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정진 끝내고 나서 종무소에 다녀오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대중스님들 잠깐 앉아봐. 나 오늘부터 주지 좀 허야겄어.” 이렇게 해서 해인사 주지를 맡았는데 선방에 계시면서 몇 달 했을 것이다.
그 때쯤이라고 생각된다. 대구 포교당에서 법문이 있어서 어렵게 모셨을 때다. 그 때만 해도 교통이 불편한 때라 버스가 자주 없었다. 스님께서는 일찌감치 준비하여 대구로 나갔다. 그런데 너무 일찍 나가셔서 2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 당시 대구에는 ‘덕산탕’이라는 목욕탕이 새로 생겨서 한창 소문이 났을 때다. 때 미는 사람이 별로 없을 때인데 덕산탕에는 때 미는 사람이 있었다. 포교당 주지 스님이 혜암 스님을 그 덕산탕에 모시고 가서 때 미는 사람에게 ‘큰스님 때 밀어 드리라’며 돈을 주고 가셨던 모양이다.
때밀이 총각이 들어와서 때를 밀어 드리려고 하니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만둬! 그만둬! 내 손발이 멀쩡한데 왜 남 빌어서 때를 밀어. 그러면 내생에 조막손이 과보 받게 되는 거여.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저리가.” 이러니 때밀이 총각이 더 안달이다. “아이 스님두! 그러면 난 돈을 못 번단 말예유. 얼른 밀어요. 어서요.” 이 때 혜암 스님의 면목을 엿볼 수 있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그려. 그러면 제자로서 절 삼배하고 밀어. 그냥은 할 수 없어.”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절 삼배를 받는데 그 모양이 정말 볼 만하다. 욕탕 안에 그 많은 사람들이 홀랑 벗고 목욕하다 말고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혜암 스님께서는 그거 다 내놓은 채로 목욕탕 바닥에 결가부좌하고 앉으셔서 절을 받은 것이다. 혜암 스님은 그 어느 곳 어디에서도 수행자이기를 원했던 게다.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는 거다. 사실 목욕탕에 들어가면 저나 나나 홀랑 벗고 있는 터에 그렇게 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른스님들을 한 분 두 분 떠나 보내면서 제일 걱정되는 게 요즈음에는 이렇게 분명하게 중물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판事判은 사판답게 자기 생각이 분명해야 되고 이판理判은 이판대로 일체시비를 모두 놓아버리고(都放下) 오직 수행에 몰두할 때 분명한 자기 색깔이 나올 텐데 말이다.
혜암 스님은 한평생 당신 색깔이 분명하셨던 어른이다. 또 한번은 태백산 도솔암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타 스님께서 도솔암에 계실 때인데 혜암 스님께서 도솔암에 가셨다. 도솔암은 조그만 방 하나와 재래식 부엌 하나가 전부인 조그만 암자이다. 저녁까지 이 얘기 저 얘기 담소 하시다가 삼경이 되어 주무실 시간이 되자 혜암 스님은 조그만 좌복 하나 가지고 방 앞에 있는 조그만 툇마루에 나가시더니 밤새 눕지 않고 그냥 앉아서 정진하시며 밤을 꼬박 샌다. 그 때 일타 스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노장 참 지독하지. 하루 종일 걸었는데도 끝내 눕지 않으시는구먼. 저런 강단이 있으니 평생 장좌하시겠지.”그런가 하면 스님은 그렇게 강한 면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신도들에게 법문해 주실 때 보면 그렇게 대쪽 같은 면은 다 어디로 갔는지 천진하기가 마치 어린애 같을 때가 있다. “내가 말이여”하고 신명이 나기 시작하면 두 시간도 좋고 세 시간도 좋다. 법문 듣는 이들이 신심 있게 들을라치면 밤을 꼬박 새워도 좋은 것이다.
입적하시기 얼마 전 일이다. 원당암 시자 스님과 상좌 스님들이 모시고 제주도 남국선원에 오셨다. 평생을 고행하셨던 분이라 이제 육신은 부축해드려야 다니실 정도인데도 정신력이 워낙 대쪽이라 하시는 말씀이 “혜국 수좌! 나 남국선원 선방 좀 봐야겠어. 제주도에는 선방이 남국선원 하나뿐이니께, 어쨌거나 계속 잘 운영해 나가야지. 선방이 없으면 절은 안 되는 거여. 서로들 힘을 모아 선방이 커나가도록 노력들 해야 돼. 그러니 내가 남국선원 선방에 좀 앉아 보고 가야겠어.” 하시며 선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인사 드리러 따라온 선객들과 신도들에게 법문을 시작하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참선 빼께(밖에) 없어. 참선이 제일이여. 내가 나를 모르고 하는 일은 모두가 꿈속 일이여. 뭔 짓을 허던지(하든지) 간에 마음을 먼저 깨달아야 되는 거여. 어째서 마음을 먼저 깨달아야 하느냐 하면 내가 얘기해 주께. 잘들 들어봐. 관상불여복상觀相不如腹相이요. 복상불여배상腹相不如背相이요. 배상불여심상背相不如心相이라 했잖어. 관상이 지아무리 잘 생겨도 배 잘 생긴 놈한테는 안 된다는 것이여. 여기서 말하는 배는 타는 배가 아니고 배때기 하는 이 배 말이여. 배가 아무리 잘 생겨도 등, 등어리 잘 생긴 놈한테는 못 당해. 관상 중에는 등이 제일이여. 그러나 관상이든 배든 등이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상법相法이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그 마음 잘 쓰는 놈한테는 당할 재간이 없단 말이여. 알아듣겠어? 그러면 마음 잘 쓴다는 말이 무슨 말이여? 마음이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제일이니께 그 마음을 깨달아야 한단 말이여. 그러니 ‘이 뭐꼬’ 하고 참선을 허란 말이여.‘이 뭐꼬’모르는 그 놈이 곧 그 자리여. 참구하고 참구해서 무념위종無念爲宗이 되어야 허여. 자식새끼들 그거다 웬수가 만난거여.”이렇게 시작된 법문이 !
끝날 줄을 모른다. 부축해서 다닐 정도의 기력인데 어디서 저런 기운이 나오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요즈음처럼 이해관계를 따지는 세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당신 몸을 아낀다거나 당신 자신만을 생각해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로지 부처님 일이 아니면 생각지 않으셨고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하지를 않는 자세, 그러한 사상에서 사신 분만이 할 수 있는 천진도인들의 세계다. 이제 그 자리에는 임종게만 남아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아신본비유我身本非有요
심역무소주心亦無所住라
철우함월주鐵牛含月走하고
석사대효후石獅大哮吼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