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의 색광色光에 대해 흔히 5색사리를 말한다. 그러나 《법원주림》 제40에는 “사리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뼈사리(骨舍利)이니 그 빛이 희고, 둘째는 털사리(髮舍利)이니 그 빛이 검으며, 셋째는 살사리(肉舍利)이니 그 빛이 붉다. 보살·아라한 등에게도 세 종류가 있다. 부처님 사리는 망치로 때려도 부서지지 않지만, 그 제자들의 사리는 망치로 때리면 곧 부서진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사리를 탑 속에 안치하기 때문에 불탑은 분묘와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불탑의 숭배는 육신이 없어진 부처님에 대한 예배로서, 부처님의 유골(사리)을 봉안한 탑을 향하여 추모의 정을 나타내는 성격의 공양인 것이다.
《금광명경》 권4 〈사신품〉에 이르기를, “사리란 계·정·혜를 훈습하고 닦아서 생기는 것으로 매우 얻기 어려운 최상의 복전이다. 그러므로 능히 탑을 세우고 공양하면 무량한 복보를 받는다.”고 하였다.
사리 신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석가세존의 입멸을 세속적 차원에서 볼 때는 죽음일 뿐이지만, 탈세속적脫世俗的 차원에서는 심신心身을 함께 멸진한 영원한 완성(=般涅槃)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리를 봉안한 탑에 대하여 슬퍼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찬탄하고 축복해야 할 열반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부처님의 사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불탑 속에 불경佛經(=法身舍利) 같은 것을 봉안하고, 금·은·보화 등으로 만든 사리소탑舍利小塔, 불상佛像, 옥장식玉裝飾, 동경銅鏡, 장신구 같은 귀중품을 함께 넣어 부처님께 공양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사리에 대해 인도나 중국의 경우와는 다른 관념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인도에서는 석가세존의 유골을 두고 ‘마치 부모를 잃은 자식의 심경으로 모셨다’ 하고, 중국에서는 ‘영험이 있다’고 하여 숭앙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도 물론 적지 않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의 상징으로서 사리舍利를 봉안하고 공양 발원發願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불사리신앙佛舍利信仰은 결국 거룩하신 부처님을 흠모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깊이를 더해 왔던 것이고, 역대 고승들의 사리와 사리를 봉안한 부도탑의 수와 그 조형미에서도 그러한 신앙의 발전된 형태를 엿볼 수 있다.
며칠 전에 혜암 종정 스님의 다비식을 마치고, 이제 산중은 7일 용맹 정진에 들어가 도량은 새소리, 바람소리조차 숨을 죽이고 있다.
“세상에서 겪게 되는 난관이나 재앙은 불행이 아니라 큰 선물입니다. 실패가 주먹만하면 성공이 주먹만하고, 실패가 태산만하면 태산만한 성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인들은 모두 죽을 자리에서 살아난 경험을 등불 삼아 큰 성공을 이룬 분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수지맞는 일 중의 하나가 공부하다 죽는 일인데, 목숨 내놓고 정진하다 보면 견성이 가까워 오고 죽음은 멀어집니다.”
86과顆의 생신사리生身舍利로 화현한 스님의 평소의 힘찬 사자후가 8만 4천의 무진한 법신사리法身舍利가 되어, 나약하고 게으른 범부들을 일깨우고 있음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번 용맹정진 기간에 참으로 마음 깨친 선지식이 나와서, 사자후를 외칠 법석을 마련하고 대중을 운집하는 대종 소리 울려지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