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철 방(務)을 짜는 데 동참하였다. 안거 기간 필요한 소임을 나눠 분담하는 일이다. 그새 해제철 석달이 후딱 지나간 것이다. 같은 석달이라도 해재철은 웬지 모르게 짧게 느껴진다.
방(勝)을 쩔 때마다 어떤 소임을 맡을까 망셜여지곤 한다. 신심보다는 꾀가 늘 앞서는 탓이리라. 이번에도 쉬운 소임이 돌아오갈 은근허 기대하고 자리에 앉았다.
“순간의 선태이 한철을 좌우한다.”
이런 우스개 소릴 섞어가며 방을 짜기 시작했다. 순서는 좌차(坐次)에 의해 정해진다. 말하자면 좌차는 서열 같은 것이다. 법람이나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방부를 늦게 하면 도리없이 아래에 앉을 수밖에 없다. 여름안거 한철 대중을 통솔할 책임을 맡은 스님이 일어섰다.
“먼저 서기 한 분이 나오셔야겠습니다.”
“네. 제가 하겠습니다.”
옆자리에 었던 도반이 자원하고 나섰다. 스님네들의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할 서기 소임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가끔 이렇게 힘든 소임을 자청해서 맡고 나서는 스님이 대중처소엔 었다. 힘든 소임이나 신경많이 쓰는 책임자는 부담이 커서 모두들 피하려고 하는데 선뭇 나서준 도반(道伴)이 참 고랍다. 지금껏 살면서 이래저래 빚만 지는 것 같아 이런 분들께 늘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럼 이제부턴 차례대로 방올 짜도록 하겠습니다.”
내 윗자리부터 자기가 맡을 소임을 말하였다.
“대중을 위해 간병(看病)을 하겠습니다.”
“지객을 맡겠어요”
“극락전 시자(持者).”
극락전은 노장스님이 사시는 곳이다. 금세 내 차례가 돌아왔다. 비교적 쉬운 소임은 이미 줄이 그어져 있었다. 비어 있는 법당부전에 내 법명을 적어 넣었다.
“저는 법당부전 하렵니다.”
모두 의외라는 듯 쳐다보았다.
“웬일이야! 힘든 법당소임을 맡을 생각을 다 하구.”
“그냥 말묵 신심 한번 일으킨거지 뭐!”
이렇게 방을 찌는 일이 마무리되었을 땐 밖은 많이 어두어져 있었다. 그전에는 방이 다 화여지면 큰 방에다 용상방을 걸었단다.
방 찌던 날 저녁 지대방에 모여 차담(茶談)을 들며 도반과 나눈 대화.
“스님, 이번 철엔 부전올 맡았다지요”
“네.”
“저도 처음 방부하던 철엔 첫 소임으로 부전을 했었지요-”
과일 한쪽을 건네며 도반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난 그때 말사에서처럼 부전이라면 목탁치고 염불하는 소임인 줄 알고 의식도 배워볼 겸 자신있게 맡았지요”
“그래서요,”
“아 그런데 알고 보니 걸레 잡고 큰방 청소하는 소임이더라고요.”
“하하하.”
지대방에 모인 도반들이 다 웃었다. 도반의 얘기처럼 치문을 보던 시절에는 소임 때문에 울고 웃고 하던 때였다. 대체로 쉬운 소임이란게 없었다. 다각(茶角) ·지전(持짧) ·화대(火台), 이러한 것들이 그 중에서도 힘든 소임이었다. 요령을 피우거나 눈가림으]로 대충 일올 끝내떤 늘 경책이 뒤따랐기 때문에 하심(下心)이 자연 몸에 절절 배야 했다. 군대는 함밥이라는 말이 있지만 강댐은 장판때가 많이 묻어야 고참이다. 그래서 해인사의 장판때는 평생 중노릇 하는 데 밑천이 되교도 남는다는 말이 생긴것 같다.
학인에게 해제와 결재가 따로 있을 리 없다지만 그래도 공부 분위기는 결제철이 훨씬 차분하다. 안거(安居)가 시작되면 산중에 수행자가 모인다는 사실이 우선 좋다. 서걱서걱 소리가 날 정도로 풀올 먹인 광목옷율 업은 수좌스님들올 볼 때면 어떤 수행자의 상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지난 철 어디서 나셨습니까?”
“네. 봉암사에서 산철을 지냈습니다.”
선방스님네가 나누는 이런 대화가 오히려 풋풋하다. 공부할 기분이 난다. 청산(靑山)에서 백운(白雲)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은 마음씨 결제 전날이면 부쩍 심해진다. 운수납자가 되고 싶은 탓일게다. 해제갤 텅 비었던 백운 쪽에 선방스님네가 쭉 앉으니 비로소 공양방이 가득 치는 듯했다.
선원에 방부한 스님들 중앤 날익은 스님도 더러 있었다. 지년혜 겨울안거를 지냈던 노스님도 보였다. 동지전날밤에 산중대중이 큰방에 모여 새알 빚기 울력을 할 때 유행가를 크게 불렀던 노스님이라 기억에 남던 분이었다. 한곳에 안주(安住)해 있올 나이인데도 결제를 산중에서 난다는것 하나만으로 우리 젊은 출가자에겐 마냥 좋아 보인다.
역시 산중은 수행자가 모여 원립(園林)을 이루어야채격인 모양이다. 번듯한 도량에 살아 있는 수행자가 모여들지 않는다면 그것온 그저 하나의 구조물에 불과한 것. 해인사가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하는 건 이러한 수행자가 모여 정진의 눈빛을 째우기 때문일게다. 그래서 옛 스님들은 좋은 도량·스승 ·도반 이 째 가지가 맞아 떨어져야 공부가 잘 된다고 했다. 결재날이 무척 기다려진다.
현진스님은 법주사 아두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지금은 해인승가대학에서 수학중인 학인스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