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구세기 말 러시아의 역사가이며 고전학자인 니콜라이 노토비치 Nicolas Notovitch가 캐시미르 지방을 여행한 뒤에 발표했던, 예수가 인도에 체류했었으며 한때 불교를 수행한 수행승이었다는 보고는 예수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노토비치의 보고가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연구 보고, 과학적 연구 방법의 발달, 그리고 역사적 자료들의 확인이 뒤따르게 되어, 오늘의 역사가들이 예수의 인도 체류와 불교 수행승이었다는 사실을 반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 인종학, 지리학(지역의 이름 확인), 언어학 연구가 발달되면서, 캐시미르 지역에서 유태인들이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유물이 발견되고, 다른 토착인과는 골격 구조가 전혀 다른 인종이 이 지역에 살고 있으며, 또 그들의 풍습이 여러 면에서 유태인과 동일할 뿐더러, 구약에 나오는 수많은 미확인 지역의 이름이 이곳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캐시미르’라는 이름은 ‘천국’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어느 곳에서도 흔적도 찾을 수 없었던 예수와 마리아와 모세의 무덤이 이곳에서 그 이름 그대로 오랜 역사 속에서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예수와 관련된 일반적인 통념이나 지식과는 근본적으로 상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런 것으로 믿어 왔던 지식들은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다시 점검해 보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보편적인 상식이 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즈음에 들어서야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서점가에 그와 관련된 책이 몇권 나오자, 종교인들뿐만 아니라 무종교인들도 그런 책을 널리 읽게 되어 그에 대한 관심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필자는 얼마 전에 그런 사실을 한국에 알려는데에 큰 역할을 했던 민 희식 교수의 강연에 참석하였는데, 그때에 청중이 보여준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었다. 이에 나름대로 그들의 각 태도에 대해 비판해보고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상식인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불교도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불교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교 중의 하나요. 다른 종교와 대립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들은 예수가 불교도였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예수도 한 사람의 불제자요 보살에 불과하다, 따라서 불교는 기독교보다 우수하며, 자신은 뛰어난 종교를 믿고 있는 좀더 현명한 사람이라는 논거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여서, 예수가 불제자였다는 데에서부터 불교도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기독교도보다 더 뛰어나다는 식의 논리를 성립시킬 어떠한 근거도 얻어낼 수 없다. 스스로 불교도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또 남들이 불교도라고 인정한다고 해서 참된 불교도일 수는 없다. 부처님 곁을 늘 따라다니고 늘 그분께 예배한다고 해서 불교도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법(法)을 보아야만 부처님을 뵌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구하며 실천하는 자가 참된 불교도이다. 이웃의 기쁨을 나의 기쁨처럼 기뻐하고 이웃의 슬픔을 나의 슬픔처럼 슬퍼하는 자, 구도자의 자세를 굳게 지니면서 보살이 할 바를 다하고 다하려고 노력하는 자가 바로 참된 불교도이다. 하물며 자신이 다른 이보다 더 뛰어나다는 우월감에 빠져서는 참된 불교도일 수가 없을 것이다.
또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은 기독교도로서 예수님을 자신을 구하여줄 구세주로 믿는 사람 가운데, 성서에 기록된 것은 성령에 의해 씌어진 것이므로 한 자도 틀림이 없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예수님이 인도에 체류했다거나 불교 수행자였다’는 것은 근거가 없으며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그런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상처럼 그렇게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에 초기 기독교도들 사이에 수많은 복음서들이 존재하였는데, 그들 각 복음서가 내용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기독교는 수많은 분파로 나뉘었고 격렬한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을 두고, 기독교를 비판한 켈수스는 2세기의 기독교 교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요소는 ‘기독교인 christian’이라는 낱말뿐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오늘날 공인되고 있는 4복음서가 이레네우스 Irenaeus에 의해 교회법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나머지 복음서는 외경이라 하여 배척당하였는데, 그것들을 그렇게 선별할 뚜렷한 기준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도 문제이려니와, 더구나 현재까지 공인되어 온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세속적인 권위마저 누려 온 4복음서들 사이에는 같은 사건을 다르게 서술하거나 서로 내용이 상충되는 부분도 있음은 고려해볼 만한 문제이다. 또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도 불완전하며, 불완전한 대로 알려진 사실을 입증할 만한 근거도 부족하다.
이와 같이 신약 자체가 많은 논란 속에서 오랜 기간의 역사 과정을 거쳐 성립되었으며, 현재 공인된 복음서로서는 불충분한 점이 너무 많은데 어찌 그것만으로 완전하다 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기독교 신자라면 예수의 참모습과 참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일, 타인으로부터 배워서든 자신의 독자적인 연구와 해석에 의해서든, 이미 예수에 대한 어떤 분명한 관념을 가진 신자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본 예수의 이미지가 그의 앞에 제시되었다고 치자 그가 진정으로 예수를 사랑하는 자라면, 그 새로운 관점에 의해서 자신이 지금껏 지켜 왔던 예수에 대한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을 걱정하여, 상대방을 무조건 논박하려고만 들거나 자기 생각의 옹호에만 급급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므로, 자신이나 타인이 임의대로 형상화한 예수가 아니라 역사 속에 실존하였던 예수를 사랑하므로, 상대방의 주장을 통하여 그것이 근거있는 주장이라면 자신의 예수에 대한 지식을 검토해보고 시정허려 할 것이다. 그는 자신 안에 있는 희망이나 염원을 밖으로 투사하여 예수를 형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예수의 본래 형상을 자신 안에 구현하려고 할 것이므로, 결코 자신의 신앙이 가진 입장에만 안주하여 상대방을 무조건 틀렸다고 탓하거나 자신의 맹목적인 믿음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태도를 가진 일반인 곧 비종교인들이 있다. 그들은 종교란 다 같다고 생각한다. 불교든, 기독교든, 유교든, 이슬람교든 다 같은 가르침이라고 여긴다. 더구나 예수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한 불제자였다면 불교와 기독교는 더더욱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상관없으며 다만 그가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주장은 언뜻 보기에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종교의 가르침이 역사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변질되어 왔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이러한 주장은 일면적인 진실만을 지닐 뿐 현실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지하고 있듯이 불교의 가르침은 그 확실성과 전송되는 과정에서의 동질성의 확보는 깨달음에 의해서 보장된다. 따라서 만일 예수님이 불제자였음이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티벳의 고대 문헌인 ‘이사(예수의 인도식 발음)전’에 나타나듯이, 예수님이 부처님의 참된 계승자 중의 한 분이라 할지라도, 부처님에서 예수님으로 그리고 다시 기독교로 이어지는 가르침의 계속성과 동질성의 보장은 깨달음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특징은 깨달은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그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는 자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신약의 어디에서도 예수의 가르침을 듣는 자가 영원한 명암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이 끝난 상태에 이르렀다는 내용은 없다. 설령 깨달음이라는 의미를 이스라엘의 풍토에서는 천국에 태어나는 것에 대한 보장이라는 의미로서 사용되었다 할지라도, 예수의 생전에 그 어떤 자도 천국에 태어날 것이라는 보장을 받지는 못했다. 더구나 신약에 의하면 예수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마저도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면서도 그를 이해하지도 믿지도 못했던 제자들에 의해서 구전되고 의미가 부여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기록되었던 신약이 후대의 전승자들에게는 예수를 이해하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지침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를 언급할 때 그 교리가 대체로 바울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계율과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바울주의’라고 일컫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한다. 십팔세기의 영국 철학자 볼링브로크 경은 신약 속에서 완전히 다른 두개의 종교, 즉 예수의 종교와 바울의 종교를 구별해내었다. 칸트나 피히테, 레싱, 쉘링과 같은 이들도 예수의 가르침과 열두 제자의 가르침을 엄격히 구분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기독교 즉 바올주의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라고 볼 수 있다. 예수의 고통과 죽음을 통한 구원을 중심 교리로 하여 체계화된 기독교 신잉이 오해에 근거해 왔음은, 역사 연구학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현대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중심 교리중의 하나였던 윤회설이 서기 553년에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취급되어 금지되었는데, 그것이 사실은 교회의 뜻에서가 아니라 당시의 황제의 세속적인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만일 예수님이 부처님의 참된 계승자 중의 한분이었다 할지라도, 그분의 가르침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정확히 이해되지 못하고 올바로 전해지지 못하고 변조되기까지 했다면, 아무리 예수님이 바로 부처님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하여도, 현존하는 신약의 문제점 때문에 우리 불교도는 그것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좋은 보약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독이 한 방울이라도 들어 있다면, 우리는 그 보약을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