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
근래에 명상 혹은 수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요청이라고 본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물질적인 고속성장에만 몰두한 나머지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히 해온 면이 없지 않다. 이젠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릴 때가 온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막상 자신의 내면세계로 눈을 돌리려는 순간,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 수행의 길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이 최근 일어난 명상에 관한 논의들의 저변을 확대시킨 요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전통적인 수행론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이 많아지고, 나아가서는 전혀 새로운 제3의 수행법이 도입되어 유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한국불교는 매우 다양한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고려후기에 전래된 간화선은 염불의 정토사상과 더불어 조선시대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렇지만 해방 이후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 과학기술과 논리적인 사유가 중요한 신념체계로 자리잡으면서, 간화선은 중대한 도전을 맞고 있다.
간화선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지적은 접근방식이 어렵다는 점과 현실적인 적응에서 경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긍정적이지만, 자신의 방식을 설득하기 위한 종파적인 입장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간화선이 어렵다고 한 점은 주로 남방이나 티베트 불교 수행법을 염두에 둔 비판이고, 경직되어 현실 사회에 적응력이 약하다는 지적은 제3의 수행에 대한 기대에서 이루어진 경우이다.
사실 간화선뿐만 아니라, 어떤 수행법이든지,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행복과 관련되어 있다면, 개인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하고,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탄력 있게 운영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그 수행법은 존속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화선에 대한 몇 가지의 지적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종류의 수행론이 당면한 과제이고, 앞으로 극복하고 보완해 가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지적은 오히려 새로운 환경 속에서 간화선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재창출해야 하는 전환기에 놓여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분명한 선결과제는 간화선을 보다 구체적으로 충분하게 이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팔백년의 전통을 가진 한국 간화선의 성격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먼저 중국에서 간화선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 선종사의 시기구별
일반적으로 중국 선종사는 전·후기로 구별할 수 있다. 전기는 문벌 귀족이 지배하는 중세에 해당되고, 후기는 중세의 귀족이 전쟁으로 몰락하고 귀족 대신에 새로운 독서층의 지식인이 출현하게 된 근세에 해당된다.
선종은 남북조로부터 당초唐初에 이르기까지 경전과 논서의 연구에 힘입어서 생겨난 삼론종, 천태종, 법상종, 화엄종과 같은 문자와 명상에의 과도한 집착을 반성하면서 성장하였다. 전기는 달마 이후로 선사상이 형성되어, 혜능을 기점으로 교학 불교를 비판하면서 오가종풍의 선사상이 형성된 시기이다. 반면에 후기는 당말 파불破佛로 말미암아 제종의 교학적인 연구가 급속하게 쇠락하고, 송대에 들어와서 교외별전 불립문자를 표방한 임제종의 간화선이 발흥한 시기이다. 그러나 몽고족의 침입으로 원나라가 들어서자 불교계는 종파간의 대립을 극복하고, 종파간의 융합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학계의 연구성과를 보면, 대부분 연구는 전기 선사상에 집중된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이유는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발견된 돈황문헌으로 말미암아 ‘구전된 선종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선종의 역사’를 다시 기술해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말하는 구전된 선종의 역사란 문헌자료의 부족으로 인하여, 비판 없이 단순하게 《경덕전등록》(1004년)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종사 인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속고승전》(645년) 이후에 간행된, 《능가사자기》(708년), 《역대법보기》(774년), 《보림전》(801년), 《조당집》(852년)과 같은 새로운 선종사서가 차차 발견되므로써, 선종의 역사는 새롭게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상 지난 100년 동안 이루어진 선사상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연구란 대부분 돈황에서 발굴된 선문헌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전기 중국 선종에 대한 그 형성과정과 선사상의 특징은 상당부분 밝혀졌다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한국 선종에 깊게 영향을 미친, 선종 후기에 해당되는 송宋·원元대의 선종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간화선을 수행법으로 채택하여 정진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불립문자·교외별전의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해 온 탓도 있지만, 밖으로는 대부분의 학문적인 연구자가 간화선의 전통에서 자라나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런 만큼 간화선의 효과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전형적인 하나의 모델을 잡아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남송南宋 시대에 간화선을 확립한 인물인 대혜종고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일이 그 첩경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