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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자의 끝은 무엇을 가리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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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형균 1987년 08월 66호
문창(門窓)을 두드리는 빗줄기는 점점 투박해져 간다. 손가락 사이로 거머쥔 소주잔이 웬지 무겁기만 하다. 이럴 때의 소주는 차라리 고독이다. 그 무게를 버리듯 힘껏 쥐고 입안에 털어 넣지만 비어버린 소줏잔은 더욱 음성스러워 다시 술을 채운다.
창밖에 흥건히 젖은 하얀 산당화(山堂花)가 문득 20년 전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케 한다.

그때도 진달래는 등성이와 계곡 사이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어깨에 멘 자루에는 이미 반 너머 진달래꽃이 채곡채곡 담겨 있었고,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키위해 꽃봉오리 뒤를 만져 보던 손가락은 진득한 색깔로 끈적거리고 있었다. 어느정도 두견주(杜鵑酒) 담을 만큼의 양이 되었다고 생각된 나는 자루의 아귀를 동여매고 아까부터 들려오던 목탁소리를 따라 바위를 타고 산을 넘기 시작했다. 봄때깔의 산색은 한결 부드러웠고 상쾌한 땀방울은 나를 안온케 했지만 그때까지도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인연의 장(場)은 갈량치 못했다.
소나무가 어우러진 널찍한 바위, 한켠에 주장자를 뒤어 놓은 스님 한 분이 고요를 즐기고 계셨다. 승의는 나무숲 사이에서 한결 빛나 보였고 거구(巨軀)의 풍채는 늠름하였으며 적당히 긴 하얀 수염은 일견 도송(道僧)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문득 침범하여 명상을 깨뜨린 나를 바라보시는 스님의 눈길은 어떤 이상한 경지로 나의 혼신을 몰고 갔다.
그때 나는 갓 입문하여 육조단경을 배우고 있었고 3천배 한 것을 큰 자랑으로 알던 철부지였지만 웬지 스님 앞에서는 합장 정례함에 마음이 온통 성숙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디서 온 누군고?”
심원한 음성으로 자상히 물어보시는 스님은 젊은 학생의 인사를 예사로 보아넘기시지 않았다. 대전(大田)의 아무개라고’ 그리고 학생회에서 불교를 배우고 있다고 말씀드리기까지는 쉬웠다. 진달래꽃 담긴 자루를 설명하고 신경통에 좋다고하여 어르신네 술담아 드릴려고 한다니까 환히 웃으시는데 마치 고향에 계신 할아버지 같으셨다. 문득 용기를 내서 여쭈었다.
“제가 요즈음 무애(無碍)라는 말을 배웠는데 무얼 어떻게 하라는지 통모르겠읍니다.”
고놈 기특하다는 듯 지긋이 나를 노려보시던(?) 스님은 또 한참을 생각에 잠기셨다. 그 고요는 앞에 엉거주춤한 나의 삼장을 오그라뜨리는 것 같고 퍽이나 길게 느껴져 괜히 여쭌 것 아닌가 하는 후회가 구름처럼 흘렀다. 스님이 가만히 주장자를-그것은 길어서 내 가슴 앞까지 오는-들어서 나를 가리키셨다. 또한 엄숙히 노려보면서 “네 가슴에 용광로(鎔鑛爐)를 지녀라, 그것은 뜨거워서 너의 욕심도 어리석음도 부질없음도 모두 녹일지니 그것이 걸림없음이라. 항시 생활함에 그 용광로를 뜨겁게 하라. 무애지도(無碍之道)니라”고 선언하신다. 그것은 나에게는 선언이었다. 몇 시간 산등성이를 누빈 것보다도 많은 땀이 등어리를 적시고 흘렀다. 무언가 가슴을 관통하는 빛이 누구이신지도 모르는 스님의 주장자 끄트머리로부터 나의 미래생(未來生)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후 나는 불학(佛學)에 전념하였다. 어릴적 할아버지가 퇴침 위에 종아리 걷어 서게 하시고 매를 내리시다가 끝내 항상 이르시던 ‘선비는 무릎이 잘려도 굽히
지 말지니라’는 소신(所信)의 길과 함께 스님의 주장자 끝이 가르친 길은 곧 생(生)의 향방이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던 문학도 버리고 불교학과를 택하고 그리고 기자(記者)의 길로 나아갔다. 배가 고파서 결혼 후에 장사도 하고 그러다가는 해운회사에 입사하여 7년여의 세월을 가꾸기도 했다. 기업(企業)에서의 생활은 어떠한 수도(修道)의 길 못지 않은 수신(修身)의 도량이 되었다.
다시 불가로 돌아온 지 3년 여, 세월은 바뀌어 가까이 하던 사람도 멀어지고 사람들의 높낮이도 바뀌었다. 새롭게 뵈는 훌륭한 스님들도 가까이하게 되었고, 여전히 후안무치한 불가의 마구니가 묘하게도 휘젓고 있음도 보게 되었다.
배고파 부처님 일을 떠날 때, 소신대로 부처님 일을 하지 못함을 진저리치며, 내다시는 밥먹기 위해 부처님 일답지 않은 일에 얽매이지 않으리라던 맹세가 오늘의 나를 괴롭힌다. 본시 가고싶은 언론의길, 불가의 주요문제라고 딴에는 심각해하는 여론의 광장에 차마 이르지 못하고 두번씩이나 꺾였다. 아니 그것은 나의 부족함을 웅변하는 순리(順理)였다. 그럴만한 결과이다.
다시금 부처님 땅에 섰다. 나약해지는 마음을 고추세우며 순수가 통하지 않으면 고집으로, 정열이 통하지 않으면 인내로. 다시금 장대같이 굵어진 빗줄기를 보며 앙연(快然)해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있다고 그 마음이 식지 않음과 같이, 우리의 길이 까마득하다 해도그것은 결쿄 절단(絶斷)이 아닌 것처럼.
소줏잔에 다시 고독을 부으며 금강(金剛)을 창간할 때 했던 얘기를 추슬린다.
‘진리 그 자체를 이루신 세존이시어, 당신의 발등에 입맞추오며, 이제 우리는 머리채 풀어 당신이 딛고자 하는 진흙길 위에 덮사옵니다.
당신의 혜명이 누리에 나툰지 하많은 세월, 이제 우리가 해야 할 때가 밝았읍니다.
이미 꽤많은 무리가 일주문 밖에서 맴도는 까닭은 당신의 크기가 모자람이 아니요, 우리가 그 언저리를 정갈히 다듬지 못했던 핏기서린 세월이 있었던 까닭이며, 일주문의 넓이를 한계짓는 게으름이 있었기 때문임을 느껴 갈무리하고 있나이다.
우리네와 같이 하는 모든 이들이 또한 이와 같사옵니다.
머리밝음을 내려주옵소서.
능히 행할 힘을 부어 주옵소서.’

그리곤 다시 말한다. 창문을 닫으며.
‘실패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직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것을 저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