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老師)는 너무나 엄하고 추상같았다. 일말의 틈서리도 그에게는 있을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보면 그는 언제나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고 선정에 들어 있었다.
불을 밝히고 종을 치고 다기물을 갈고 향을 피우고 그러면서 동자승(童子僧)은 가슴이 탔다.
오늘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텐데.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워나가다 보면 회초리를 든 노사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그러면 어김없이 슬슬 입에서 터져 나오던 염불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큰일이구나 생각하면 마음은 더 바빠지고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고 눈을 반개(半開)한 노사의 시퍼런 눈이 자신에게 와 있을 걸 생각하면 명치끝이 탔다. 어떻게 예불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서면 어김없이 노사는 눈을 치뜨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서 회초리 가져 오너라! ”
회초리가 종아리에 닿을 때마다 동자승은 이를 악물었다.
“될성 싶은 나무 떡잎부터 알아보는 법.”
노사의 추상 같은 고함소리를 뒤로하고 새벽바람 속으로 나서면 그는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밉다기보다는 그리웠다. 이곳으로 데려와 사람 만들어 달라던 그 어머니가 밉기보다는 그리웠다.
그런 날이면 왜 그렇게 바람이 차던지, 그리고 그 시린 바람 속으로 왜 그렇게 낙엽은 분분히 떨어져 내리던지. 도량에 낙엽 하나 굴러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는 쓸고 또 쓸고 그러노라면 손은 얼어터져 고사리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미친 바람처럼 낙엽송들을 들었다. 수북히 낙엽이 도량으로 떨어져 내리면 그는 쓸고 또 쓸었다.
그러나 공양을 짓다 보면 들려오던 노사의 지엄한 고함소리
“네 이놈 봉기야! ”
“네 스님…”
불이나게 달려나가 보면 다시 떨어져내린 낙엽들
“도량을 깨끗이 쓸라 했거늘!”
“.......”
동자승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원망스럽게 나무를 올려다 보다가 힘없이 비를 들고 도량을 쓸었을 뿐, 어지러운 번뇌로 가득 찬 자신의 마음을 쓸어가듯 그렇게 도량을 쓸어 나가며 그는 다짐하고 있었다.
…가리라 어머니에게로 가리라
2
어머니에게 가리라고 다짐하고 다짐하던 어느 날이었다. 늙은 스님 한 분이 찾아들었다.
동자승이 방으로 들어가 보니 노사는 척추를 펴고 꼿꼿하게 앉았는데 웬 볼품없이 늙은 스님 한 분이 그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방안은 그가 피워대는 담배 연기로 꽉 차 있었다. 동자승이 인사를 올리자 늙은 스님은 어린 동자승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흐물흐물 웃었다.
“허 그놈 참 영특하게도 생겼네.”
노사는 여전히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동자승은 밖으로 나오면서 별 희한한 스님도 다 본다 싶었다. 스님이 담배를 피우다니, 그것도 부처님이 모셔진 법당에서. 노사의 성질로 보아 그냥 넘어갈 리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가 담배 피우는 걸 그냥 보아 넘기고 있는 노사가 이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노사는 밤이나 낮이나 법당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그 늙은 스님을 향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작 그에게 입을 연 사람은 운수행각(雲水行脚) 하다 들린 젊은 수좌였다. 그 수좌의 눈에는 서리처럼 찬 신심(信心)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스님, 담배를 피우려면 밖으로 나
가서 피우시지요
늙은스님이 그소리를 듣더니 히물히물 웃었다.”
“후레자식 같으니. 야, 이놈아 밖에는 부처가 없다더냐.”
“그래도 그렇지 ! 이 신성한 법당에서… 그리고 스님이 무슨 담뱁니까, 담배는···”
“야, 이놈아 스님은 사람 아니라더냐.”
젊은 스님은 별 미친 늙은이를 다 본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휑하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런데 그날 밤이었다. 동자승이 수각으로 나아가는데 노사의 방에서 그 늙은 스님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보게 뭘 하나. 더러워서 담배 끊어 뿌릴나네.”
“담배를 끊는다? ”
“그렇다니까내 못 끊을 줄 아는가”
“그럽 어디 한번 끊어보게나.”
“그려.”
이내 바라지에 일어서는 늙은 스님의 그림자가 비쳐나더니 벌걱 문이 열렸다.
동자승이 얼른 수각쪽으로 물러나자 그는 방을 나오다 동자승을 힐끗 한번 돌아보고는 토담너머로 담배갑을 휙 내던지며 중얼거렸다.
“어이 시원섭섭하다. 잘 가거라 담배보살.”
그날 밤 동자승은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 꿈은 참으로 기분 좋은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의 머리를 쓸어올려 주며 부채질을 해 주고 있었다.
“어린 것이 무신 죄가 있다고…”
어머니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묻고 있었다.
“엄마 나 이제 절에 가지 않아도 되지 ?”
어머니가 대답없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뿐이었다. 동자는 이제 절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어머니의 땀 냄새 나는 품을 파고 들었다.
잠을 깨고 일어났을 땐 어느새 종을 칠 시간이었다. 썰렁한 바람 한줄기를 느끼며 후딱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새벽달이 푸르게 추녀 끝을 물고 있었다.
그는 수각으로 걸어가며 또 다짐하고 있었다. 그래, 오늘만은 산을 내려가 버리리라. 어머니에게 가고 말리라. 오늘이 마지막이야, 마지막이야!
그는 수각으로 가 세수를 하고 돌아서려다 말고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바로 토담 아래서 어른거리는 사람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는 다름 아닌 늙은 스님이었다.
그는 웬일인지 긴 막대기로 이리저리 풀을 헤치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가까스로 동자가 발을 떼어 놓으며 늙은 스님을 향해 물었다.
“스님 거기서 뭐 하세요?”
작대기로 숲을 헤치던 스님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좀 멋적은 웃음이 이내 그의 얼굴에 흘러가는 것 같았다.
“응 담배를 찾으려고…”“담배요?”
하다가 동자승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머리 속으로 섬찟하게 달려드는 게 있었다.
그날 동자승은 산을 내려가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는 어머니 생각이 날때면 더 열심히 불경을 읽고 노사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4
“스님, 요즘도 담배 태우시는지요?”
벌써 아혼을 넘기신 늙은 스님이 희미하게 웃었다.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이었지만 감히 범치 못할 기운이 그 눈빛 속에는 타고 있었다.
“끊었느니라.”
“수월치 않았을 텐데요? ”
“수월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
“스님, 혹시 생각나시는지요. 월하스님 가시고 제가 풀지 못할 화두에 괴로워할 때 스님이 하시던 말씀.”
“ ? ”
“그 날 제가 물었지요. 스님 부처가 무엇입니까 하고…”
“그때 스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 담밸 끊으면 그걸 가르쳐 주겠노라고…”
늙은 스님이 기억이 나는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날의 동자승은 일어나 그에게 삼배(三釋)를 올렸다.
“스님, 이제 담배를 끊으셨으니 가르쳐 주십시요. 부처가 무엇인지요?”
늙은 스님이 그를 한순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곤 잠시 후에 눈올 감으며 서늘한 어조로 내뱉았다.
“가서 담배 한 댈 가져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