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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바른 사람에게는 참선도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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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 법전 스님 신년 인터뷰 - 법전 2002년 01월 239호
임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경제적·정신적으로 세간은 살기가 매우 어렵다고 야단입니다.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는 감로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중생들은 늘 어렵다고 생각하고 또 항상 난세라고 여깁니다. 항상 ‘우리도 선진국이 되어야만 한다’는강박관념이 우리를 더욱 어렵다고 느끼게 합니다. 계속 선진국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이만큼이라도 쌓아온 것에 감사하면서 또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내실을 다져야 할 것입니다.
IMF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를 뒤돌아보게 한 악경계 선지식이라고 할 것입니다.
특히 부처님 제자들은 그러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내가 쓰는 것을 줄여서 나보다 못한 가난한 이웃을 향하여 보시 수행하는 마음으로 돕고 살 수 있다면 마음도 넉넉해지고 또 그렇게 한다면 세계가 한 식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과 정신의 충돌에서 오는 괴리감은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흔히들 ‘동양문명은 정신문화가 발달하고 서양문명은 물질문화가 발달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느 문명이건 편중되어 한쪽으로 치우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이 제대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인간다움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명의 중도론’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불자들의 바람직한 문명관이라고 할 것입니다.

정화 이후 조계종 출범 40돌입니다. 도약의 시기를 맞이하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무엇보다도 교육이 제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교육의 틀이 확실히 체계를 잡았을 때 종단의 내외문제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누구 한 사람의 원력이나 어느 한 본사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교육문제만큼은 백년 후를 내다보고 종단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교육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교육원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종단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협조하고 밀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가람불사와 인재불사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집 짓는 불사에만 너무 치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습니다.
수행하는 전통적 총림가풍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조주 스님은 해 주겠다는 불사도 마다하고 기둥이 넘어가도 그 기둥을 나무로 받치고서 그대로 살았습니다.
심지어 법상의 다리가 부러지자 그 다리를 부지깽이로 묶어 다시 사용하면서 청정가풍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사람을 길렀습니다. 요즈음은 너무나 편리함만 추구하고 물질주의에 물들다보니 불사를 위한 불사가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이제 종단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집불사는 마무리되었으니 청정가풍·두타가풍을 회복하여 훌륭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간다면 이제까지의 도량 불사가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도대체 선이란 무엇입니까? 참된 조사선의 정신은 어떤 것입니까?
참선을 무슨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조사선의 생명은 일상성입니다.
한산시寒山詩에 “마음이 바른 사람에게는 참선도 필요없다”고 하였습니다.
참선이란 올바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바르게 살기만 하면 그 공덕으로 개인적인 어려움은 점점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나도 편안해지고 나아가 이웃도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현재도 편안해지고 미래도 편안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선이란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늘 화두를 지니고서 일상생활 속에서 모든 행동을 바른 마음으로 올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늘 정진하면서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아울러 이웃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참된 조사선의 정신이라고 할 것입니다.

제방에서 공공연히 선지식이 없다고들 합니다. 정말로 참선지식이 없습니까? 어떤 것이 진짜 선지식입니까?
선지식을 만나는 것은 복과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안목과 복이 없어 선지식을 만나지 못한 것은 선지식의 허물이 아니라 바로 나의 허물인 것입니다.
어느 산중이건 거기에 모인 대중이 복과 안목이 없으면 선지식을 모시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사 선지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못 알아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식 운운’ 하기 전에 내가 선지식을 모시고 살 만한 안목과 복이 있는가를 먼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안목이 곧 나의 선지식입니다. 내 눈이 어두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안목을 갖추면 천하에 선지식 아닌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제3의 수행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간화선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지는 납자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방장 스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간화선에 무슨 허물이 있겠습니까? 요즈음 납자들이 화두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한다고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공부가 안 된다고 야단들입니다.
그리고는 무슨 ‘관법이 어쩌구 저쩌구’ 합니다. 관법은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힐 수는 있지만 생사해탈이라는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가장 발달된 수행체계인 간화선을 의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만 올바른 지도가 부족하고 우리가 제대로 화두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부차적으로 생긴 문제일 뿐입니다.

일상의 시간 속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할 길이 있습니까?
어떤 학인이 운문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부처도 조사도 초월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에 운문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호떡이니라.”
《벽암록》 11칙 ‘운문호떡’ 공안 속에서 그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위계질서의 확립은 승단의 존립과 관계된 일입니다. 다소 흐트러진듯한 위계질서에 대한 경종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어느 단체건 위계질서의 확립은 그 단체를 유지하는 바탕이 됩니다. 수행공동체인 승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율원을 활성화시키면서 청규정신을 회복시켜 전 대중으로 하여금 율과 청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그 기틀을 마련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계정신도 날로 퇴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은데요.
스님들도 계행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지만 재가불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계행이 없는 자는 혜명이 끊어진 사람입니다. 사람 노릇을 멍들게 하는 하는 흠집이 됩니다.
한산시에 “남들이 안 볼 때는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남들이 보는 데서는 ‘나무아미타불’ 하는 것은 지옥을 면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무계행無戒行은 그릇이 깨어져 아무것도 담을 수 없듯이인간의 본바탕을 깨어 버려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승단내의 일을 세속법정으로 끌고가서 집안의 허물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세간법과 출세간법 간의 관계에 대하여 방장 스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세간법이나 출세간법이나 상식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세간법이 곧 출세간법인 것입니다.
따라서 세간법 출세간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상식 안의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은 본질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면에서는 엄연히 세간법과 출세간법이 다릅니다. 집안의 허물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녹이 쇠를 갉아먹는 일과 같습니다. 또 출세간법인 승가법 속에서 그 구성원들이 부당하거나 상식을 벗어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재가불자는 말할 것도 없고 종교와 관계없이 일반국민들도 수행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와 함께 우후죽순처럼 마음공부하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좋은 일이며 장려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출가자들은 이들을 잘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수행은 누구누구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신도는 말할 것도 없고 남녀노소 그리고 비종교인 또 지구 위에 있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가 자기 스스로 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애송하는 선구禪句가 있으면 하나만 들려 주십시오.
행역선좌역선行亦禪坐亦禪이니 심야불야도방하心也佛也都放下하라.
안전풍월청정신眼前風月淸淨身이며 각하산색시도량脚下山色是道場이로다.
움직이는 것도 참선이요 앉아 있는 것도 참선이니 마음도 부처도 모두 놓아 버려라.
눈 앞의 바람과 달이 모두 청정법신이며 발 아래 펼쳐진 세계 모두가 바로 도량이구나.

이 불확실하고 어려운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어려움을 이겨갈 수 있는 화두를 내려 주십시오. 이번 동안거 결제법문에서 ‘달마안심達磨安心’을 말했습니다.
초조 달마 대사에게 혜가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저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스님께서는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그 편안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내가 편안하게 해 주리라.”우리는 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자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한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스스로의 분별심 때문에 만들어진 것에 불과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달마안심’ 공안은 불안한 시대에 불안한 마음의 실체를 제대로 관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임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불자와 국민들에 대하여 새해 덕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새해아침에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시고 해마다 좋은 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