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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의 삼법당과 사찰의 전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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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야 - 이상해 2002년 01월 239호
사찰에는 용도와 기능이 다른 건물들이 집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건물들은 그냥 모아져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며, 부분을 이루는 각 건물이 모여 전체로써 하나의 사찰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각 건물이 성격을 달리하는 사실을 반영하듯 사찰의 건물들은 각각 그 이름이 다르다.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예배하고 불법을 펼치는 기능을 가진 건물들이다. 이러한 건물들 이름 끝에는 ‘전殿’자가 붙는데, 사찰 가운데 가장 위상과 격이 높은 건물이다. 해인사에서는 대적광전, 판전(법보전), 명부전, 응진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타 일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대웅보전, 보광전, 극락전, 약사전, 팔상전 등도 이러한 예에 속한다. ‘전’에 비해서 한 단계 아래에 속하는 건물은 ‘당堂’으로 끝나는 이름을 가졌다. 해인사의 궁현당, 적묵당, 심검당, 보경당, 퇴설당 등은 여기에 속한다. ‘전’, ‘당’ 다음에 속하는 건물들은 이름 끝에 ‘각閣’, ‘루樓’ 등이 붙어 있다. 이러한 구분은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건물의 용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전’으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건물들은 다시 주불전으로 사용되는 것과 부불전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구분된다. 해인사에는 주불전인 대적광전 외에 명부전冥府殿, 응진전應眞殿, 독성각獨聖閣 등 부불전의 역할을 하는 전각이 있다. 이 전각들은 모두 대적광전 서측에 위치하는데, 해인사에서는 흔히 삼법당三法堂이라고 부른다.
명부전은 대적광전과 나란히 서서 남향을 하였고, 응진전은 명부전 앞 서쪽에 위치하여 동향을 하며 대적광전을 바라보고 있다. 대적광전 서쪽, 명부전 남쪽, 응진전 동쪽에는 이들 건물로 자연스럽게 마당이 형성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작은 석탑이 있다.
최흥원崔興遠(1750~1800경)의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에 판전 아래 동쪽에 시왕전十王殿이 있고, 대적광전 서쪽에 진상전眞常殿이 있는데, 전내殿內 좌우에 두 개의 금탑金塔이 있다고 하였다. 시왕전과 진상전은 아마도 1817년 해인사에 일어난 대화재 때 소실되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지 않았던 듯하다.
해인사의 명부전은 1873년 보정普淨 스님이 옛 진상전 터에 세웠다고 한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익공으로 포를 짠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지옥 중생을 모두 제도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목조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셨고, 그 좌우에 도명道明 존자와 저승에서 죽은 이들을 재판한다고 하는 시왕상十王像을 모시고 있다. 이 시왕상은 1878년 경남 진해 웅천의 성흥사聖興寺에서 이안해 왔다고 한다. 명부전은 저승에 간 이들의 넋을 제도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십구재를 비롯한 갖가지 제의祭儀들이 이곳에서 행해진다. 많은 사찰들에서는 명부전을 지장전이라고도 부른다. 명부冥府란 사후死後 세계를 말한다.
응진전 건물은 본래 역대 고승의 영정을 봉안한 해행당解行堂이었는데, 1918년 조사전으로 영정을 옮기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건물 내부 가운데에는 흙을 빚어 조성한 석가여래상이, 그 좌우에는 십육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십육 나한상은 1918년 대적광전 뒤 수다라장과 법보전 건물 사이 서쪽에 위치한 서사간판전西寺刊板殿에서 옮겨 온 것이다. 지금의 건물은 1817년 해인사 대화재 때 소실된 것을 제월당霽月堂 성안聖岸 대사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익공으로 포를 짠 맞배지붕으로 다시 지은 것이다. 응진전은 나한전, 영산전으로도 불린다.
독성각은 명부전 서북쪽 뒤에 자리잡고 있다. 6각형 평면을 한 다포계 모임지붕의 건물인데, 지금의 건물은 1940년 지었다고 한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건물에는 신라 말 고려 초 화엄종의 고승이었던 희랑조사상希朗祖師像을 봉안해 왔었는데, 1918년 희랑조사상을 조사전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독성상獨聖像을 모시면서 독성각으로 불렀다. 독성은 불교에서 석가모니처럼 홀로 깨우친 자를 말한다. 본래 독성각에는 용왕龍王, 산신탱山神幀이 독성상과 함께 모셔져 있어서 삼성각三聖閣이라고도 하였는데, 해인사에서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과 거리가 먼 토착신앙, 민간신앙과 관계되는 시설들을 모두 철거하면서 없어졌다.
해인사의 삼법당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불교사찰 전각들의 구성 형식이 어떻게 변해가며 한국 특유의 사찰 배치형식을 형성해 갔는가를 이해하는 데도 참고가 된다.
조선 중기 이후 우리 나라의 불교는 종파간의 구별이 강제적으로 없어진 이른바 ‘통불교’가 된다. 이와 더불어 도시나 읍내에 자리잡고 있던 사찰은 거의 없어지고 산중불교 시대가 된다. 산중사찰의 전각은 조선 중기를 지나며 새로운 배치형식을 만들어 간다.
예불용 전각은 어떤 대상을 신앙하는가에 따라 모시는 부처님이 결정된다. 대승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이 세상은 차원이 다른 열 가지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하위에 속하는 지옥세계에서 시작하여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天,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을 거쳐 가장 상위에 속하는 부처님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지옥에서 천天까지는 깨닫지 못한 존재들로서 육취六趣라 하고, 이들의 세계를 육도六道라 하며, 전생의 업에 의해 윤회한다고 한다. 지옥은 죄업에 대한 고통을 겪는 지하의 감옥이고, 아귀는 항상 굶주림과 탐욕·질투에 시달리는 귀신들의 세계이며, 축생은 새, 짐승, 벌레, 고기 등을 일컫고, 인간은 육취 중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천天은 신중神衆으로서 불법을 수호하고 마귀를 물리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 사찰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금강문, 천왕문 등에 형상으로 표현되어 속계俗界와 불계佛界를 경계짓는다.
성문은 깨달음의 세계에 입문한 불제자들, 연각은 부처님의 교화 없이 혼자 깨달음에 이른 성자, 보살은 수행의 결과 성불 직전의 단계에 이른 자들, 부처는 모든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는 최상의 존재를 가리킨다. 성문, 연각, 보살, 부처는 깨달음의 경지에 있기 때문에 사성四聖이라 한다. 이들 사성계四聖界는 윤회의 사슬이 없고 다만 원력에 의해 왕생한다고 한다. 사찰은 이들 사성을 예배하고, 스스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장소이다.
사찰공간은 사성계와 관련지어 일반적으로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깨닫지 못한 자들의 공간은 가장 위계가 낮은 하단인 신중단에, 성문, 연각, 보살은 중단에, 부처님을 모시는 불전은 상단에 속한다. 상단에는 주불전이, 중단에는 명부전, 영산전, 팔상전 등의 전각이, 하단에는 칠성각, 산신각, 천왕문 등이 자리잡는다.
사찰은 곧 신중, 성문, 연각, 보살, 부처들의 세계이며 각 예불용 전각은 이들을 모시고 예배하기 위한 공간이다. 사성을 모시는 건물들은 격, 규모, 형식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주불전은 주로 포집으로 조영되었고, 보살전은 익공계, 혹은 간단한 포집으로 되었으며, 신중각은 포가 없는 민도리집이 주류를 이룬다. 건물의 규모도 보살전이나 신중각은 세 칸이 보통인데 비해, 주불전은 그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찰내 가장 중심되는 곳, 위계가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같은 세 칸 규모의 건물일 경우라도 주불전의 기둥 간격은 보살전보다 훨씬 더 넓다우리 나라 사찰의 주불전은 창건 당시의 소의경전, 신앙형태에 따라 모시는 주불이 다르다.
법화신앙은 석가모니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고, 건물은 대웅전, 대웅보전 등으로 부른다. 대웅전은 우리 나라 사찰 법당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하였는데, 석가모니를 대웅세존大雄世尊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 석가모니불 단독으로 안치하기도 하지만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불을 안치한다.
화엄신앙은 비로자나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건물은 대적광전, 대광명전, 비로전 등으로 부른다. 비로자나불은 온 우주를 진리의 빛으로 두루 밝혀주는 부처님으로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고 으뜸되는 부처님이다. 비로자나불의 세계는 광명과 대적정의 세계이므로 대광명전大光明殿, 적광전寂光殿이라고도 한다. 사찰의 주불전에 모셔져 있지 않을 경우 비로전, 화엄전이라고 한다.
미타신앙은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건물은 극락전, 미타전, 무량수전 등으로 부른다. 아미타불은 서방극락정토를 주관하는 부처님으로써, 내세, 극락왕생이 신앙의 대상이 된다. 아미타여래는 한없는 광명의 뜻으로 무량광불無量光佛, 한없는 목숨의 뜻으로 무량수불無量壽佛로 표현되기 때문에 아미타불을 모신 불전을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극락세계는 평안하고 풍부한 안양세계安養世界라고도 해서 안양전이라고도 하며, 사후 극락왕생할 때는 연꽃에서 피어난다고 해서 연화전이라고도 한다. 공주 봉은사 안양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한 불전이다.


미륵신앙은 미륵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건물은 미륵전으로 부른다. 미륵은 법기보살이었으며 도솔천에서 공덕을 닦다가 56억 7천만년 후에 지상에 내려와 용화세계를 열어 3회의 법회로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미륵전에는 미륵 삼존을 모시는데, 금산사 미륵전이 대표적이다. 익산 미륵사지에는 금당이 셋 있는데, 한 건물에 미륵 삼존을 모시지 않고 세 건물을 세워 각기 한 분씩 모신 것으로 판단된다. 법주사 용화전, 용화사 용화전은 미륵불을 모신 전각들이다.
약사신앙은 약사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건물은 약사전으로 부른다. 약사여래는 병고를 없애고 재난에서 구해 주는 부처님이기 때문에 현세 구복을 위한 것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고양 흥국사의 주불전은 약사전이다.
관음신앙은 관세음보살을 주존불로 모시고, 원통전, 관음전 등으로 부른다.
조선시대의 통불교 사찰은 다른 신앙체계의 전각들까지 경영하는 포괄적 구성형식으로 나타난다. 통불교계의 많은 사찰들은 하단, 중단, 상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주불전 앞에는 마당을 조성하고 그 좌우에는 선방과 요사를, 그 앞에는 누樓를 세워 마당을 에워싸는 배치형식을 하고 있다. 비어 있는 마당이 중심이 되어 그 둘레로 전각이 배치되는 형식이다. 이러한 배치형식은 규모가 작은 사찰이나 암자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며, 전각들이 많은 사찰의 경우는 여러 원院이 병치되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전자의 예를 보이는 사찰로는 경산 환성사, 사천 다솔사, 영광 불갑사, 완주 화암사, 익산 숭림사, 홍천 수타사 등을 들 수 있다. 후자의 예로는 강화 전등사, 고성 옥천사, 부산 범어사, 상주 남장사, 순천 선암사, 송광사 등을 들 수 있겠다.
사찰들이 이렇게 배치되는 현상은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후 재건한 사찰에서 많이 보인다. 그 이전까지 대찰이었던 사찰들에서도 사찰 배치의 중심축이 갖는 상징성이 약화되고, 건물들은 원院을 중심으로 분산되거나 확산되며 배치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해인사의 경우는 진입부에서 주불전이 있는 대적광전까지 중심축이 갖는 상징성이 깨어지지 않고 잘 지켜지고 있다. 통불교계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분산된 공간 구성이 아니라 일주문에서 천왕문, 해탈문, 구광루를 거쳐 대적광전에 이르는 중심축은 뚜렷하게 지켜지고 있고, 삼법당은 부불전으로서 대적광전 서쪽에 위치하여 하나의 원院을 형성하면서도 사찰 전체의 중심축을 흩뜨리지 않고 있다. 해인사는 창건 이후 조선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역이 넓어지고 전각들이 더 들어섰지만 그 기본 배치형식은 크게 흩어지지 않은 좋은 예를 보이는 사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