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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가슴에 지혜의 등을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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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 석우 1991년 06월 112호
사월 초파일은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동}심으혹써 무명장야 어둠 속에 진리의 태양이 높이 떠올라 온 세계 구석구석, 우리들 어두운 마음까지 진리의 빛으로 환하게 비쳐 흘러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광명천지에 새로 태어난 것이며, 온 중생의 갖가지 저대로의 길이 활짝 열려 무생법게(無生法界)로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
우리, 등을 달자.

한 등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몰아내듯
가슴 가슴에 지혜의 둥올 밝혀
만생의 어리석음올 쓸어 버리자
억겁의 생사윤회를 벗어 버리자.

이것이 부처님 오신날올 봉축하는 의미이며, 등을 밝히는 참 뭇뜻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부처님 오신날 봉축행사를 돌아보면 동을 밝히는 참 의미를 새져 광대무변한 참 진리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한갓 종이쪽지에다 이름올 써 불이고 명올 빌고 복올 비는 분명 잘못되고 변질된 의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물론, 역대로 부처님과 모든 조사스님들이 큰 원올 세워 자각각타를 실현해 왔으며, 모두 함께 성불도의 길에 정진해 왔지만 오늘날 불법의 대중화의 길은 요원하고 오히려 소수의 전유물에 안주해 있으니 절이 많이 생져나고 신도수가 불어난다 한들 진실한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그것은 바른 불법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한 방편물이니, 그런 것은 그대로 두고 정진하는 사람은 열심히 정진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튼튼한 껍질로부터 건설한 알맹이가 여물게 되고, 올바른 형식을 통하여 참 진리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며, 방편이란 것도 또한 그것을 빌려 진리에 들어가는 것이고 보면 문 안에 들어온 뒤에는 버려야 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방편으로 전락한 신앙이 신도들에게 복이 되지 못하고, 방편올 이용한 목적이 또한 스님들에게 이익이 되지 못하는 것인데도 그것올 서로의 이익이라 여기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그릇된 의식과 잘못된 폐습이 비풀어진 교단풍토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즉, 다같이 성불도의 길을 지향해 가야 하는 같은 불자로서의 스님과 신도들 사이에 서로 다른 목적과 이익을 얻기 위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어김없는 상점의 주인과 고객의 판계로 전락되어 버린 것입니다. 서로 서로 이용하여 서로 다른 이익을 얻겠다는 잘못된 거래가 오늘날과 같온 종교의 타락과 인류의 불행을 가져온 근본요인이라는 사실, 이것만은 우리모두가 반드시 바로 알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너와 나의 순수한 인간관계를 단절시켜 버리고, 타산올 가진, 거래가 깔린 인간관계로 전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올 보다 많은 이익올 주는 영리한 삶으로 여기고 었으나, 실은 너와 나의 큰 이익용 챙기지 못하고 왜소하고 근시안적인 인간으로 되어 가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그래서 절이 망하든지, 흥하든지, 도적이 살든 도인이 살든 신도들에겐 관심밖의 일이 되어 있고, 신도들의 불법을 믿든 도깨비를 믿든 스님들에겐 먼산의 불로 여겨지고 있는 실태입니다. 조그만 나의 이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올 뿔, 보다 큰 나의 자리를 망각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잘못된 의식으로 또 하나의 큰 폐단이 되고 있는 것훈 삼보재산의 사유화입니다. 불공으로 들어온 재보는 사사로이 쓸 수 없는 삼보의 재산이거늘 신도들이 원하는 대로 의식올 거행해주면 그 대가를 치른 것으후 간주되어, 사사로운 재산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바새경에 이르기를 삼보물을 사사로이 쓴 이는 팔만사천의 부모를 죽인 최보다 더 무겁다 하셨고, ‘혹 스님의 형상을 지었으나 스님의 행을 행하지 않는, 이와 같은 사람은 죽어서 쏜살같이 지옥에 들어간다’ 하였습니다. 옛 스님들은 떨어진 옷과 나물밥에 걸망 하나로 정진해 가시면서 그렇게도 시은의 무거웅을 두려워 하셨는데, 정말 한 20여 년 사이에 격세지감올 느끼게 됩니다. 되돌아 보건대, 필자 자신도 그러한 세태의 풍토에 깊숙이 물들어 있음을 자언하는 바입니다.
‘성인도 시속을 거역하지 못한다 함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은데, 하물며 나와 같은 범승이야------. 이러한 그릇된 풍토 위에서 진정한 도행을 닦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물들어 있고 그렇게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와 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그러한 물결에 흘러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허물은 범한 사람의 것일 뿐 아니라 묵인하는 사람의 허물도 되는 것이므로 다시 우리 모두의 허물로, 더 큰 우리 모두의 불행으로 확대되는 것업니다. 생각해 보면 한두 사랍이 허물을 범하고 있을 때라면 많은 사랍이 지적하여 고쳐줄 수가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잘못올 범하고 있으면서도 그 잘못조차 알지 못하는 이런 때는 우리는 결국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길올 지향하는 바른 인식을 가져야 하고 스스로의 허물을 자각하는 밝은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부터 시작하여 한 가지라도 고쳐나가고 바로잡아 나가야 합니다. 많은 것은 하나로부터 시작되어 확산되는 것이고, 거대한 나무도 작은 한 써앗으로부터 점차로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곧 모든 것의 뿌리라는 것을 믿고, 정말 오랜만에 벼르고 벼르던 내 소신대로 초파일올 맞이한 것입니다.
왜 동표를 찍어 돌리지 않느냐는 신도님들의 성화속에서 나는 이런 안내문을-띄웠습니다.
“사월 초파일은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바른 삶의 길을 안내하시고 갖가지 행복의 문을 열어 주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날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봉축하여 부처님의 바른 가르치심을 잘 받들어 밝은 삶올 살아가겠다는, 또는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로 둥올 밝히는 것입니다. 이런 성스러운 날이 언제부터인지 그릇 변질되어, 근년에 와서는 더욱 노골화된 상거래의 현장이 되고 있음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럴 듯하게 시설을 차리고 성대하게 불사를 치른다 하더라도 그 목적이 달라져 있올 때, 아무리 절이 많이 생겨나고 신도수가 불어나고 성대하게 법회가 치러진다 하더라도 그러한 것으로 오히려 바른 불법은 더욱 자 리를 잃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그릇된 풍토 위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법의 이익이 돌아와질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바른 법의 수행뚱토를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이익올 위하여 신도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으로 함께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성은암에서는 이번 초파일부터 동을 팔지 않겠으니, 현둥비한 성의대로 헌납하시고 이름을 써 붙이고 안 불이고순 신도분들의 자의에 맡기겠으나 봉축법회를 마친 뛰에 하도록 하십시다.”
그로부터 초파일 아침까지 며칠 동안 이렇다 저렇다 참 논란이 많더니 봉축법요식 때 한 시간이 넘도록 거기에 대하여 차근차근 설법을 했는데 차분히 그리고 열심히 들어 주었습니다. 요지는 복은 벌어서 얻는 것이 아녀고 반드시 지어서 받게 되는 것이니, 지성스럽게 부처님 오신 이 날올 봉축하며 또한 스님들을 받들고 젤을 위하는 마음으로 헌납하고 예경할 때 한량없는 대지와 같은 복덕을 짓게 된다는 것. 반대로 나와 식구들에게 복올 달라는 그러한 기원은 손톱 위에 앉은 흙파 같은 하잘 것 없는 복이 되어 버린다는 것 등으로 요약되겠습니다.
극진한 마음으후 염불하고 예경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우리 2백여 불자들이 함께 봉축하는 오색등 위로 부처님의 자비로운 광명이 잔잔히 내리고 있는데 오직 한 꼭지의 이름표만 달려 미풍에 흔들리고 있는 정경은 자뭇 호젓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석우스님은 범어사 지효스님 휘하에 출가하여 제방선원과 토굴에서 정진하였으며, 저서로 동시집 ‘하늘과 땅 사이에 내가’ 시집 ‘호수에 달이 떠서’ ‘이 엉겁에 사무친 빛을’ 을 출간하였다. 지금은 전주 성은암에서 정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