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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절과 도시 절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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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석선혜 1987년 08월 66호
산중의 여름은 극락세계처럼 느껴진다. 30도가 넘는 뙤약볕이 작열하여도 울창한 숲속에는 새들이 지저귀고 그 아래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서 발만 담구고 있어도, 아니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어디 그 뿐인가! 장작불로 지은 밥, 산나물 반찬, 산내음 섞인 풀내음과 산들바람, 노란 보석빛처럼 말갛게 비추어오는 달빛, 하늘에서 들려오는 듯한 노스님의 독경소리, 구수한 산중 얘기….
이런 산중 절 맛을 본 사람은 오래도록 그 때를 잊지 못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몫끼어 들먹인다. 그러나 도시 중심가나 근교에 있는 절은 그런 분위기가 없으며 분주하고 바쁘다. 일반사회에서 쉬는 일요일이나 공휴일이면 더욱 그러하다. 겨울에도 마찬가지이지만 한창 더운 한 여름에 방학을 하고 휴가를 떠날 때이면 교양대학, 수련대회, 특별법회 등 각종 모임을 늘여서 하기 때문에 이런 때일수록 도시에 사는 스님들은 진땀을 더욱 많이 흘리며 한 여름을 보내야 한다. 모처럼 마음을 내어 절에 찾아온 사람들이 이런 분위기를 보고 절 맛이 안 난다고 한다. (절 맛이 안 난다고 하는 말 속에는 진짜 절 같지 않다는 의미가 섞여 있으며 그곳에 사는 스님도 그와 비슷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한 여름에는 산중 절도 분주하다. 시중에 있는 절에서 수련대회, 특별법회, 성지순례 등 각종 단체, 행락인들이 찾아와서 붐빈다. 시끌벅적한 절 분위기를 보고 절맛을 망쳤다고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봉은사의 l5년 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때가 좋았다고 한다. 무엇이 좋았느냐고 물으면 하루에 몇 차례밖에 왕복하지 않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논뚝 밭뚝의 오솔길로 된 작은 언덕길을 넘어서 오는 길이 좋았고 옹기종기 몇 채 모여 있는 마을 옆을 지나서 절 안에 들어서면 대웅전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오고 몇분 안되는 스님들이 손수 가꾼 채소를 뜯어다가 밥을 먹었던 것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절 앞에 바로 큰 길이나고 차가 빈번하게 오고가고 주변에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옛날의 절 맛이 없어져 유감이라는 것이다.
좋고 좋지 않다는 느낌을 분석해 보면 일반 사회인들이 많이 찾아오고 주택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면 틀렸고 적막한 산중에 묻혀 있고 인적이 드물면 좋다는 얘기이다. 이런 말들은 절에 제법 오래 다녔다는 사람에게서도 듣게 된다. 그사람들 말대로라면 절은 산에 있어야 하며 적막하고 인적이 드물어야 하고 스님들이 옛날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감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들은 그렇게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스님들이 현대의 문명 사회를 이끌어가기를 요구하며 더러는 추궁하기도 한다.
진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지만 사회는 시시각각으로 변모해 가므로 사회를 알지 못하고서는 진리를 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병의 내용을 알고 병에 따라서 처방이 달라지듯이 좋고 훌륭한 진리의 말씀(약)일지라도 사회를 알아야(처방) 베풀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회를 안다는 것은 극장구경하듯이 한번 다녀왔다고 해서 알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생활이 비슷하고 자주 접하며 눈, 코, 귀, 마음으로 직접 느끼고 체득하여 알아야 정말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일이다.
개헌이다 호헌이다 하여 시시비비 속에 길에만 나서면 최루탄 개스에 콧물 눈물을 연신 닦아 내며 재채기로 목구멍에 열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소란스러움속에 사회가 술렁거릴 때에, 국정 정당 지도자가 각 야당 지도자와 각 종교 단체 지도자들을 만나서 한 마디씩 들어보자는 초청의 전후 사정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하여 잘 듣고 보아서 알고 있을 것이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민주화의 개헌, 구속자 석방, 연금 해제, 대통령선거 직선제 등의 얘기를 하고 갔다. 마치 열명의 아들을 둔 부모가 괴팍한 아들 성미를 생각하여 먼저 챙기기나 한 듯이 우리 불교지도자는 맨 나중 차례가 되었다(스스로 우리를 위로한 말도 됨). 앞에 다녀간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하고 갔으니 우리는 덕담(德談)이나 하자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시국수습에 노고가 많으십니다. 올림픽 잘 되어야지요’라는 말 등으로 일관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 교계의 젊은 스님들을 또 한번 실망케 했으며 사회인들에게 시대에 뒤진 불교라는 오명을 안겨 주었다.
생각해 봅시다.
사회에서는 스님들의 의식과 생활이 고궁이나 박물관의 옛날 유물처럼 옛날 집에 살고, 옛날 옷을 입고 옛날에 머물러있기를 요구하면서, 또 다른 바램은 시대에 맞으며 감각있는 생각 속에서 말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으니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우리의 바램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이것은 현대화된 집에서 양복입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스님들이 현대화된 미술 음악 등 예술품을 감상하고 사회의 일반 서적(잡지 종류도 포함)과 신문을 보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하면서(일부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진 스님도 여기에 포함된다), 어떻게 불교가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시대의 흐름을 능숙하게 타기를 바라는가? 요즘 젊은 스님들이 이런 지탄을 감내할 각오를 하고 민중 불교를 외치면서 시국 성명서를 내고 데모를 하는 것을 보고 사회에서는 “중들이 미쳤다. 출가한 승려답게 산중에서 수도나 하지 무슨 데모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보는 것이 사회 전부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관점이라고 여겨진다.
시중에 있는 절은 항상 사람이 많이 찾아오고 기도, 법회, 수련대회, 교양대학 따위로 바쁘고 시끄러워야 불타의 보살도 사명을 다하는 것이며, 사회에 이익을 주는 불교가 될 수 있다. 감상적이고 외형적인 것에만 치우쳐서 빌딩 안에 20, 30명 내외의 현대화된 포교당을 절 맛이 안 난다고 하며 찾기를 꺼리는 불자가 있다면, 현대 사회에서 불교는 멀어져만 갈 것이다. 산중의 참선 수행을 하는 절에서도 장로 자각(長蘆慈覺)선사의 좌선의(坐神儀)에 ‘반야(般若)을 배우는 보살은 먼저 대비심(大悲心)을 일으키고 큰 서원을 세워서 삼매(三昧)를 닦되 맹세코 중생을 제도하라’고하신 말씀과 같이 수련대회, 법회 등으로 한여름 열기처럼 뜨겁게 바쁜 한 철이 되어야 미래가 크게 열릴 것이다.
3일 전부터 청년회 총각 처녀 불자들이 수련대회를 하러 와서 주의를 시켰는데도 잠자리에 든 지 두 시간이 지나도록 재잘거린다. 그리고 어젯밤에는 3천배 기도를 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모두들 힘이들어 보였지만 환희스러운 법열(法悅)에 차 있는 것을 보니 기쁘다. 무리를 지어 바다나 등산을 가는 유혹도 마다하고 불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겠다고 진땀을 흘리면서 3박 4일 동안 야단법석을 떨고는 ‘스님들 성불하세요’ 하고 합동으로 큰 절을 하고 돌아가는 모습도 참으로 기특하다.
올여름 내내 시원한 산중 절에 이런 열기가 가득 채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