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되는 제방의 의견
한치의 양보도 타협점도 찾지 않은 종회의 일방통행은 총회 자체가 할 수 있는 추대위 구성까지는 우여곡절 속애서도 비교적 신속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원로위원 과반수 이상 참석불용이라는 커다란 산에 부달혀 추대위는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불교계 최대 명절 부처님 오신날(5월 21일)까지는 종정울 모시자는 여론에 종정추대의 게스탱보터로 명가받는 서의현 총무원장과 집행부는 4월18일 진관사에서 원로위원 10명과 간담회를 갖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가시척인 성과는 없었다는 보도다.
이렇듯 아무런 혜결책도 준비없이 초파일 전인 5월 3일 2차 추대위 회의 소집이 공고되었던 것이다.
2차 추대위 회의 소집이 공고되자 이제까지 관망만 하던 선원 ·승가대 ·비구나 퉁의 숭가대중이 자신들의 의견올 적극 개진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을 추동시킨 근본적인 이유는 명소 불신받는 총회가 다수 원로의 의견올 무사하고 일방적인 강행을 한 것이겠으나 직접적인 계기는 4월 26일 송서암스님(훤로위원·봉암사 조실)이 불교계 신문에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터다. 그리고 그날 서암스님 등 12명의 원로와 3명의 비구니 스님이 발기인이 되어 5월 1일 해언시헤 서 ‘종단원로와 재야원로급 및 각계 대표자 연석회의’를 강자고 제방에 제의했다.
약 200명의 원로 ·중진 ·총회의 원 ·학인 ·비구니 스님 퉁이 참석한 이날의 해인사 회의는 다음의 4개항을 결의했다. *종정예하는 원로회의에서 추대되어야 한다. *종정에 하는 종도의 여망에 부용하고 종도와 국민의 존경받을 원로로 추대되어야 한다. *현 종정추대위원회를 구성한 법은 원로회의 인준을 받은 사실이 없으므로 5월 3일 종정추대위원회는 무효임을 밝힌다. *만약 위의 사항들이 실현되지 않을 시는 비상대책 수습위원회(비대위)에서 다각도로 대응하겠으며 전국승려대회도 불사하겠다.
위의 비대위 구성은 위원장에 서암, 부위원장에 정영(마곡사 조실)스님을 모시고 위원에 성수·일타·덕명 ·도선 ·법전스님이 맡았다. 선원대표에는 무여 ·인각스님 퉁 8명, 송가대교수 대표로는 효원스님 등 4명, 율원 대표 종진스님, 비구니 대표로는 혜춘스님 둥 5명, 선우도량 대표지환스님, 그외 중앙승가대 ·동대석림회 ·각승가대학 학인 대표들로 비대위는 구생했다.
또 당일에는 전국선원대중 명의의 ‘종정추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발표했다. 이 생명은 “우리나라 정신계 를 이끌어 가는 많지 않은 몇 분의 지도자들 중 한분인 조계종 종정을 부처님 당시부터 교단의 전통적인 숭가본연의 방식에 의하지 않고 세속적 이고도 반불교적 방법에 의한 선출을 획책하는 추태와 음모에 더 이상의 침묵과 인내는 죄악이다. 선량한 대다수 볼자의 여론올 저버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본 성명은 *종정은 원로회의에서 추대, *5월 3일 추대위 회의 불참과 총회의 월권행위 반성 촉구, *종교적 ·사당적문중불교 타봐, * 5월 3일 종정이 추대될 경우 좌시하지 않을 것 등의 입장을 밝혔다.
동일 8명의 원로위원들은 종정추대에 즈음한 ‘견해’를 통해 일방적 독단적 총회운영과 원로회의 의장(월산스님)의 직무유기, 그리고 언론의 왜곡 여론 유포 및 유도 둥을 강력히 비난하고 참회 ·각성을 촉구했다. 아울러 추대위에 의한 종정추대는 인준되지 않은 종헌에 의한 것이므로 5월 3일 회의를 중지하고 우선 원로들과 의 대화를 촉구했다.
사면초가 종회선택이 이후 파장 결정
5월 3일 서울 총무원 불교회관 1층에서 열렬 예정인 2차 추대위 회의장 업구 로비에는 회의시작 4시간 전인오전 10시부터 중앙승가대학 ·동대석림회 스님 주축의 비대위 스님 백여 명이 농성을 벌였다.
“원로회의 언준받지 않은 종헌은 무효다.”
“종회는 종무만을 원로회의 는 종정예하 추대를.”
“금권종회 각성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와 노래 ·정근 등을 하면서 5월 1일 해인사 연석회의 등의 결의문 등을 배포했다.
비대위 측이 해인사 결의만으로 그치지 않고 직접행동을 가시화한 것이다. 결국 이날 회의는 앞서 밝힌대로 유회되었다.
1차 때는 원로들의 불참어라는 소극적 반대가, 2차 때는 원로들의 의견올 지지하는 비대위측에 의해서 한단계 높은 강도의 압력과 실력행사가 감행된 것이다.
이제 관심은 다시 종희로 모아지게 되었다.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세번재 추대위 회의가 소집된다 하더라도 역사 결과는 같을 것이라논 추측이 지배적이다.
이는 종회가 자신들이 입법한 조례를 집행할 힘이 없음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종회는 자신이 구성한 추대위를 전면 부정하고 나선 해인사 연석회의 결의에 어떠한 형식으혹든 답해야 한다.
그런데 종회의 웅직임은 법보사단올 중심으로 한 덕숭문중의 대웅이 관건으로 풀이된다. 널리 알려진대로 법보사단은 월산스님(불국사 조실)을 차기 종정으로 모시기 위혜 수년간 준비해 왔다. 그래서 초기의 총정추대는 원로회의와 종회간의 갈등은 잘 부각되지 않았고(물론 이의 원인으로는 교계 유력 신문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지만) 성철스님을 유임시키려는 범어문중과 덕숭문중의 물밑작업이 관심의 초점이었다.
알려지기로 법보사단은 종회에서 가장 큰 세중의 하나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종정추대에 직접적인 당사자이다. 이련 이유로 법보사단의 결심이 향후 ‘태풍의 눈’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번 종정추대는 법보사단 대 반법보사단의 대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5월 3일 농성 때 드러났듯이 농성대중은 법보의 영향력이 상당한 총회에 대한 불신올 표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법보의
힘이 금권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법보사단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현재로서는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하나는 종회를 열어 추대조례 중 원로위원 과반수 참석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종청은 양보하고 종권장악에 힘을 모으는 것이다.
조례의 개정은 많은 무리가 따를 것으로 예상되나 법보가 결코 종정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는 불가피한 선돼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종회에서의 파란은 말할 것도 없고 비대위 측의 저항이 거절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비대위 측은 ‘송려대회 개최불사’를 밝힌 바 있다.
두번째는 여론과 대중세에서 열세인 종정추대문제는 양보하고 대신 기회를 봐서 종권장악올 선태활 가능성이 었다. 지금 한시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버대위는 종정문제만 웬만히 해결된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 확실시 된다. 때문에 종정올 양보함으로써 자신에 반대하는 여론과 세를 일단 약화시킨 다음 전열을 재정비하여 실질적인 권한을 강는 종권올 선태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듯하다.
이미 보도된 대로 서 원장은 최초로 재선에 생공하면서 법보에 차기 종정추대에 협조를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 원장은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최근에는 법보에 둥을 돌림으로써 법보와의 협력관계는 끝났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 때문에 법보 측은 매우 분노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가지 변수는 비대위 측의 중재안이다. 비대위 측의 일부는 1인 종정 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옴에 봉착했으니 집단체제언 8인 숭정 중 1인 대승정제도를 채택하자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비대위안으로 결정되어 종회에 넘겨진다면 종회의 선택의 폭은 다소 넓어질 수도 있겠다.
종정궐위 5개월을 맞고 6개월 이상끈 종정추대문채가 이재 막바지에 치달은 느낌이다. 지금이야말로 숭가의 화합이 절실허 요구되는 상황이다.
모두가 한발짝씩 물러서 사태를 명정허 바라보고 화국올 막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겠다. 누군가의 무리수는 전종도의 지탄흘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차채에 다시는 이와 같은 홍역을 치르지 않도록 체도적 보완장치률 확실히 마련하라는 것이 전 종도의 여론이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