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연극사를 볼 때 근대적 의미에서 희곡이 발표되고, 또 희곡에 의해 공연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 이후 신극이 대두되던 때와 시기를 같이 한다. 신극 이전에도 여러 다양한 형태의 불교연극과 불교적 성향이 짙은 민속연희가 없진 않았으나, 체계적 구생을 갖춘 희곡작품이 본격적으로 저술되기 시작한 것은 개화이후 활발히 전개된 신극활동의 자극에 의해서였다. 이 시기는 한국 근세 불교사에서는 매우 가슴아픈 한 시절로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불교를 통한 식민사업의 흉계를 서서히 펼쳐가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불교도의 눈에 비친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1895년 갑오경장과 더불어 승려의 도성출입이 자유로와지는 등 불교는 이조 500년의 억압된 분위기에서 풀려나 보다 새롭게 민중과 만나게 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모처럼 들뜬 불교계의 사정과는 아랑곳 없이 당시의 정세는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수많은 의병들의 투쟁, 민중의 봉기에도 불구하고 조국은 급기야 1910년 일본제국주의에 합병되는 비운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구습을 타파하여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근대국가에의 출범을 꾀하려던 일련의 노력은 일제에 의해 좌절, 퇴색, 분열, 변질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합병 후 일제는 먼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종교 일반에 걸쳐 철저한 도색, 왜곡 전략을 펴 그들에 종속 내지는 동조시키려 했다. 그 결과 문학예술사적으로 민속적, 전통적 고유의 맥이 끊어지고 서구적 개념(일제의 식민사관)으로 윤색된 국적없는 왜색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합병과 함께 들여온 일본 신파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시대적 상형을 퇴폐적 감상주의로 이끈 것 등이다.
이러한 일제의 정책은 우리 문학과 예술에 대한 철저한 검열, 통제, 탄압으로 이어져 시비에 지친 작가들은 아예 붓을 꺾거나, 혹은 순수라는 미명 아래 방관자적 창작활동으로 일관하거나, 혹은 끊임없는 투쟁의 정신으로 목숨을 건창작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에 다른 문화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불교연극 역시 당시 불교계와 우리 예술계가 처했던 상황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다소 상황설명이 길었지만 여기서 다시 희곡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희곡작품은 1926년 잡지 ‘불교’에 실린 천애(天愛)의 ‘연애(戀愛)’이다. 이는 조일제가 매일신보에 최초의 희곡 ‘병자삼인(病者三人)’을 발표한지 14년 뒤의 일이다. 필명이나 아호로 보이는 천애라는 작가에 대해선 본인의 자료불충으로 정확허 밝혀내지 못했으나 제목과는 다소 걸맞지 않게 석존의 성도후 여러 행적을 다룬 희곡 ‘연애’는 일단 더 이전의 작품이 나타나지 않는 한 최초의 불교희곡 작품이라 본다.
물론 이보다 2년 앞선 1924년 역시 같은 잡지에 ‘아란(阿難)에게 반한 여자’ 란 제하의 희곡이 실렸었다. 능엄경에 나오는 아란존자와 마등가의 이야기를 극화한 위 희곡은 ‘연애’보다 먼저 발표되긴 하였으나 이는 일본희곡의 번역본인 고로 우리의 순수불교희곡으로 처음 문자화된 것에서 제외시켰다.
아뭏든 ‘연애’이후 이십여편의 불교희곡이 ‘불교’지와 그밖의 지면을 통해 40년대까지 발표되어 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제의 침략기라는 암울한 역사적 배경하의 이시기에 일반희곡도 아닌 불교희곡이 많은 문학가의 붓을 통해 이나마 집필 · 발표 될 수 있었던 것은 후학들에게 있어 여간 소중스런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당시 연극의 전체적 수준이 그러했듯 일반적인 불교연극은 아직 유치한 청소년 포교극의 수준은 벗어나지 못했고, 발표된 희곡 역시 문학적으로 볼 때 낮은 수준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제국주의의 피해하에 기형적으로 성장한 불교희곡을 점검함에 있어 냉정한 입장에서 과거를 반성해 보고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여러 문제점들을 분석 비평하는 일은 오늘날 새로운 불교연극, 불교희곡의 창작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확신한다.
원래 희곡이란 연극을 하기 위한 대본을 이른다. 그러나 희곡이 독립된 문학예술의 한 장르로 군림해 온지는 오래다. 더우기 한 작품(연극)의 성패를 희곡이 갖는 문학성에서 판가름하는 습속은 동 · 서양을 막론하고 오래 지속되어온 전통이다.
필자가 입수한 이 시기(개화기에서 해방까지)의 불교희곡은 총 21편으로 이중 고전극이 13편, 현대극은 6편 그리고 아동극에 2편이다.
총 13편의 고전극 가운데 특기할만한 것은 석존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 6편이나 된다는 점이다. 석존의 탄생설화를 극화한 김 소하(金素荷)작 ‘우주의 빛’ (1930), 출가의 과정을 그린 김 삼초(金三超)의 ‘입산’ (1931), 홍 사용(洪思容)의 ‘출가’ (연대미상), 성도가극인 김 소하의 ‘승리의 새벽’(1930), 성도후의 행적을 그린 천애(天愛)작 ‘연애’ (1926), 그리고 열반의 과정을 극화한 김 소하의 ‘불멸의 광(光)’ (193l)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전생이야기를 다룬 김 태흡(金泰洽)작 ‘불타의 홍원(弘願)’ (1937)과 백 유경(百喩経)에 나오는 미련한 부부의 소탐대실을 그린 김 소하의 ‘떡’ (1930)이 있고, 옥야(玉耶)라는 여자에게 부덕(婦德)을 깨우쳐 주는 내용을 담은 김 태흡의 ‘불타의 감화’ (1937) 등 몇 작품이 있다.
그 외에도 삼국유사에 나오는 영재(永才)화상이 도적을 교화시킨 설화를 다룬 김 소하의 ‘불심’(1930), 이차돈의 순교를 극화한 전6막의 장막희곡인 홍 사용의 ‘흰젖’(l928) 등 수량은 많지 않지만 우리 고전을 다룬 것도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그 분량이나 질적 수준으로는 오늘날의 불교아동극과 비교할 수 없지만 두편의 아동극 ‘꽃피는 동산’과 ‘절룸발이 인형’이 있어 당시의 불교 아동극의 상황을 엿보게 해준다.
이상이 현대극을 제외한 고전극과 아동극의 간략한 소개인데 본고에서는 현대극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당시의 경향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
춘강(春崗) 박 승희의 ‘훌아비비형제’(1928)는 언뜻 그 구성이 이광수의 소설 ‘꿈’에 나오는 조신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나이든 홀아비형제가 산촌에서 척막히 살아가다 어느날 밤길을 가는 젊은 아낙을 맞아 서로 연정을 품고 그녀를 환대한다. 그러나 알고보니 아낙은 사람이 아닌 여우가 둔갑을 한 것으로 두형제를 차례로 찌른다. 이에 마지막까지 대항하다 동생훌아비가 죽으면서 깨어보니 형은 옆에서 자고 있고 지금껏의 생생한 일들이 모두 꿈이었음을 깨닫는 내용이다. 다른 희곡들에 비해 비교적 구성이 탄탄하며, 한 여인을 사이에 둔 두형제의 심리적 갈등이나 애틋한 정분이 매우 사실적으로 치밀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김 삼초의 ‘눈을 뜨지 마랏드면’(1930) 역시 혼인시는 멀쩡했는데 그후 갑자기 장님이 되어 20여년간 함께 살아온 장님부부가 어느날 용한 의원에게 침을 맞은 후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곤 서로의 20년전 젊고 아름다운 얼굴만 기억하는 두 사람은 상대를 부인하나 의원이 내준 거울을 보고 자신의 변해버린 늙고 추한 모습에서 생의 덧없음을 느끼는 내용이다. 멀쩡했던 젊은 부부가 어느날 눈이 멀게 된 사건에 대해 충분한 동기 설명이 없는 것이 흠이다. 게다가 눈먼 당사자끼리는 서로 상대방은 멀쩡한데 자신에게 일부러 눈먼 행색을 해 위로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좀 무리한 상황설정이 아닐 수 없다. 주제전달에만 집작하다보니 화장하고 고운 저고리는 입었는데 맨발에 떨어진 적삼꼴로 나선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보다 비교적 늦게 발표된 김 태흡의 ‘누구든지’(1937)는 한 청년이 운명의 신으로부터 불행히도 자신이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한시간 밖에 남지 않았음을 우연히 듣게 된다. 초조해 하는 그에게 친구가 나타나 그가 곧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음을 알려주고, 변호사는 사망한 백부의 재산이 모두 청년에게 상속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던 여인마저 나타나 그와의 혼인을 이야기하건만 운명의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그는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역시 부귀와 학식, 그리고 연인마저 소용없는 허망한 인생이며 누구든지 운명의 작희를 당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역시 마지막 남은 1시간이라는 제한된 삶의 설정이나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횡재와도 같은 기쁨들이 필연성이 결여된채 비사실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밖에도 소연(素然)의 ‘냉소(冷笑) ’(1928)는 한 여배우가 봉건적 제도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전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당시 신여성의 패배의식과 그녀를 통해 자신의 영달을 누리려 했던 가족들의 허무를 그리고 있다.
유일하게 발견된 희극 ‘쌀’(김 삼초작, 1930)은 ‘바보’라는 주인공이 식사시간을 못기다려 몰래 벽장 속의 생쌀을 한입 가득 물었다가, 놀라는 아내와 장모에게 설명도 못한 채 끙끙거린다. 볼이 붓는 괴질에 걸린 것으로 여긴 아내는 의원을 불러 진찰을 의뢰하고 의사는 급성 종양이니 칼로 째서 고름을 짜내야 한다고 수선을 피운다. 이에 생살을 도려내야 하는 위기에 처한 주인공 바보의 우둔한 이야기를 회화한, 당시로선 드물게 보는 희극이다. 그러나 이 역시 우화적인 단계를 못 벗어난 에피소드 정도의 수준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몇편의 불교 현대희곡에서 우리는 몇가지 공통된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작품 전체에 두루 깔려있는 패배적 허무주의를 들 수 있다. 어찌할 수 없는 유희의 굴레 속에 나약한 인간이 겪는 무저항적인 삶을 공통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민족문화에 있어서의 전통성의 결여다. 이전의 불교연극이 가지던 민중참여, 공동축제의 정신이 사라지고 서구적인 연극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불교희곡 특유의 전통성을 살리지 못했으며 무의식적으로 제국주의 정책에 동조하게 되는 결과를 빚게된 점이다.
셋째로는 시대적 상황을 외면하는 불교정신의 결여를 든다. 당시가 민족사적으로 비참한 수난기였음을 주지할 때 전미개오(轉迷開悟 : 어리석음을 고쳐서 지혜롭게 되고),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운 상황을 극복하여 행복하게 된다)의 불교정신을 외면한 민중과 유리된 안이한 주제들로 일관되어 있다. 이는 전언한 바의 한 유형처럼 순수라는 미명하에 시대적 민중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방관자적 입장에 스스로 처했던 것과도 통한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초기 불교희곡의 성격은 그것이 한국 불교연극사의 귀중한 일 장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불교상의 예술적 측면과 풍부한 연극적 요소를 계승하지 못하고, 시대적 상황과도 유리된 채 소극적이고도 안이한 태도였다는 후대의 지적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