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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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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염무웅 1987년 08월 66호
개인의 삶이 역사안에서 이루어지고 매일의 삶이 바로 역사적 삶임을 우리는 요즘 날마다 실감하고 있다. 억눌리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이면 이렇게 큰 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깜박 잊을 뻔하였다.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이 한갓 허황된 꿈이 아님이 현실로써 입증되어 가고 있다. 막강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이 체제가 실은 내부적으로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던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제 바야흐로 어둠의 역사는 빛을 향해 거대한 반전을 시작한 듯하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냉정하게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따져 정확한 상황인식에 도달해야 한다. 올바른 인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실천을 통해 획득되는 이론적 귀결이며 또한 실천을 위한 행동적 지침의 기반이다. 옳은 현실 인식만이 옳은 실천을 담보한다.
생각해 보면 지난 6월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은 가히 ‘6월혁명’이라 부름직하다. 적어도 1848년 3월을 독일인들이 ‘3월혁명’이라 부르고 1968년 5월을 프랑스인들이 ‘5월혁명’이라 부르는 것보다는 좀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렇게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 혁명에 의해 확보된 것은 아직 중산층적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요구만을 수용하는 단계의 것일 뿐이며 그것의 성취 여부도 많은 싸움을 통해 결정될 것이다. 어쩌면 도리어 민주주의의 외형적 분식(粉飾)에 의해 민중들의 인간다운 삶과 나라의 자주적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운동의 예봉은 그 날카로움이 무디어질 위기마저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런 과도기적 상황에 처하여 지식인은 민중적 토대로부터 유리되어 우왕좌왕하다가 타협주의로 빠지거나-그리고 타협함으로써 결국 무장해제 상태를 자초하거나-관념적 과격성에 의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따라서 지식인은 자기의 역사적 본분을 철저히 자각하여 할 일을 제대로 하고 하지 않을 일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면 대체 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오늘의 시점에서 지식인은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위상을 설정할 것인가.
쉽게 말해 지식인이란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좀더 까다롭게 정의를 내린다면 지식인이란 어떤 일정한 전문분야에서 체계적인 지식을 습득 생산하며 이를 보존 전파하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학자·문필가·예술인·종교인·변호사·기자 등등 직접적 생산활동이 아닌 고급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떤 논자는 지식인과 지성인을 구별하여, 전자는 단순히 대상적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고 후자는 진리의 본성을 깨달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도 한다. 지식과 지성을 이렇게 구별하려는 의도는 물론 이해할 만하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학자니 교수니 하여 그럴듯한 지식인의 외관은 갖추었으되 권력에 빌붙고 금력에 몸팔아 자신의 영달과 매명에만 급급한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적잖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든 작든 참된 지식은 인간과 세계, 자연과 우주의 진실에 관계 한다. 따라서 참된 지식은 언제나 허위에 대립하고 미신을 반대하며 이성의 편에 선다. 그럼으로써 참된 지식은 허위의 체계에 의존해 있는 기존의 사회구조에 끊임없이 타격을 가한다. 지식의 이러한 역사적 작용이야말로 인류문명의 발전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굳이 지식과 지성을 구별하려고 애쓰기보다 참된 지식과 단지 지식의 외형만 갖춘 허위를 갈라보려는 태도가 더 ‘지성적’일 것이다.
그런데 당연한 얘기지만 지식인이란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회의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은 지식인의 존재방식과 역할을 상이하게 규정짓게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사색하자면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 너무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지식활동에 종사하는 일이 가능하려면 일상의 육체적 노동에서 얼마간 면제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지식의 탐구자는 그가 속한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생산한 음식과 의복에 어느 정도 의존하지 않을 수없다. 따라서 일정한 수준의 지적 활동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 안에 경제적 잉여의 일정한 축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식인의 사회적 존재방식을 규정짓는 기본적인 조건은 바로 이와 같은 그의 경제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여기서 서양문화사의 황금시대로 일컬어지는 고대희랍의 경우를 살펴보자. 희랍에 있어서 사회적 생산의 주된 담당자는 다 아는 바와 같이 노예였다. 노예노동이 만들어낸 경제적 잉여 즉 노예노동의 수탈체제 위에서 귀족과 시민 즉 자유민들이 정치도 하고 군사적 정복활동도 했으며 철학이나 문학·예술 같은 문화적 업적도 이룩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노예 소유주로서의 자유민이고 지식인이었다. 이러한 사정은 비슷한 사회구성을 가졌던 다른 고대국가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고대 지식인에게 노예의 관점을 이해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전연 부질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 노예는 영혼이 없는 존재, 인격이 부정되는 존재였다. 귀족적이냐 시민적이냐의 차이는 있었으나 고대 지식인의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노예 소유자의 그것이었음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고대 지식인들의 문화적 업적은 오늘의 눈으로보아 단순히 부정적이기만 한가. 이 시대에 있어 지적 활동이 노예노동의 기초 위에 서 있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대세계는 사회적 생산력이 매우 미미한 단계에 있었으므로 극히 제한된 지식활동밖에 감당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아홉 사람이 오로지 생산노동에 전념해야 겨우 한 사람이 정신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경제적 잉여를 창출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열 사람이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사색하자는 절대적 평등주의는 문화와 지식의 존립기반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논리로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딴 사람들의 노동의 대가로 획득된 지식과 문화적 업적들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지는가에 있을 것이다. 다시 비유를 들자면 한 사람이 연구와 사색에 몰두하여 얻은 지혜와 지식은 결코 그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라 생산노동에 종사한 다른 아홉 사람의 협력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므로 그들 모두의 공유이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단지 논리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과 문화적 산물들이 열 사람 모두에게 고루 기쁨과 유익함을 가져다줄 구체적 내용을 함축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는 계급이 분화된 이후의 모든 지식들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도리어 훨씬 더 많은 경우 지식인은 직접생산지를 억누르고 속이고 빼앗아 먹는편에 서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이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가를 심각하게 연구해 보아야 한다. 그야말로 깊이 천착해 보아야 할 문제이므로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언뜻 떠오르는 생각으로는 지식활동이 지배계급의 권력작용을 매개로 해서만 생계를 보장받았기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니, 좀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대부분의 역사시대에 있어 사회는 지배계급과 생산계급으로 양분되어 끊임없이 투쟁하며 이 과정에서 지배의 한 기능으로서 지식인이란 존재가 사회화된 것이 아닐까 짐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지식인은 일정한 역사적 제약 속에서 지배계급을 옹호하고 지배체제를 합리화하는 역할을 계속하는 동안에도 그 역할과 상반되는 지식을 산출하였다. 모든 참된 지적 탐구는 목전의 당면한 필요에 부응하고자 하는 주관적 욕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넘어서는 내용을 성취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든 지식은 희랍시대의 것이든 당(唐)나라 때의 것이든 또 오늘날의 것이든 언제나 양면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그것은 한편으로 지식인 개인들이 살았던 사회의 역사적 조건에 제약되어 그 사회의 발전단계에 상응하는 한계를 지니며 또한 그들이 속한 계급과 집단의 이익을 반영한다. 이런 점에서 모든 지식들은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가진다. 다른 한편 그것은 인류역사 전체에 걸쳐 진행되는 진리 자체의 지속적인 자기발견 운동이라고 일컬음직한 어떤 거대한 과정의 매단계를 형성한다. 가령, 석가나 공자에서 뉴톤과 헤겔을 거쳐 마르크스와 아인슈타인에 이르는 이름들을 늘어놓아 보면 그것은 그 각 인물들이 자기 시대의 특수한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인간이 더 넉넉한 물질적 여건 속에서 더 고상한 품성을 지니며 살고자 하는 인류 공동의 투쟁전선에서 마치 하나의 줄기찬 대열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식은 특수한 조건의 산물인 동시에 특수성을 초월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향해 힘차게 열려 있는 어떤 것이다.
우리나라는 봉건조선 이후 중세적 체제를 자생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국주의 외세의 침략을 받아 그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식민지체제를 주체적으로 철폐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오늘까지 분단의 비극을 경험하고 있다. 강대한 제국주의 외세의 지배와 민중적 역량의 미성숙이야말로 이 시대 민족구성원의 삶을 규정하는 기본적 조건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 시대의 우리나라 지식인을 제약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식 그 자체에 양면성이 있듯이 이 시대의 지식인에게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을 배반하는 매판지식인이 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민중의 편에 서서 인류의 대의에 순응하는 민족지식인이 되는 길이다. 흔히들 말하듯이 지식인집단 그 자체는 계급이나 계층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계급으로부터 초연한 어떤 보편적 가치만을 위해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정한 역사적 조건에 따라 때로는 귀족계급에게 때로는 부르조아지에게 예속되어 그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존재였다. 시민계급이 봉건체제와 싸우던 시대에 있어 시민적 지식인은 진보의 편이었고 인간해방의 전사일 수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시대적 요청 즉 민족적 자주와 만중적 생존권을 위한 싸움의 대열에 서는 지식인만이 그 이름에 값하는 존재임도 분명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