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밤손님 이야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지대방 한담 - 지묵 1990년 01월 95호
1.코를 문 노스님
산골 외딴 암자에는 밤손님이 심심치 않게 찾아든다. 특히 초파일 뒷날에는 단골로 밤손님이 있다. 절에서는 헌 신발을 여러 켤레 줄지어 놓기도 하고, 아예 주지실을 비워두기까지 한다. 암자에는 노스님 한 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어느날 밤중이었다. 밤손님이 왔다. 그는 검은 옷차림으로 나타나서 좌선중인 노스님 방을 열어젖히고 소리쳤다.
\"꼼짝 말어, 가진 것 모두 내놔!\"
노스님은 벽장을 활짝 열고서 알짜배기 살림을 다 내주었다.
\"아참. 이쪽 서랍 속에는 불사에 쓸 돈이 따로 있지.\"
노스님은 서랍 깊숙이 든 돈까지 모두 밤손님에게 내어 주었다. 밤손님은 웬 횡재인가 싶은 마음에서 모두 챙기기에 바빴다. 밤손님이 스님 방을 떠날 즈음이었다. 노스님은 도둑에게 손짓해 보이면서 친절하게 말하였다.
\"이보게, 내 한 가지 해둘 말이 있으니 이리 와 보게.\"
밤손님은 몸을 돌려서 노스님을 보며 잠시 멈칫하였다.
\"아주 좋은 걸 빠뜨렸어. 이리 가까이 와 보게나.\"
밤손님이 노스님 앞에 바짝 다가와서 앉았다. 이때였다. 노스님이 도둑의 양쪽 귀를 잡고 코를 콱 물어 버렸다. 밤손님은 마음을 풀어놓고 있다가 졸지에 일을 당한 터라 혼비백산하여 달아나 버렸다. 물론 코에 큰 상처를 입어서 아무 물건도 가져가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노스님은 읍내 경찰서에 전화를 하였다. \"병원마다 어서 연락을 취해서 코 아픈 남자가 오거든 붙잡아요. 그가 간밤에 암자에 와서 삼보의 정재(淨財)를 빼앗으려고 한 자요.\"
정오 무렵에 밤손님은 코를 치료하려고 읍내 병원에 들렀다가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오래 전에 나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2. 송곳 가져와요
송광사 구 대웅전 시절 이야기다.
한 십년 전 노스님이 노전(爐殿)으로 있을 때였다. 아침 예불 전에 도량석과 아침 종성을 마치고 사물(四物) 차례로 넘어갈 무렵, 갑자기 불전에 켜둔 촛불 하나가 탁탁 소리를 내며 연기를 피우니 화재의 위험까지 있었다.
노전스님이 불량 초를 새 초로 갈아끼울 양으로 탁자 아래 초 창고를 연 순간이었다. 창고 문을 열자마자 노전스님이 소리를 쳤다.
\"보살님, 보살님, 송곳 가져와요!\"
노전스님은 창고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창고 문을 닫고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송곳이었다. 노전스님은 평소에 경첩고리에 송곳을 끼워두어서 문이 열리는 걸 방지해 온 습관이 있는 탓으로 이번에도 송곳을 찾았다.
이때였다. 탁자 안에 숨어 있던 밤손님은 정체가 드러나 크게 놀랬다.
더구나 송곳까지 찾으니 이젠 송곳에 찔리기보다는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밤손님은 노전스님이 송곳을 찾는 동안 급히 문을 박차고 나와 맨발로 법당 어간문을 통하여 경내 밖으로 쏜살같이 달아나버렸다.
이때까지 스님은 그저 송곳을 찾느라고 두리번거릴 뿐 이었다.

3. 부두가에서 찾은 탱화 비구니 절에서 있었던 밤손님 이야기다.
저녁 예불이 끝난 뒤에 밤손님이 법당 안에 숨어 들어와서 밤을 새웠다. 새벽 예불전에 밤손님은 오래된 상단 탱화와 신중 탱화를 칼로 오려서 뚤뚤 말아가지고 산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대중들이 새벽 예불을 모실려고 법당에 운집해 보니 어이없는 일이 벌어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밤손님이 떠난 자리는 어수선하였다.
귀중한 탱화가 없어져서 난감하였다.
헌데 주지스님의 예불전 새벽 꿈에 현몽이 있어서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불전 신심이 갸륵한 주지스님으로서는 있을 법한 현몽이었다.
\"빨리 부두가에 와서 나를 찾아가시오.\"
호법신장이 나타나서 구해 달라는 요청의 꿈이었다.
대중들은 아침을 먹을 사이가 없이 모두 부두가로 달려나갔다.
마침 이른 새벽 부두가에는 사람이 적어서 다행이었다. 새벽 어둠 속에서 웬 남자가 큰 짐뭉치를 곁에 두고 있었다.
그는 첫 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중들이 이 남자를 파출소에 신고하여 짐을 조사해 보니 절의 탱화가 나왔다.
꿈치고는 영특한 꿈이라고 여길 터이지만 청정한 도량에서는 그리 별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4. 쓰러진 밤손님
주지스님은 새 법당에 모실 시중탱화를 밤에 인수하였는데 밤중에 못을 치고 어렵게 해서 신중탱화를 모시고 잤다.
이튿날 새벽이었다.
주지스님이 도량석을 하려고 법당 안에 들어가려는데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
가만히 동정을 살펴보았다.
밤손님이 램프를 꺼내놓고 묶을 보자기나 끈을 찾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때 주지스님이 가만히 법당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조심조심 밤손님 등 뒤로 다가가서 크게 고함을 쳤다.
\"이놈아\"
밤손님은 그대로 놀래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쿵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힘없이 기어서 문밖으로 나갈려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하였다.
주지스님은 그냥 밤손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와서 법당 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잠시 자리를 피해 주었다.
한참 지나서 도량석을 하려고 법당 안에 다시 들어와 보았다.
밤손님은 흔적도 없이 떠나고 없었다.
\"자고로 도둑은 쫓을 일이지 잡는 법은 아니지.\"
주지스님은 새로 모신 신중탱화를 향하여 절을 올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