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척량골 곧추 세우고 화두를 놓지 않으신 그 모습은 그 어떤 법문보다 진한 감동이 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스님은 그 누구보다 용맹정진을 좋아하셨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평소 스님이 젊은 수행자에게 내리는 법어는, ‘공부하다 죽어버려라’는 냉골 찬 음성이었습니다. 평생 동안 하루 한끼만 드시면서 장좌불와 수행을 하신 것은 저희 후학들에게는 모범과 귀감이 되었고, 이천만 불자들에게는 환한 등불과 밝은 지침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백련암 환적대 토굴에서 처음 뵈었을 때 스님은 정말 눈빛이 형형한 40대 후반의 훤칠한 수행자였습니다. 바람을 막아 줄 문짝 하나 없고 방을 데워 줄 장작 하나 없는 그 차디찬 토굴에서 고행 정진하던 스님의 모습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게 깨우침을 주는 어록의 한 구절처럼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때 이미 스님은, 출가인의 자세는 앉고 서는 그 자리가 용맹정진의 순간이어야 하고, 먹고 자는 그 자체가 가행정진의 시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없는 가르침으로 보여 주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스님의 그러한 철저한 수행자 정신이 소신과 원칙 앞에 절대 타협하지 않는 ‘가야산의 대쪽’ 성품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혜암慧菴 종정 큰스님!
스님이 계시던 원당암의 미소굴微笑窟 앞뜰에는 날이 무디어지고 닳아진 오래 된 호미 한 자루가 놓여 있습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百丈淸規를 몸소 실천하셨던 스님의 유품이기도 합니다. 그 호미를 통해 공부를 지도할 때는 한없이 자상하였지만 당신의 수행에는 한치의 틈도 허용치 않았던 스님의 살림살이를 새삼 깨닫습니다.
육신의 소멸을 통해 적멸의 자유가 무엇인가를 분명 보여 주고 가셨기 때문에 지금의 이러한 애사哀辭는 어른을 잃은 한 어리석은 후학의 넋두리라 여기실 것으로 믿습니다.
부디 영원한 열반락涅槃樂을 얻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