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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색깔이 분명하셨던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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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 스님 추모 - 혜국 2002년 02월 240호
한 분 두 분 어른스님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는 후학의 마음 매우 착잡하다. 이제 그 분들이 지켜 주셨던 그 자리를 좋든 싫든 우리가 채워 나갈 수밖에 없기에 더욱 그렇다. 그 자리를 여법하게 살리느냐 아니면 빈자리로 죽이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의 몫이다.
이 땅에 왔다가신 큰스님들의 자취를 잘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특출하게 오시어 특별한 삶을 살다가가신 어른이 있는가하면 평범하게 태어나서 후천적으로 애써 수행하여 걸출한 삶을 살다가신 분이 있다.
이번에 입적하신 조계종정 혜암스님은 결코 유별나게 태어나신 분은 아니다. 너무나 평범하게 태어나신 분이다. 그러나 한평생 장좌불와長坐不臥·난행고행難行苦行 하시어 조계종사에 큰 획을 그어 놓고 떠나셨다. 이런 면이 후학들에게 가능성을 보여 주고 희망을 심어 주는 부분이다. 이제 그런 어른을 떠나보내며 살아 생전에 모시고 살 때 있었던 몇 가지 일을 가지고 회광반조 해보고자 한다.
내가 그 어른을 처음 모시고 정진 했었던 때는 69년도였을 게다. 혜암 스님께서 해인사 조그만 방에서 일일일식一日一食 하시며 장좌불와 하실 때였다. 용화사에서 동안거 해제를 하고 해제철에 가행정진을 하려고 몇몇 젊은 수좌들이 해인사 선열당에 모였다. 그 당시 퇴설당은 칸칸이 조그만 방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선열당이 선방일 때다. 혜암 스님께 신심信心 나는 법문法門을 들은 후 정진을 시작하려고 찾아뵈었다. 대뜸 하시는 말씀이 ‘가행정진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용맹정진을 하라’고 하신다. 그 때 우리는 20대 초반이라 우리들끼리 용맹정진 하기가 좀 염려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당신이 직접 죽비 치면서 같이 용맹정진 해 주신다는 것이다.
“난 말이여. 이적지(이때까지) 용맹정진 하다가 죽는 놈 못 봤어. 용맹정진 하다가 죽는다면 그보다 수지맞는 장사는 없제. 정진하다가 죽을 수만 있거든 죽어 버려. 내가 화장해 줄 테니께.”그러고는 선열당 선방에 오시어 같이 정진하면서 죽비를 쳐주셨다. 그리고 경책을 하는데 이거야말로 요즈음 표현을 빌자면 장난이 아니다. 장군 죽비로 마구 패는데 마치 장작 패듯 했다. 그러다가 빈자리가 있으면 “이 수좌 어디 갔어! 똥간에 가봐. 거기서 자고 있을테니께.” 당신이 워낙 용맹정진을 많이 해보아서 환하게 다 아신다. 그리고 그 어른은 용맹정진을 예사로 생각 하셨다. 평생 장좌불와하여 눕지 않고 살아 오셨기에 용맹정진을 보통으로 생각하신 게다. 용맹정진 4일째다. 해인사 도량에 눈이 수북이 쌓였다. 해인사에는 본래 눈이 많이 온다. 용맹정진은 4일째 5일째가 가장 잠이 많이 쏟아진다. 한창 정신없이 졸음이 쏟아지는데 혜암 스님은 우리를 이끌고 눈밭에 나가서 포행을 하는 것이었다. 온 산하가 하얀 눈 속에서 노장님이 후학들을 데리고 거꾸로 돌고 바로 돌고 하시며 공부시켜 주던 그 노파심절을 이제 어디서 뵈올 수 있을런지.

하루는 정진 끝내고 나서 종무소에 다녀오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대중스님들 잠깐 앉아봐. 나 오늘부터 주지 좀 허야겄어.” 이렇게 해서 해인사 주지를 맡았는데 선방에 계시면서 몇 달 했을 것이다.
그 때쯤이라고 생각된다. 대구 포교당에서 법문이 있어서 어렵게 모셨을 때다. 그 때만 해도 교통이 불편한 때라 버스가 자주 없었다. 스님께서는 일찌감치 준비하여 대구로 나갔다. 그런데 너무 일찍 나가셔서 2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 당시 대구에는 ‘덕산탕’이라는 목욕탕이 새로 생겨서 한창 소문이 났을 때다. 때 미는 사람이 별로 없을 때인데 덕산탕에는 때 미는 사람이 있었다. 포교당 주지 스님이 혜암 스님을 그 덕산탕에 모시고 가서 때 미는 사람에게 ‘큰스님 때 밀어 드리라’며 돈을 주고 가셨던 모양이다.
때밀이 총각이 들어와서 때를 밀어 드리려고 하니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만둬! 그만둬! 내 손발이 멀쩡한데 왜 남 빌어서 때를 밀어. 그러면 내생에 조막손이 과보 받게 되는 거여. 쓸데없는 소리 말고 저리가.” 이러니 때밀이 총각이 더 안달이다. “아이 스님두! 그러면 난 돈을 못 번단 말예유. 얼른 밀어요. 어서요.” 이 때 혜암 스님의 면목을 엿볼 수 있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그려. 그러면 제자로서 절 삼배하고 밀어. 그냥은 할 수 없어.”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절 삼배를 받는데 그 모양이 정말 볼 만하다. 욕탕 안에 그 많은 사람들이 홀랑 벗고 목욕하다 말고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혜암 스님께서는 그거 다 내놓은 채로 목욕탕 바닥에 결가부좌하고 앉으셔서 절을 받은 것이다. 혜암 스님은 그 어느 곳 어디에서도 수행자이기를 원했던 게다.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는 거다. 사실 목욕탕에 들어가면 저나 나나 홀랑 벗고 있는 터에 그렇게 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른스님들을 한 분 두 분 떠나 보내면서 제일 걱정되는 게 요즈음에는 이렇게 분명하게 중물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판事判은 사판답게 자기 생각이 분명해야 되고 이판理判은 이판대로 일체시비를 모두 놓아버리고(都放下) 오직 수행에 몰두할 때 분명한 자기 색깔이 나올 텐데 말이다.
혜암 스님은 한평생 당신 색깔이 분명하셨던 어른이다. 또 한번은 태백산 도솔암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타 스님께서 도솔암에 계실 때인데 혜암 스님께서 도솔암에 가셨다. 도솔암은 조그만 방 하나와 재래식 부엌 하나가 전부인 조그만 암자이다. 저녁까지 이 얘기 저 얘기 담소 하시다가 삼경이 되어 주무실 시간이 되자 혜암 스님은 조그만 좌복 하나 가지고 방 앞에 있는 조그만 툇마루에 나가시더니 밤새 눕지 않고 그냥 앉아서 정진하시며 밤을 꼬박 샌다. 그 때 일타 스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노장 참 지독하지. 하루 종일 걸었는데도 끝내 눕지 않으시는구먼. 저런 강단이 있으니 평생 장좌하시겠지.”그런가 하면 스님은 그렇게 강한 면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신도들에게 법문해 주실 때 보면 그렇게 대쪽 같은 면은 다 어디로 갔는지 천진하기가 마치 어린애 같을 때가 있다. “내가 말이여”하고 신명이 나기 시작하면 두 시간도 좋고 세 시간도 좋다. 법문 듣는 이들이 신심 있게 들을라치면 밤을 꼬박 새워도 좋은 것이다.
입적하시기 얼마 전 일이다. 원당암 시자 스님과 상좌 스님들이 모시고 제주도 남국선원에 오셨다. 평생을 고행하셨던 분이라 이제 육신은 부축해드려야 다니실 정도인데도 정신력이 워낙 대쪽이라 하시는 말씀이 “혜국 수좌! 나 남국선원 선방 좀 봐야겠어. 제주도에는 선방이 남국선원 하나뿐이니께, 어쨌거나 계속 잘 운영해 나가야지. 선방이 없으면 절은 안 되는 거여. 서로들 힘을 모아 선방이 커나가도록 노력들 해야 돼. 그러니 내가 남국선원 선방에 좀 앉아 보고 가야겠어.” 하시며 선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인사 드리러 따라온 선객들과 신도들에게 법문을 시작하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참선 빼께(밖에) 없어. 참선이 제일이여. 내가 나를 모르고 하는 일은 모두가 꿈속 일이여. 뭔 짓을 허던지(하든지) 간에 마음을 먼저 깨달아야 되는 거여. 어째서 마음을 먼저 깨달아야 하느냐 하면 내가 얘기해 주께. 잘들 들어봐. 관상불여복상觀相不如腹相이요. 복상불여배상腹相不如背相이요. 배상불여심상背相不如心相이라 했잖어. 관상이 지아무리 잘 생겨도 배 잘 생긴 놈한테는 안 된다는 것이여. 여기서 말하는 배는 타는 배가 아니고 배때기 하는 이 배 말이여. 배가 아무리 잘 생겨도 등, 등어리 잘 생긴 놈한테는 못 당해. 관상 중에는 등이 제일이여. 그러나 관상이든 배든 등이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상법相法이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그 마음 잘 쓰는 놈한테는 당할 재간이 없단 말이여. 알아듣겠어? 그러면 마음 잘 쓴다는 말이 무슨 말이여? 마음이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제일이니께 그 마음을 깨달아야 한단 말이여. 그러니 ‘이 뭐꼬’ 하고 참선을 허란 말이여.‘이 뭐꼬’모르는 그 놈이 곧 그 자리여. 참구하고 참구해서 무념위종無念爲宗이 되어야 허여. 자식새끼들 그거다 웬수가 만난거여.”이렇게 시작된 법문이 !
끝날 줄을 모른다. 부축해서 다닐 정도의 기력인데 어디서 저런 기운이 나오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요즈음처럼 이해관계를 따지는 세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당신 몸을 아낀다거나 당신 자신만을 생각해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로지 부처님 일이 아니면 생각지 않으셨고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하지를 않는 자세, 그러한 사상에서 사신 분만이 할 수 있는 천진도인들의 세계다. 이제 그 자리에는 임종게만 남아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아신본비유我身本非有요
심역무소주心亦無所住라
철우함월주鐵牛含月走하고
석사대효후石獅大哮吼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