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짙어가는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물이다, 산이다 해서 분주히 떠난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떠남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자연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새롭게 만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해마다 여름이면 찾아가는 곳이 있다. 항상 기도에 열중하시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신 조그만 암자이다. 일주일 정도 머무를 계획을 하고 배낭에 옷가지랑 염주를 챙겨 넣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진다. 암자에 도착하면 스님께서 “올 여름피서 또 왔느냐”며 반기신다. 그 때부터 산사에서의 일과가 새롭게 시작된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신선한 공기를 온몸 가득 느끼며 법당을 향한다. 법당에 들어가 먼저 촛불을 켜고 향을 꽂는다. 그런 다음,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 스님들께서 앉으실 자리를 준비해 놓고, 자리로 돌아와 가만히 눈을 감고 꿇어 앉아 예불시간을 기다린다. 정신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러면 지극히 고요함 순간이 되는 것이다. 새벽 종소리가 들리고 목탁소리와 함께 예불이 시작된다. 예불문을 외며 부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해 본다.
예불이 끝나면 이제 혼자서 절하는 시간이다. 108 염주를 굴리며 한번 또 한번 참회의 절을 하는 것이다. 절을 하는 시간에는 무엇엔가 의지하려는 나약한 자신을 반성하고, 생활 속에서 잘못 길들여진 나쁜 습관들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절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인 운동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으리라. 절을 한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향한 존경의 뜻도 있겠지만 절하는 시간이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순간에 될 수도 있다. 땀흘려 절하는 동안, 자만으로 가득찬 자신이 정말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공유할 이웃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절하는 일이 끝나면 그 다음으로 법구경의 한 귀절을 뽑아서 읽고 왼다. 읽고 외면서 그 속에 담긴 뜻을 음미해 본다. 그리고 하루 동안 그 한 귀절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비록 백년을 살지라도/어리석어 마음이 흐트러져 있다면/지혜롭고 마음의 고요를 가진 사람이/단 하루를 사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짧은 경구로 된 법구경은 나에게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새롭게 다지게 해 준다.
법구경의 한 말씀을 계속 생각하면서 다음으로 참선 자세로 앉아 두 손을 아랫배에 모으고 허리를 펴 본다. 오직 한 마음으로 호홉의 상태를 관(觀)해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가 어지럽게 눈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만 같다. 그래서 조금 뜨고 있던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 정신을 집중시켜 본다. 그러면 어지럽던 생각들도 차차 사라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앉아 있는 것이 너무 지루하고 답답한 느낌이었으나 자꾸 반복하는 사이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을 느낀다. 앉아 있는다는 것은 결국 들뜨기 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리라.
이렇게 절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경을 읽고 참선을 하는 순으로 마치고 나면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잠시나마 세상의 일들을 잊고 산사를 찾아서 자기 자신의 현재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산사에서 하루에 새벽과 오전·오후 세차례씩 하던 여름기도를 마치는 날, 스님께서는 손수 끓인 차를 주시며 “내년 여름 피서 또 올거야” 하고 웃으신다.
이제 다시 바쁜 일상의 내 자리로 돌아와, 하루 하루가 의미있는 나날이 되도록 노력하자는 다짐을 새롭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쁠수록 한가함을 찾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그러한 시간이 바로 절하는 시간이요, 경을 읽는 시간이요, 하루에 단 십분이라도 조용히 앉아 보는 시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