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라는 말이 이즈음은 묘하게 때묻은 정치용어가 되어버렸지만, 산에 오면 나는 자주 운명이나 섭리와의 화해를 생각하곤 한다. 십대에 자기를 그렇게 격앙시켰던 운명, 섭리에 대한 노여움과 거부를 돌이켜보고 그 오랜 철없음을 혼자 웃게 되는 것이다.
여행은 때로 사람의 의식을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 그래서 뜻하지 않았던 상념들이 자신도 의식치 못하는 사이에 스며들어 불치의 병처럼 마음에 쌓여 있던 오랜 쓰라림, 기억 자의식들을 불가사의한 서늘함으로 어루만져 주곤 한다. 그것이 자연의 치유력인지 무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몇번인가의 놀라운 효험을 기억한다.
어느 해인가 계룡산으로 놀러 갔던 여름이었다. 친구와 함께 숫용추 부근에서 목욕을 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뜨거운 바윗길을터벅터벅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초라한 광목 배낭을 젊어진 예닐곱살난 남자 어린이를 앞세우고 아기를 업고 걸어오는 젊은 여인이었는데, 첫눈에도 문둥병 환자임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좁은 길에서 마주치자 여인은 돌아서서 외면하고 어린이도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길을 피해 주었다. 옆을 지나치면서 무심히 들고 있던 껌을 주었는데 어린이는 놀랍게 예의바른 태도로 “고맙습니다” 하고 말했다. 옆을 지나쳐 몇걸음 내려오다가 나는 문득 자신도 그 어린이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대꾸했다는 생각이들었다.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삼모자는 이미 더위에 지쳐 허덕이며 산모롱이를 지나 가고 있었다.
두어되 남짓한 썰어 든 배낭을 짊어지고 문둥병 환자인 어머니를 따라서 인적없는 산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어린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웬지 우리가 함께 서로의 고통을 살아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듯했다. 손등과 손바닥처럼, 목숨 그 자체의 어떤 다른 모서리일 뿐 우리가 결코 남남이 아니라는 이상한 느낌이 그뒤에도 오래 마음에 남아 지워지지않았다. 그해 겨울에 거리를 지나다가 꽃집 유리창 안에 유난히 희고 고운 장미꽃이 있는 것올 보았다. 눈에 띄고 아름다운 꽃이었지만 별로 살 마음도 없어서 그냥 유리창 밖에서 보기만 했는데, 그때 참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예쁜꽃을 보았으므로 계룡산의 그 어린이도 기쁠 거라고…. 그 뒤에 곧 정신이 나서 ‘아전인수다’ 하고 웃었지만 그 묘한 느낌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아서 그해가 다가도록 퍽 기분이 좋았다.
등산여행의 또 하나 은밀한 기쁨은 어지간한 산어이 틀림없이 경치좋고 양지바른 계곡에 숨은 듯 앉아 있는 절을 찾는 일이다. 관광지의 이름난 절보다는 산그늘에 숨어 있는 이름없는 암자가 더 의지가 되고, 손질이 잘된 새로 지은 절보다는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낡은 절이 더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투명한 어둠이 배어드는 초저녁 하산길에 절 경내를 지나며 저녁 예불을 위하여 법고를 치는 젊은 스님의 단정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처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믿지 않으면서 나는 늘 안도와 편안함을 느낀다.
도시에서와는 달리 산속 절간에서는 시간이 멋대로 흘러가버리지 않고 옹달샘 샘물처럼 고여 넘친다. 그리고 그 시간속에 목숨 가진 것들의 가없음을 위하여 애쓰다가 성공하고 좌절하고 실패한 마음들이 묻어 있기 때문인지, 낡은 절경 내에는 언제나 애틋한 사랑같은 고적합이 감돈다. 어떤 섭리, 전능한 신의 존재야 어떻든 세상에 사람만큼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번 여름 여행에서도 언젠가 운주사 절터에서처럼 천년, 아니면 몇백년 전에 죽어버린 이들이 남겨 놓은 지극하고 청정한 마음들과 어느 산모롱이의 낡은 암자에서 만나게 되기를 은근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