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 : 업(業)에 대해서 좀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답 : 업이란 행위이고 집착이다. 무엇엔가 집착할 때 몸과 입과 마음으로 업을 짓게 되고 습관이 된다. 이런 것들은 전생의 악업과 집착의 과보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고 미래에 고통의 원인이 된다. 곧, 모든 집착이 업을 짓게 만드는 것이다.
보기를 들어, 그대가 출가 전에 도둑이었다 하자, 그대는 남의 것을 훔치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부모님을 괴롭게 하였다. 지금은 출가승려이지만, 지난 날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을 생각한다면, 기분이 나쁠 것이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몸뿐만 아니라 말이나 정신적 행위도 미래의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라. 거꾸로 만일 그대가 지난 날 선행을 닦았다면, 그것이 기억날 때에는 기쁠 것이다. 이런 기쁜 마음의 상태가 지난 업의 과보이다. 모든 것은 원인-장기적인 원인과 순간순간적인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과거나 현재, 미래에 대해 신경쓸 필요는 없다. 다만 그대의 몸과 마음을 주시하라. 그대는 그대 스스로 업을 이해해야 한다. 그때 마음을 주시하고 계속 공부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다른 이의 업에 대해서는 그들 지신에게 맡기고 그대는 상관하지 말라. 내가 독약을 먹고 괴로와한다고 해서 그대가 함께 나누어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스승이 무엇이 좋다고 지시하는 대로 따라서 그대로 하라. 그러면 그대는 평화스럽게 되고 마음은 스승처럼 될 것이다. 지금은 비록 모든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수행해 가면서 이 업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공부해 나갈수록 더욱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또 그대는 그대 자신에 의해 모든 것을 알게될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우리는 “법을 공부한다”고 한다.
우리가 어릴 때는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엄하게 대하고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해서 우리를 성가시게 하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 보면 그것이 다 우리들을 위해서였음을 알게 되듯이, 오래 계속해서 꾸준히 공부하면 모든 것을 이해하게될 것이다.
영리한 사람들은 얼마 못 가 이곳을 떠나가 버린다. 그런이들은 결코 배우지 못한다. 그대는 마땅히 분별심과 우월감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만약 그대가 다른 이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고통만이 따를 뿐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말라. 다만 관찰하라!
물음 : 승려가 된 이후 저는 가끔 고난과 고통이 더 심한 것처럼 느낍니다.
답 : 이곳의 몇몇 사람은 여기에 오기 전에는 물질적인 편안과 외형적인 자유를 누리고 살아온 줄 안다. 상대적으로 지금 그대는 매우 엄격한 생활 속에서 살고 있다. 공부 중에 나는 그대를 오랫동안 앉거나 기다리게 하고 음식이나 기후도 그대의 나라와는 다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것을 거쳐나가야만 한다. 이것은 고통을 종식시키는 고통이다. 이렇게 배워나가라. 그대는 가끔 화를 내고는 스스로 뉘우치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그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부처님께서도 나쁜 것들이 우리의 스승이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제자들은 모두 내 지식들과 같다. 나는 오직 자비심으로 그들을 걱정한다. 설사 내가 그대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해도 그것은 그대를 진정으로 위해서이다. 나는 그대들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많은 지식이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교육을 적게 받은 이들이 오히려 수월하게 공부하는 것을 흔히 본다.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청소할 것이 많은 집과 같다.
그대는 마땅히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인내와 끈기는 우리의 공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어린 승려였을 때는 그대처럼 어려움을 격지는 않았다. 나는 우리말을 쓰고 우리 음식을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은 절망해서 속퇴를 생각하기도 했고 자살까지도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고통은 올바르지 못한 견해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진리의 참모습을 보는 순간 여러 가지 견해나 의견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모든 것이 평화스럽게 될것이다.
물음 : 저는 참선을 통해 마음이 아주 평화스러운 상태에 와 있읍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답 : 좋은 일이다. 마음을 평화스럽게 하고 집중하라. 그리고 이것으로 그대의 몸과 마음을 시험하라. 설사 마음이 평화스럽지 않더라도 마음을 주시하고 관찰하라. 그러면 참다운 평화를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거기에서 무상(無常)을 보기 때문이다. 그대 마음 속의 평화도 무상으로 보여야 한다. 만약 그대가 마음의 평화스런 상태에 집착한다면 그렇지 못할 때는 그것에서 다시 고통이 온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평화조차도, 버려라.
물음 : 저는 스님이 매우 근면한 제자들을 염려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답 : 그렇다. 나는 그들이 너무 진지한 것이 걱정스럽다. 그들은 지혜롭지 않게 너무 지나치게 노력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필요없는 고행으로 몰아부친다. 그대들 중 몇 사람은 깨우치기를 결심하고 이를 악물며 주야로 몸부림치는데, 이것은 너무 지나치다. 인간이란 별 차이가 없다. 그들은 사물의 본질-모든 구성 요소, 몸과 마음은 무상함-을 잘 모른다. 그저 주시할 뿐 집착하지 말라. 어떤 이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비평하고, 주시하고, 심판한다. 그들의 의견은 그들에게 놓아 두어라. 이런 분별심은 참으로 위험하다. 이것은 마치 급한 커브길 같아서 우리가 만약 저사람은 나쁘다, 좋다, 우리와 같다 등의 분별심을 낸다면, 우리는 그 커브길 밖으로 떨어져 버리게 될 것이다. 분별심을 내면 오직 고통만이 있을 것이다.
물음 : 저는 이제 참선을 한 지도 몇년이 지났읍니다. 저의 마음은 이제 거의 어떤 상황에서도 열려 있고 평화스럽습니다. 이제 저는 초발심의 상태로 되돌아가서 좀더 높은 차원의 집중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답 : 좋은 일이다. 집중은 유익한 정신적인 훈련이다. 단지 현명하게 집중된 마음의 상태에 매달리지 않도록 하라. 이것은 오래 앉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처음 수련과정으로서는 장시간 앉아 있는 것도 좋다. 그러나 진정한 공부는, 어떤자세로 하느냐에는 상관없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바로 보느냐에 달려 있으니 모름지기 지혜롭게 이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지혜가 있다면 마음을 시험하고 이해했을 때 집중하는 것과 책의 한계를 알게 된다. 무집착을 공부하고 이해했다면 책을 보는 것에 관심을 돌려도 괜찮다. 이것은 마치식사 후의 달콤한 후식과 같은 것이고, 다른 이를 가르치는데에 도움이 되고, 또 삼매 공부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대가 지혜를 닦는 것은 어떤 것에도 매달리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이다.
물음 : 오늘 말씀의 요점을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답 : 그대는 그대 자신을 시험해야 한다. 그대가 누구인지를알라, 그대의 몸과 마음을 단순한 관찰로써 알라, 행주좌와에 그대의 한계를 알라. 지혜를 써라. 공부란 어떤 것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히 무엇이든지 집중하라. 모든 참선은 마음을 바로 보는 것이고, 그때 그대는 고(苦)의 원인과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마땅히 인내심을 가지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스승과 함께 적어도 5년간은 함께 머물도록 가르치셨다. 그대는 마땅히 보시와 인욕, 그리고 헌신의 가치를 배워야 한다. 외형적인 것에 매달려서 너무 완고하게 수행하지 말라. 다른 이를 관찰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저 자연스러워라.
그리고 주시하라. 우리 승려들의 계율과 사찰의 규율은 아주 중요하다. 사찰의 청규는 생활을 단순하게 해주고 화합의 환경을 만들어 준다. 그것들을 잘 사용하라. 계율의 요지는 우리의 의도를 주시하고 마음을 시험하는 것이다.
지혜로와야 한다. 분별심을 내지 말라. 그대는 숲속의 작은 나무가 다른 나무처럼 크지 않다거나 곧지 않다고 화를 내겠는가?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다른 이들을 비판하지 말라. 세상은 다양이다. 이 세상 사람들을 네 바람대로 바꾸려하는 그런 짐을 마음에 지고 다니지 말라. 그러니 인내하면서 계율에 따라 공부하되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하라. 그리고 그대 마음을 관찰하라. 이것이 우리들의 수행이다. 이러한 수행이 그대를 무욕(無欲)에로 평화에로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