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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론(修證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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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 - 김호성 1991년 06월 112호
작년(1990), 불교학계는 ‘깨달음과 닦음의 이론’에 대한 모처럼의 생산적인 토론을 전개한 바있다. 즉 깨달음 이후에도 닦음은 계속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깨달음은 다시 닦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라야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어떻게 깨닫고 어떻게 닦을 것인가’ 라고 하는 개인의 수행에 대한 실존적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쉽게 결론을 낼 성질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또 이러한 수중론의 문제들이 어제 오늘 비롯된 것이 아님을 상기하면 이 문제가 갖는 근원적인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현존 자료를 통해서 볼 때, 스님의 경우 수증론의 문제, 즉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에 대한 정당성 여부는 문제로서 의식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오늘날 문제가 되어버린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스님은 택일할 수 있는 두 까지 선돼지(題離)-원래 수중론의 선태지는 5가지 내지 7가지였다-를 앞에 두고 그 스스로 고민한 끝에 어느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보조나 서산의 경우에는 그러한 선택지들을 앞에 두고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경우도 보조나 서산이 처한 상황처럼 여러 갈래의 선태지를 앞에 두고 갈등하고 있다 하겠다.
비록 택일할 수 있는 선택지로서 내세운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런 선택의 갈등이나 고민없이 내세운 견해이긴 하지만 그것이 스님의 확고한 입장인 이상 오늘날 수중론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스님은 돈오점수가 ‘모든 성현의 보편적 길’이라는 보조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 스님의 개인적 구도의 과정에서도 그러한 정을 엿볼 수 있거니와 현존 자료에서 돈오점수의 수중론을 역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에 가정은 소용없다지만 스님이 돈오점수에 대한 버판과 돈오돈수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을 생전에 들었더라면 과연 어떠한 반을을 보였을까? 오늘날의 논란을 일체 무의미한 일로 도외시하셨을까? 아니, 어쩌면 돈오점수가 옳다고 분명히 주장하셨을는지 모른다. 「혜동초조(海東初祖)에 대하야」를 집필, 태고법통설이 올바르지 않다고 주장하신 예가 있기 때문에 그런 가정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것 같다. 셜사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묵묵히 돈오점수를 주장, 돈오점수설에 따라서 납자들을 제접하셨을 것은 틀림없을것 같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스님께서 경봉스님께 보낸 서간 24편이 명정(明正)스님 편역의 화중연화소식에 전해져 온다. 그 첫 편지는 경봉스님이 견성 후 오도송 4편을 보내고 깨달은 이후의 닦음에 대하여 여쭈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써 보내신 것이다. 이 편지 중에서 스님은 돈오첨수의 보임(保任)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깨달은 사랍의 분상(分上)에는 비유하자면 커다란 불덩어리와 같아서 무엇이든지 닿기만 하면 타버리니 어찌 한가로운 말과 방편으로 지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깨달은 뒤의 조심은 깨닫기 전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깨달올 분(分)이라도 있지만 깨달은 뒤에 만일 수행을 정밀히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 여전히 생사에 유량(流浪)하여 영영 혜어나-올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흔히 고인(古人)네들이 깨달은 뒤에 자취를 감추고 이름을 숨겨서 물러나 성태(聖服)를 오래오래 기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니 어쩌다 사람을 대하면 지혜의 칼을 휘둘러서 마군을 항복받으며 어쩌다 사람이 오면 벽올 보고 돌아앉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삼십년 사십년 내지 평생토록 영영 산에서 나오지 않기도 하였으니 예전에 상상(上t)의 큰 기틀을 지닌 분들도 그렇게 하였거늘 하물며 말엽(妹葉)의 우리들이겠습니까?
대혜화상이 말하기를, 간혹 근기가 날카로운 무리들이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일을 판단하여 마치고는 문득 쉽다는 생각올 해서 닦아 다스리지 않다가 오랜 세월이 지남에 영영 마군에게 포섭된다 하니 이와 같이 뒷날 중생들을 위하여 고구정녕 하게 지도하여 삿된 그물에 걸리지 않게 하신 말씀을 일일이 들어서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번역은명정스님)

깨달음 이후에도 닦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오히려 진정한 닦음은 깨달은 다음부터라고 하는 것이 돈오점수의 참뭇이다. 스님은 “깨달은 뒤에 만일 수행을 정밀히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 여전히 생사에 유랑하여 영영 헤어나올 기약이 없는 것”이라면서 오후 점수를 강조하고 었다. 깨달음에 의지해 닦음을 계속해 가서 더 이상 멀어낼 것이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이 점수이다. 이를 선에서는 보임(保任)이라고 한다.
대혜(1088-1166)로부터의 인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돈오점수는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일을 판단하여 마치고 문득 쉽다는 생각을 내서 닦아 다스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돈오점수셜올 마치 ‘나는 견성올 했다’고 합부로 자고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그릇된 이해라고 하겠다.
그러면 닦음이 필요한 깨달음을 왜 깨달음이라 하는가?
깨닫기 전의 닦음은 중생이 있고 부처가 있는 닦음이다. 이원론적 분별 속에서의 닦음은 돌로 풀을 누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참다운 닦음이라 할 수 없고 깨달은 뒤의 닦음운 공(空)에 즉(郞)한 닦음이기 때문에 닦아도 닦올 것이 없는 닦음, 즉 참다운 닦음인 것이다.
스님의 노파심철은 계속된다.

“또한 이와 같은 방편을 형도 모르는 바가 아니겠지만 이미 물어왔고 또한 나도 가장 회유한 일을 대함에 즐거운 마음이 자연 생물 솟듯이 용솟음쳐 부득이 간담을 털어놓고 간략하게나마 예전 조사들의 오후수행문(悟後修行門)을 한두 가지 들어서 말하오니 행여나 익히 들어서 아는 것이라고 소홀히 하지 마시고 다시 자세히 살펴고 거듭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스님이 귀종화상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네가 곧 부처이다.’그 스님이 깨닫고는, ‘어떻게 보호해서 가지오리까? ’
‘한 티끌이라도 눈에 있으면 헛것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이 법문에서 예〔티끌〕자 하나를 자세히 알면 오후생애(惜後生涯)가 자연히 만족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스님은 1930. 9. l3일자의 서간에서 보조의 진심직설(眞心直說)」의 ‘진심식망(眞心息忘)’조(條)에 나오는 10종의 무심(無心)식망의 공부를 보림을 위한 방편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점은 다소 부연설명을 필요로 하는 부분으로 생각된다.
종래 학자들 사이에서는 돈오점수와 간화선은 다른 차원에 놓여있는 것으(로 이혜되어 왔는데, 실제 선수행에 있어서슨 간화선올 통해서 돈오하고 나서 보림〔접수〕올 하끄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화선파 돈오점수가 함께 결합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스님은 그 보립의 점수행에 진섬직/벌의무심식망법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무심식망법은 다같은 보조선의 법분이지만 따로이 무심합도문이라고 말해진다.
진심직설의 ‘진심식망’ 조에 나타나 있는 10종의 무심식망법이 간화선이나 돈오접수설과는 달리 무심합도문에 속한다는 학설이 있다.

“선문에 여테가지 방편이 있으나 다 제2 제3의 방편이요 가장 근본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선방에서는 주로 간화선올 한다. 간화선은 무심공부가 제대굶 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어떤 화두 예컨대 구자무불성이니 정전백수자(展前括樹子) 등의 특수한 방편을 설정하였던 것이다. 이 간화선도 .보조국사가 최초로 받아들여 하나의 선수행법으강서 오늘까지 계승되어 오지만 실은 이 진심직설에서 제시한 무심식망법이 보다 직접적이고 차원·높은 조사선법(祖爾嚴)이라는 것을 우리는 재인식해야 한다.”(이종익, ‘불일회보’ 1987 6-7월호 참조)

필자로서는 이같은 주장이 타당하며, 무심합도는 보조선의 특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즉 무심합도와 간화션 ·돈오접수는 다른 차원에 놓여있는 수행법이다. 그런데 스님의 안목은 무심식망올 간화선이나 또는 다른 차원에서 별립(別立)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오점수의 점수에 포섭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스님의 이러한 생각은 분명, 전에 없던 창조적 수행이론일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안목이라고 생각된다(종래의 견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즉 스님의 수중론은 돈오접수이며, 그 속에 간화선이나 무심합도까지 하나로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김호성씨는 보조사상 연구원간사로 있으면서 동국대 박사과정 재학 중에 있고 대전대 철학과의 한국불교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붓다치리타에 나타난 초기 상키야사상 연구’ ‘보조선의 실제적 경향과 그 극복’ ‘보조의 정토수용에 대한 재고찰’ ‘일본 제국주의의 원종 설치’ 등의 논문과 번역서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