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의 돌 사이로 치달리는 물소리 겹겹의 산 울리매(狂奔疊石吼重巒)
사람의 말 지척 사이에서도 분간하기 어렵구나(人語難分咫尺間)
항상 시비 다투는 소리 귀에 이를까 두려워(常恐是非聲到耳)
짐짓 흐르는 물로 모두 산을 에워싸게 하네(故敎流水盡籠山)
고운은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 귀에 익은 이름이다.
다만 이 시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고운이 당나라로부터 귀국 후의 행적을 《삼국사기》 <열전>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운 귀국 후의 신라 정세는 지극히 어지러웠고, 고운 역시 자신의 학문과 포부를 발휘하지 못하여 불우한 신세를 상심하고 벼슬할 뜻이 없이 소요 자적하여 산림 강해江海에 노닐며 시를 읊고 풍월을 즐겼다.
만년에는 처자를 거느리고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여 출가한 그의 형 현준賢俊 및 정현定玄 두 스님과 도우道友가 되어 한가로이 지내며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위의 시는 고운이 가야산에 은거하던 시기에 지은 것으로서 속진의 시비에서 벗어나 깊이 산중에 묻혀 지내고자 하는 심정을 술회했다.
오늘날 홍류동을 찾는 사람들이 잠시 이 제시석 앞에 걸음을 멈추고 아득히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고운 당시의 심회를 생각해 보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