 이 속에서 살게 되었지. 하긴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고했는데 잘사는 놈만 잘사는 세상에 태어난 것도 운명이겠지.”
“사는 게 이런데 친척은 만나 무엇합니까. 그런데 지난번에는 우연히 공장에서 사촌동생을 만났어요. 이 녀석은 대학을 나와 관리직원으로 왔다고 하더군요. 한데 나는 이 회사에서 10년이나 일했지만 갓 들어온 그 녀석보다 월급이 적어요. 다른 때는 그저 그러려니, 많이 배웠으니 많이 받겠지 했는데, 동생이 나보다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만두었읍니다.”
나는 과연 불필요한 인간인가
“좋다. 그럼 기브 앤드 테이크다. 그러니까 김수희 테이프를 나를 줘.”
“뭐라고! 그건 안돼. 나는 카셋트만 빌려 달랬는데 왜 내가 테이프를 줘야 돼냐?”
“야 임마 넌 기브 앤드 테이크도 몰라. 비슷한 것끼리 거래가 성립돼야지. 난 빌려주는 거지만 그래도 이 카셋트는 비싼거야. 성능도 좋구. 그러니까 그 값어치가 그까짓 테이프하고 비교될 수가 있겠냐. 오히려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돼.”
“야. 그런데 그 말 하면서 왜 꼬부랑 말을 하냐. 그냥 우리 말로 하면 안돼? 너나 나나 못 배우기는 마찬가진데 유식한 척 하지 마.”
“싫으면 관두면 그만이지 별걸 다 트집잡네. 그러면 카셋트, 테이프는 영어 아냐? 괜히 애국자인 척하지 마. 그래도 영어 한두 마디쯤은 해야지 어디 가서 기죽지 않는 거야. 시간 뒀다 뭐하냐. 공부해라 공부.”
“하긴 영어도 몇마디쯤은 하긴 해야겠는데 다방에 가서 팝송 신청도 못하면 여자애들도 우습게 보더라구. 허지만 어떻게 공부하지…”
“세상에는 다 쓸모있는 사람들만 사는데 나는 안 그런 것 같아요. 나는 배우지도 못했고, 돈도 없고, 그렇다고 재주도 없고, 운동도 못하고 그러니 그저 아침에 일어나 공장에 가서 일하고, 밥먹고 술이나 마시고 잠자는 것이 전부라구요. 그래서 어떤 때는 나는 이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그러니까 좀 있는 사람들이 우릴 무시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말 그럴까요?”
“이달 말까지는 셋방을 비워주어야 하는데 다를 방을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요즈음에는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전세가 비싸다고 하던데 그것이 이런 달동네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월세를 올려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지금 월급 가지고는 월세 더 내기는 벅차고 다른 방을 구해야겠는데 걱정입니다.”
“요즈음에는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고 야간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옛날하고는 틀려서 수당이라고 나오긴 하지만 그게 몇 푼이나 됩니까. 차라리 안하고 쉬었으면 하는데 야근을 안하면 미움을 받고 쫓겨나기 쉬우니 안할 수도 없고. 밤중에 일이 끝나 집에 갈 때 술집에 앉아 떠들며 즐겁게 이야기하고 술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고달픈 생각이 듭니다. 신세가 처량해지기도 하고요.”
“정치는 관심 없어요. 지난 번에 농성한거요? 그건 월급 때문에 한 거지 정치하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하는 사람들이 우릴 툭하면 이용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천만 노동자가 어떻고, 노동자의 권익이 어떻고, 산업의 역군이 어떻고… 그런 식으로 필요할 때만 들먹이지 말고 진짜 정치를 잘하려면 살 만큼 살게 해주어야지요. 그 사람들 떠들다가도 실제 문제에 가면 하늘만 쳐다볼 사람들 아닙니까?”
“일을 하고 싶어요. 아이구 생활도 말이 아닙니다. 하긴 요즘 돌아가는 것을보면 뭔가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이유요? 없어요. 단지 취업카드인지 블랙리스트인지 거기에 해고라고 적혀 있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진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됐지 뭘니까! 참 누구 아이디어인지 운전자 취업카드가 생명카드가 될 줄 알고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중생의 이야기
유마거사의 “중생이 아프니까 나도 아프다”는 이야기는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그러나 중생이 아프므로 내가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아픔은 많이 이야기하는데 아직도 우리는 유마거사를 아프게 한 중생의 아픔이야기는 별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유마거사의 아픔은 그 원인인 중생의 아픔을 알 수가 없어 여태까지 치료도 못하고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이다.
비유경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떤 국왕이 딸 하나를 낳았다. 성미가 급한 왕은 의사를 불러 말했다.
“왕녀는 아직 어리다. 그대는 왕녀에게 약을 주어 당장 자라게 하라, 만약 그리 못하면 벌을 내릴 것이다.”
의사는 왕의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린 아기를 장성한 처녀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왕에게 말했다.
“나는 따님께 약을 주어 자라게 할 수있읍니다.”
“정말 할 수가 있는가?”
“예.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약을 구할 방법이 없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제가 약을 구해 오겠읍니다. 한데 그약은 신약이라 따님을 아무에게도 보여서는 효력이 없읍니다. 그러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대왕은 물론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왕은 의사의 말대로 공주를 밀실에 둔채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한편 의사는 약을 구한다는 핑계로 12년간을 딴 곳에서 지내다가 돌아와 공주에게로 가서 약을 먹인 뒤 국왕에게 데리고 가서 보였다. 왕은 장성한 공주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의사에게 큰 상을 주도록 하였다. 이 사실을 안 백성들은 왕이 햇수는 생각지 않고 공주가 자란 것이 약의 힘이라고 생각한 무지를 비웃었다고 한다.
유마의 아픔을 고치는 것은 장성한 딸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아픔을 고치기 위해 근원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깨달음만을 성급하게 원하고 있다. 그래서 의사는 처방 아닌 처방을 내리고 우리 곁을 떠나있는 것이다.
장성한 딸을 보기 위해서는 온갖 정성을 다해 양육을 해야 하는 것처럼 유마의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중생의 아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치료하고자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유마의 아픔은 자연히 사라지고 깨달음의 세계가 우리 앞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