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은 고(苦)다”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해서 생겼으며 세계를 인식하는 나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요가 행자는 이러한 인간고의 해결올 위해 적정처에서 요가수행올 통한 선정을 닦았다. 부처님께서도 요가 행자들과 같이 선정을 닦았으나 결국은 고요함을 얻지 못하고 그들과 헤어진 뒤 보리수 아래에서 독자적인 선정에 드신 후 큰 깨달음을-얻으셨다. 이와 같이 살펴봄으로써 부처님께서 닦으신 선정과 외도들의 선정에 어떤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가 었다.
외도들은 극도의 고행과 쾌락으로 마음의 고요함을 얻으려고 했으나 부처님께서는 여기에서 과감히 탈출하시고 중도연기를 발견하심으로써 큰 고요함을 얻어셨다.
세상 모든 것들은 한 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변한다. 항상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본래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인연해서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다. 나와 세계를 이와 같이 상의상판으로 파악함으로써 부처님은 더없는 큰 고요함을 얻을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큰 고요함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써 호홉의 관찰을 강조하셨다. 호홉의 관찰을 통해서 한생각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 수가 있고 이 세계의 시작과 끝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호홉에 의식을 집중함으로써 얻어지는 선정이다. 이와 반면 외도들의 선정은 그 갚이를 정해놓고 나와 세계를 둘로 나누어 육체를 극도로 괴롭힘으로써 얻어지는 내척 고요함이었다.
이러한 선정의 부정으혹써 부처님은 초기의 가르침에서 사선팔정의 개념을 도입하셨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불안의 실체가 뭔지 그 고리를 하나 하나 풀어 나감으로써 나와 세계가 함께 살아나는 역동적인 삶의 길올 제시하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음으로써 수행의 단계가 생긴 것이지 본래 청해진 세계는 아니다.
나를 떨쳐버리고 나와 세계를 확연히 깨달은 사람이 보살이다. 이러한 보살의 선정은 그 깊이를 혜아릴 수 없다. 보살이 실천해야 할 여섯 가지 바라밀은 어느 하나룰 떼어 놓고 볼 수 없는 연기적인 역동적 삶의 모습이다. 선정이 있어야만 다섯 바라밀을 성취 할 수가 있고 다섯 가지 바라밀올 통해서 선정바라밀을 생취할 수 있다.
육조 혜능은 「법보단경」에서 “선지식아, 무엇을 선정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습을 떠나면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으면 정이다”라고 하셨듯이 바깥 세계가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없고 안으로는 나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음을 알게 될 때 모습에서 모습을 떠나고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모습을 창조해내는 큰 휴식과 지혜로운 실천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활달자재한 세계가 내적인 고요함에 머물게 된 것은 행자가 화두나 염불을 통한 마음을 관찰함에 있어서 안파 밖이 공함을 알지 못하고 아직 내가 남아 있음으로 해서 선의 본질인 나와 세계를 연기론적으호 판딸함으혹써 열리는 역동척인 삶의 현장을 매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아 있옴으혹 보살의 선정에 들어가지 못하고 세계 밖에서 따로 선정을 구하게 되고 나와 세계를 둘로 봄으로써 들어가야 할 선정이 있고 나와야 할 세계가 있게 된다. 이렇게 둘로 나누어 봄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의 현장을 외면하고 따로 고요함을 찾아 나서게 된다.
보살의 선정은 이러한 모순을 재거하고 세계 속에 뛰어들어 고통을 억제 하면서 전도된 고리를 풀어 나가면서 해탈의 새로운 지명을 열어가는 주체적인 삶이다. 이것이 또한 광대원만한 보현보살의 행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극도로 불안하다. 이러한 불안은 어디로부터 쫓아온 것일까? 마음 먹기에 달려 었다고 해서 단지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될 것인자 이렇게 생각해 버련다면 단견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띤 사회구조적인 모순, 계급적인 모순퉁 바깥에서만 그 원인을 찾는다면 이 사회는 영원히 선정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보살아 선정을 닦는 것은 이러한 고정된 나의 시각을 끝없이 변파시키고 밖으로는 모순된 사회현상을 끊임없이 변혁시켜 나감으로써 나와 사회가 합체 선정에 들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다.
“대 그림자 들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수면을 뚫어도 흔적조차 없네.”
일선스님은 송광사로 출가하여 지금은 중앙승가대학에 재학중인 학인스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