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京都와 일본 불교미술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성보여화 - 김진숙
2002년 01월 239호
일본 교토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그런데 그 더위나 추위가 참으로 낯설어 여름의 그 후텁지근함은 뭐라 표현할 길이 없고 연말이 다가오면 비록 얼음도 얼지 않는 추위지만 사람을 얼마나 멍들게 하는지 모른다. 일본 집은 보통 목조이며 바닥은 다다미로 되어 있어 집안에 불기라곤 없다. 난방이라고는 고다츠라는 네온등 같은 것이 밑에 붙어 있는 낮은 책상에 이불을 덮어 두고 그 안에 발을 묻는 게 고작이다. 등짝이 얼마나 시린지 겨울이면 한국의 온돌이 그리워 매일 온돌 찬가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일본에 살면서 큰집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런 집은 얼마나 추울까하고 생각하면 차라리 작은 전기 카페트라도 깔려있는 내 집이 최고다.
그렇지만 2월 중순이 되면 여전히 날씨는 추운데 어느새 매화와 동백이 피면서 교토는 슬슬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나마 이들이 있기에 교토의 늦겨울은 지낼 만하다. 매화가 지면 드디어 벚꽃이 멋과 정취를 마음껏 뽐내기 시작하는데 웬만한 곳은 전부 일본 전국의 벚꽃 명소지로 손꼽힌다.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절이나 긴칵쿠지(銀閣寺) 절 주변의 ‘철학의 길’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나 그래도 갈 때마다 참 좋다. 6월 장마철이 되면 창포와 수국이, 그리고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하는 7월에는 연꽃이 핀다. 가을이 되면 교토의 산과 강은 단풍이 가득하고, 집들의 정원과 담벼락에도 갖가지 꽃들이 피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을 잡는다.
교토에 있는 절들은 대부분 꽃들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절이란 당연히 부처님을 예배하고 스님들을 뵈러 가는 곳이지 무슨 꽃구경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부처님보다는 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가꾸고 보존하는 정성과 섬세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꽃이나 정원에 대한 애정이 이 정도이니, 불상이나 문화재에 대한 마음 씀씀이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일본 불상은 주로 나무로 만든 상이나 진흙으로 만든 소조상塑造像이 많다. 습기나 벌레, 화재에 약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보존해 와서 지금도 중요한 불상들은 거의 모두 완전하게 남아 있다. 조금 오래 되었다는 절들은 대부분 비불秘佛 또는 영험불靈驗佛이라 하여 평소에는 아예 공개하지 않는 불상들을 모시고 있다. 그런 불상들은 1년에 한 번, 3년에 한 번, 심지어는 60년에 한 번 공개되는가 하면, 아예 몇 백년 동안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채 소중히 보관되는 것도 있다. 특별공개 기간에는 일본 전국에서 몰려든 관람객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그 신비의 불상을 보고자 한다. 그들의 진지한 감상 태도 또한 볼거리 중의 하나이다. 보기에는 보통의 할아버지나 아주머니들인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불상에 대한 지식이 전문가 못지 않다. 관람이 끝나면 도록圖錄을 사고 방명록에 감상문을 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마 이들은 시민 강좌나 문화 센터의 불교미술 강좌의 자리를 빼곡히 메우고 슬라이드를 보다 더 자세히 보고자 망?
彭麗?손전등까지 준비해 와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던 그들일 것이다.
교토와 그 주변의 도시들은 일본 문화재가 어느 곳보다도 잘 보존되고 있는 곳들 중의 하나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각 시대를 대표하는 불상들이 대부분 고스銃?남아 있다. 재질이나 도상이 우리 나라와는 다른 점이 많아 처음에는 이질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지만 선입관을 버리고 다른 각도에서 보면 뛰어난 예술품은 시대나 민족을 초월하여 미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교토 코류지(廣隆寺) 절은 일본 국보 1호인 반가사유상으로 유명한데 일본 헤이안(平安) 시대의 대표적인 불상들을 중심으로 각 시대의 불상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작품의 우열과 작가의 작풍을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다.
일본 불교미술의 시대 구분을 간략히 살펴보면 시작은 백제 성왕 때(6세기 중반)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를 아스카(飛鳥) 시대(6세기 중반~7세기 중반)라 하며, 대부분 우리 나라 삼국시대에 전해진 불상들이 많다. 한편 전래된 불상을 모델로 하여 일본에서도 불상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는데 이런 작품들은 나라(奈良) 호류지(法隆寺) 절 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의 절들에 현존하고 있다.
아스카 시대 다음은 화쿠호(白鳳) 시대(645~710년)로, 동자와 같은 귀여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불상들이 많이 제작되어, 나라 국립박물관이나 약쿠시지(藥師寺) 절과 그 주변에 많이 남아 있다.
일본 불교미술의 고전기로 불리는 텐표(天平) 시대(710~794년)는 우리 나라의 통일신라 전성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일본도 인도, 서역, 당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시기로 다양한 작풍의 불상이 조성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불상들은 나라의 고후쿠지(興福寺), 도다이지(東大寺), 도쇼다이지(唐招提寺) 절 등에 전래되고 있다.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년)가 되면 수도가 교토로 바뀌면서 구카이(空海·774~835년) 스님 등이 당나라로부터 밀교를 들여와 교토 도지(東寺) 절 등을 중심으로 밀교미술이 발달하는 동시에 교토의 귀족들의 취향에 맞는 부드러운 감각의 불상이 전문 불사佛師들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로 고죠(康尙) 스님과 조죠(定朝) 스님을 들 수 있다. 특히 조죠 스님이 만든 교토 근교 우지(宇治) 시의 뵤도인(平等院) 호오도(鳳凰堂) 절의 아미타여래상(1047년)은 최고의 천재가 만든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는다.
이와 같이 일본 불교미술은 우리 나라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도 독창적인 작풍을 형성한 훌륭한 작품도 있으며, 걸작의 양식들을 단순히 모방한 불상들도 보인다. 또한 같은 시대라 할지라도 같은 그룹에 들어갈 수 있는 양식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양식들도 존재한다.
교토와 나라는 이런 모든 것들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지역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시대의 불상들을 실제로 보면서 시대별로 그리고 작풍별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직접 작품을 본다는 것, 실제의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만 더 이 추위를 참으면 매화랑 동백 보러, 아름다운 부처님 뵈러 나가 볼 참이다. 교토의 겨울은 정말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