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강을 마치고 돌아오니 댓돌 위에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 있다. “웬 신발? … 아! 벌써 청소시간인가?”
“땅.. 말.. 이라고?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지난 철 소지 당번 스님은 눈이 큰 개구리 한마리를 그려 놓아 금와보살이냐고, 아니면 말 안 듣는 청개구리냐고 놀려 주었는데 땅.. 말.. 이라면 땅끝마을 토말이라는 의미일까? 그 곳이 고향일까? 이 스님이 고향을 그리워하는가 보구나… 자기 창구멍만큼 세상을 보고 타인을 이해한다고 하던가. 나도 사집반 시절 한해 내내 큰 산을 그리고 거기에 초승달 하나, 별 하나를 그려서 신고 다녔다. 어느 날 문득 목이 메이게 대관령이 그립고 경포 호수가 그리워져 신발을 신을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고, 그 곳의 늙으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언젠가는 돌아가 고향 사람을 제도하기 위하여 지금은 걸음걸음 열심히 살자! 그런 의미를 산과 초승달과 별을 그려서 신고 다녔었다. 그러던 것이 사교반이 되어 금당에서 생활하며 보물로 지정된 괴나무 건축의 아름다움에 빠져 신발 앞 공간에 목리木理라는 한자를 초서로 써서 신었다. 나무결 속에는 춘하추동의 희로애락이 있고 한그루나무의 일생이 파문을 그으며 아로 새져져 있다. 물을 향한 그리움으로 온몸에 물무늬를 짜가며 살아온 생애. 인고의 긴 기다림이 이토록 신비로운 문체로 남는 것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 그것은 나무 한 그루의 일생과 같은 것이다. 더구나 수행자의 무늬란 말없는 가운데 이루어져 다시 천년 세월을 떠받치는 목리木理 그것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걸레를 빨아서 들어오는 스님에게 물어 보았다. “줄임 말 인데요, 땅만 보고 말없이 살라, 그래서 땅.. 말.. 이예요.” 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수행의 초엽에 서서 자신을 조어하기 위하여 땅.. 말..을 선택하였구나. 출가해서 수행하는 것은 결코 한생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다. 대중속에서 산다는 것은 물같이 부드러워야 한다. 물은 부드럽지만 그 속의 잔돌마저도 둥글게 깎이어 모가 없다. 대중 속에서 살면서 자신의 모난 성격을 깎아 바르게 하며 설사 장애물이 앞에 있어도 맞부딪히지 않고 슬며시 돌아서 끊임이 없이 흐르는 것이 물의 덕성이다. 방울물이 바위를 뚫듯 방일하지 않고 쉬임없이 흘러야 하리라. 고요한 가운데 말없이… 말없이….
한 열흘 통도사의 가을에 젖어보았다. 시시각각 달라지며 깊어가는 만추晩秋를 지켜보며 시철 인연 도래의 선악을 가늠해 보았다. 산밑 두둑마다 보얗게 갈화가 나부끼고 영축산 너머 파란 창공은 왜 그다지 시려웁던지. 새로이 가사를 수하고 비구니로 거듭나 연화교를 건너가는 스님들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그들 뒤로 노란 갈잎이 우수수 비같이 뿌리며 진다. 세상에 이름다운 것이 많아도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있을까? 지금 이 순간 성불할 수 있다 하여도 나는 그들의 수계를 지켜보고 축원하는 일을 선택할 것이다.
욕辱되는 일 참는 것이 무엇보다 제일이라.
열반법 중 첫째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네.
출가한 사람으로 다른 이를 괴롭히면
이런 이를 무엇으로 사문이라 이름하리.
비방도 하지 말고 미워도 하지 말고,
이 계법戒法 지니기를 알맞게 음식 먹듯
즐겁고 고요하고 마음이 안정되어
꾸준히 나아가면 이것이 불교라네.
꽃에서 일하는 벌들이 빛과 향기 그냥 두고
단 것만 가져 가듯, 비구의 걸식함도
남의 일 잘잘못은 아랑곳 할 것 없고
내 행실 옳은지 잘 살펴 조심하라.
입으론 밀이 없고 마음은 청정하고
몸으로 하는 일은 나쁜 것 하나 없어
세 군데로 짓는 업이 모두 다 맑아지면
이렇게 닦는 것이 부처의 길이라네.
사분비구니게본중칠불통게四分比丘尼戒本中七佛通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