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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가을 산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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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임정아 1997년 11월 189호
산사는 아무 때나 다 좋다.
꽃 피는 봄, 싱그러운 여름, 눈 내리는 겨울… 심지어 인파로 몸살 앓는 행락철에도 산사만의 정결한 분위기는 인간이 묻혀오는 온갖 소음과 때를 정화시켜 주어 번잡 속에서도 스스로 소란해지지 않는 비밀을 안겨 준다.
그러나 역시 계절로 치면 바다는 겨울바다가 좋듯이 산사의 분위기는 늦가을과 어울리지 않을까? ‘늦가을 산사’ 라는 말은 그 자체에 한없는 울림과 여운을 머금고 있어, 단 두 마디의 이 글이 그대로 한 소절의 시, 한 폭의 그림, 한편의 명상록이 된다.
누구라도 늦가을 산사의 고즈넉한 마당 한 귀퉁이에 서면, 못에 고인 나뭇잎을 보듯이 자기 존재의 심연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으리니.

남녘의 아름다운 도시 순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있던 십여 년 전, 1987년의 가을은 특별하였다. 지금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모태가 된 ‘전국교사협의회’ 가 여기저기서 태동되던 때가 바로 그 해 가을이었다. 6월 항쟁의 결산이기도 했던 ‘전교협’은 교육민주화를 열망하는 교사들 희망의 텃밭이었다. 우리 ‘순천교협’ 도 9월에 창립한 이래 갖가지 사업들로 매우 바빴다. 특히 우리 학교에 부당 해직된 여교사가 있어, 창립 다음날부터 그에 대한 대책회의와 모임이 끊이지 않았다. 그 해 가을은 날마다 새벽 두시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회의로 지나갔다. 끝이 없던 회의, 토론, 집회의 분주한 일상속에서, 동료교사의 복직을 위한 치열한 싸움 속에서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 학교 앞 코스모스가 피고 지는지도모르는 채 나날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에 들어가니 한 아이가 눈을 감아 보라 하고는 가을의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걸어 준다. 아이들의 환호와 박수소리에 눈을 떠 보니 놀라와라, 나의 목에는 새빨간 맹감 목걸이가 걸려 있는 것이었다. 염주처럼 길게 늘어진 맹감 목걸이는 어느 홍보석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눈부셨고 황홀하리 만큼 영롱했다. 행복하였다. 학교 뒷산에서 그 열매를 따느라 맹감나무 가시에 찔리기도 했을테고, 예쁘게 실에 꿰느라 팩 애먹기도 했겠지.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그 우직한 순정성.
아이들이 내게 계절을 일깨워준 것이다. 아 가을이구나, 벌써 맹검이 빨갛게 익은 만추인데…. 그 날도 여지없이 진행됐던 교협 회의에 나가 나는 긴급제안을 하였다. 모든 것 다 잠시 미루고 이번 주말엔 가을을 만나러 가자고. 그래서 우리는 그 토요일 오후에 늦가을 산를 찾아갔다.순천 시내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선암사에 갔다. 순천에서 광주쪽으로 가다가 쌍암을 거쳐 선암사에 이르니 가을해가 짧아 어느덧 저물녘이다. 그때만 해도 선암사는 그지없이 호젓하여 절 입구에 산장 두 채와 식당 서너 집이 있을뿐아었다.
언제나 아륨다운 승선교는 저무는 햇살 아래 그 자해 더욱 단이하고, 다리 아래 맑고 푸른 소沼에는 붉은 단풍잎들이 잠겨 있었다.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한줄기 바람이 획 불어왔다. 늦가을 저녁에 부는 바람은 왜 그리도 스산하고 적요한지. 우수수 또다시 나뭇잎이 지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물살을 튕기며 포르르 날아올랐다. 이상도 하지, 그 몸짓이 산사의 적요를 깨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무한정한 고요를 몰고 왔으니. 마치 조용한 산골의 깊은 밤 어느 집 개 짖는 소리가 더욱 더 고요를 실감케 하듯이.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행여 정적을 깰세라 우리 발걸음도 다들 조용했다. 운동의 선봉에선 그리도 열렬하고 씩씩하던 사람들이 저물옆 산사의 품안에 안기니 한결같이 그윽하고 고즈넉해진다. 저마다 자기 내면의 우물속으로 깊이깊이 침잠하고 있는 듯.
문득문득 쓸쓸하고 눈물겨워지는 그런 계절의 산사에서 우리는 잎을 다 떨구어 낸 나무들처럼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마음의 행로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자기 반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며 도토리를 줍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번 연말엔 자신이 먼저 아이들에게 카드를 보내야겠다며 고운 낙엽을 주워들기도 하면서.
날이 어두워져 산장에 내려와 저녁을 지어 먹고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니 가을밤은 깊을 대로 깊었다. 단풍철에는 빈방이 없다던 산장엔 스무명 남짓한 우리 일행뿐. 스웨터를 어깨에 두르고 투닥투닥 타오르는 불꽃에 가끔씩 장작을 얹어주며 우리는 나직나직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육 운동하느라 바쁘다며 아이들에게 소홀해지지 말자.
운동의 핵심은 결국은 사랑이라는걸 잊지 말자.
사나워지지 말자, 운동은 치열하게 하되 더욱 낮아지고 부드러워지자….
밤새워 주고받은 우리 이야기의 핵심은 ‘투쟁을 거쳐 사랑으로!’ 였다고나 할까? 늦가을 산사에서 깨달은 근원적이고 내면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이 새벽을 향해 가는 어둠처럼 깊어만 갔다.
새벽녘에야 자려고 누웠으나 창밖의 풀벌레 소리 아까워 선뜻 잠들지도 못했던 그 가을밤, 모두 다 가을이 그립긴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열심히들 만나 이런 저런 일들을 수없이 했으면서도 그 시절의 사진 한 장 없는데 그 가을날 선암사에서 찍은 단체 사진이 꼭 한장 오래된 사진첩에 끼워져 있다. 저마다 멋을 낸 등산복과 모자에 단풍잎 한 잎 꽂고, 나는 들국화 한 다발까지 안고 있는 낡은 사진 한 장. 그 얼굴들 가운데서 많은 이들이 이 년 뒤 전교조 사태 때 해직되었고, 어떤 이는 해직 기간에 병을 얻어 끝까지 복직하지 못하기도 했다.
다음날, 일행은 아침 일찍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 가고 나 혼자 선암사에 남았다. 그 날 학교의 일직이었는데 갑자기 결정된 산행인지라 그걸 바꿀 여유가 없었다.
아, 이른 아침의 산사! 비할 데 없는 고요와 청정함, 투명함… 마주치는 영혼의 맑은 눈망울….
그렇게 맑아지고 깊어진 마음으로 경내를 한바퀴 둘러보고 내려오던 길, 일주문 근처에서 샛노란 탱저를 줍고 계시는 스님 한분과 마주치게 되었다.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 소복히 탐스런 탱자와 번져나는 향기, 쏟아지는 가을 햇살, 나도 쪼그려 앉아 몇 알 주워서 스님 봉지에 담아드렸다. 해맑은 표정의 스님이 싱긋 웃으며 허리를 펴셨다.
“탱자차가 향기롭고 좋습니다. 이걸 나눠 드리지요. 차 끓이는 법도 가르쳐 드리고.”
그렇게 인연 맺은 탱자차를 나는 십년째 즐겨 마시고 있다. 진하고 독특한 향기에 젖다보면 따스한 귤빛으로 우러나는 찻잔에 그 가을 산사의 바람이, 햇빛이, 나뭇잎이, 그리고 스님의 넉넉한 미소가 담기어 찰랑거린다. 언제부터인가 아끼는 벗들에게 탱자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스님이 내게 그러하셨듯 나도 누군가에게 가을의 향기를 선물하는 일은 더없이 그윽한 기쁨이었다. 우체국에서 소포의 내용물을 묻는 여직원에게 \'가을\'이라 대답하면 놀라 쳐다보다가 내가 쥐어주는 탱자 한 알에 석류알처럼 부서지던 웃음….

가을이 깊다. 이 가을 몹시도 그 곳이 그립고, 옛날의 그 벗들 사무치게 보고 싶다. 어쩌면 다음주에라도 훌쩍 전라선 기차를 타고 거길 찾아갈지도 모르겠다.
선암사엔 지금쯤 차나무꽃 하얗게 피어 있을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