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절을 찾는 시인들을 비꼬았다. 문학평론가 당신의 처지에서 보면 그 비판은 까닭이 있다. 당신은 시인들의 절시詩가 도대체 뭐냐고 질책에 가까운 의문을 뱉었다. 시인들의 절시가 상투성, 성소에 대한 똑같은 대응, ‘굉장히 난폭한 삶의 방식인 여행’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따진다. 절을 좋아하는 시인들의 호사가 여행의 한 극점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여간 절시(?)-당신의 지적에 따르면 ‘절에 갔다 와서 쓴 시 또는 절을 생각하며 쓴 시-라는 아랫갈래까지 만들면서 스쳐가는 여행을 의심하고 절에 대한 선호도를 진정성과 대비하는 당신과 하루나 이틀쯤 내 나름의 여행을 함께 하고 싶다. 당신의 비난에는 사실 받아들여야 할 부분도 없지 않으니, 여행을 통해서 길에 대한 섬세함을 서로 나누거나 절시에 대한 당신의 파장적인 반론도 같이 삭여 보고 싶다.
당신이 대구로 온다면 금곡사를 준비하려 한다. 안강 삼기산 깊숙이 자리잡은 이 절은 엄밀히 금곡사라기보다는 금곡사지이다. 본디 나는 절보다 절터를 더 좋아한다. 없음은 있음보다 더 아름답고 더 슬픈 것 또는 더 초월하는 것, 이것은 불법佛法하고도 통하리라고 한다면 당신은 나를 주제넘다고 흘겨볼 것이다. 이 곳을 가려면 대구에서 4번 국도를 이용하여 영천까지 간 뒤 다시 포항가는 산업도로를 타야 한다. 영천, 고경을 지나 지산에 자리잡은 안강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지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첩첩산의 실루엣이 아득하다. 험한 산이 별로 없는 이 곳에서 이 풍경이 노을과 겹치면 기막힌 풍광을 이룬다. 동행한 당신은 나의 센티멘탈리즘을 눈꼴사납게 여기고. 정말 비웃을지 모를 일이다. 이 곳은 내 피붙이와 내 추억이 뒤엉킨 곳이다. 당신이 수긍하기 힘들다면 나도 더 이상이 곳에 얽힌 내 어린 날을 주장하고 싶지 않다.
빨리 금곡사지를 보여달라고 투덜대는 당신을 다시 차에 태워 딱실못을 지나겠다. 내 기억이 배어나오는 풍경이 바로 산과 강의 또다른 본질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얼마 전에 나는 동료 시인들과 남해 욕지도를 삼일쯤 머물다가 왔다. 그 곳에서 나에게 가장 가슴 저미며 다가온 짧은 바닷가 절벽 바로 위의 가파른 경사지의 인가이다. 욕지도 자체가 유배지로 보일 만큼 아득한 곳인데, 그곳에서도 동네에 섞이지 못하고 바람 드센 그 경사지에 사는 사람의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욕지도에서 나에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내 삶, 내 감성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바로 이 어법에 주의해 달라.
자신의 높은 다리를 거쳐 딱실못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두류리 동네가 나오고 그 동네 끝참에 있는 작은 저수지 부근에 차를 세우고 골짜기를 가늠해 보면 당신은 조금 놀랄지 모른다. 깊은 골짜기의 기미가 보이므로, 당신은 이 곳의 갑작스런 변모에 의아해 할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낮은 산과 밋밋한 스카이라인만 보아 왔다. 이제 골짜기와 산윤 천변만화를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변화에 대해 당신이 직접 보게 할 뿐 말로 거들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십 리 이상 걸어야 한다.
아마 당신은 이것저것 물을 것이다. 금곡사는 화랑인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심법으로 심어준 원광 법사의 부도탑이 있는 곳이다. 금곡사에 그의 부도탑이 있게 된 배경은 원광이 삼십세부터 사년 동안 이 곳에서 공부한 인연 탓이다. 금곡사의 창건 연대는 미상이지만 오랫동안 절이 존속되었으나 육이오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 물론 원광은 우리가 아는 바로는 「여래장경사기」 「여래장경소」등의 저서를 낼 만큼 여래장 사상에 관한 전문가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과 금곡사에 온 까닭은 원광에 대한 추모가 아니다. 여래장사상에 대해서도 나는 아는 바 없다. 산괴불주머니와 용담이 자주 눈에 띄는 금곡사 길, 그리고 아직도 무언가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음직한 금곡사의 여러 신비한 전설의 현현에 대한 이야기를 당신에게 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먼저 골짜기 입구에서 금곡사 이르는 길을 걷노라면, 당신의 마음은 풀어질 것이다. 산은 짐승의 등에서 배까지의 기울기로 가파르고, 보릿빛 용담은 제 이름을 아는 자의 눈에만 보이고, 노란색 산괴불주머니는 발에 마구 채인다. 늦가을은 불타면서 당신의 뼈와 살 사이도 방화를 할지 모르므로 당신은 주의해야 한다. 고개를 들면 하늘은 어디서나 입구만 보여줄 듯 좁장하고, 산은 빼곡하다. 십리 밖 저쪽은 흔한 스카이라인과 낮은 산에 둘러싸인 인간이 들끓는 곳이고 십 리 안쪽 이 곳은 한 발자국 길마다 초록의 그림자가 차일을 치면서, 마치 한 발자국 옮기면 바로 뒤에서 경첩 소리내며 문이 닫히는 느낌이다.
이제 전설의 순서이다. 「삼국유사」에는 원광이 금곡사에서 공부할 때 어떤 신비한 소리가 들려 화를 면하고, 다시 소리가 들려 팔뚝 같은 신을 보았다고 기록한다. 따라서 삼기산은 비장산이라고도 한다. 금곡사지에 있는 백련암조차 이 골짜기에서 소리를 들은 사람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지금 백련암을 지키는 모자母子조차 소리를 들었으니 그 어머니는 목탁 소리를 들었고 나이 많은 이들은 범종 소리를 이따금 듣는다고 하지 않는가. 깊은 골짜기에 사람이 사는 것은 무슨 기이한 일이 아니지만, 그 사람 본인은 자신의 운명이 이렇게 된 데 대하여 운명의 힘을 느낀다. 금곡사지 이르는 골짜기에서 당신과 함께 운명을 논하고자 한다. 운명은 우리가 어찌하지 못하는 궤적이다. 소리에 이끌려 인적 없는 산을 지키는 모자와, 평론이나 시를 쓰는 당신과 나는 운명에 대해 쓴웃음만을 지을 수 없지 않는가. 과연 금곡사 길은 운명이 예정한 길답게 정적주의자의 길과 비슷하다.
길이 끝나고 우리는 드디어 금곡사지에 이른다. 뜰에 원광법사의 부도탑이 온전하지 않은 채 수습되어 있고, 육이오뒤에 세워진 백련암이 있다. 부도탑은 소위 백탑이라는 것으로, 그것이 과연 법사의 탑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날 것처럼 보인다. 이제 당신의 의심은 나에게 금곡사 시가 있느냐는데 머물 것이다. 물론 금곡사시는 \'금곡사 길\' 이란 제목으로 분명히 있다. 그 시가 당신의 의혹대로 상투적인 시인지 어떤지 당신의 하회를 기다린다.
수직의 가파름이 다투는 골짜기에서
숨쉬고 탄식하는 짐승의 냄새를 맡는다
꿈틀거리는 갈맷빛은 그 짐승의 내장이 뒤엉킨 것
산의 날카로움은 짐승을 가둔 부적이다
매오로시 마음의 경사가 봉우리를 닮아
울컥 뜨거운 걸 삼키기도 했지만
뒤돌아보면 짐승의 아가리는 산보다 더 커져서
나는 지금 식도에 걸린 육괴인지 모른다
첩첩 연잎 속에 들어앉은 금곡사는 그 짐승이 키운 배내 새끼이다
산 어디서든 뛰어내리면 발이 닿은 금곡사 뜰에는
살을 발라낸 물고기 같은 풍경 소리가 벗어나지 못한다
돌아보지 마라 길은 이미 화상처럼 두렵고
돌아보지 마라 금곡사는 햇빛에 달구어 진 채 무엇을 잉태하고 있으니.
졸시 \'금곡사 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