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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의 진리-법화경의 과제/서품(序品)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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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이야기 - 이원섭 1990년 01월 95호
ㄷ. 미륵의 의문
앞에서 법화경의 서막이 오름과 함께 엄청난 광명이 벌어짐을 목격하고 특히 타토육서가 시사하는 중대한 의미에 대해 약간의 고찰을 시도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몇 천 년이 지난 오늘의 처지에서 당시를 돌이켜 생각하는 데서 얻어진 결론일 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오직 어안이 벙벙해지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은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다.
미륵보살 또한 그런 의혹에 휩싸인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 그는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하고 망서리다가 문수보살을 지목한다. 문수보살은 ‘과거 무량한 부처님을 친근 공양하였으며 반드시 이 희유한 모습을 과거에도 보셨으리라’여김이었다. 그래서 묻는다.
“무슨 까닭으로 이 조짐의 신통의 모양을 나투십이니까. 큰 광명 놓으시와 동방의 만 팔천 국토 비추시어 저 모든 불국토의 아리따운 그 모습을 샅샅이 보노이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질문이 방광서(放光瑞) 하나에 집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동방 만팔천의 국토에서 벌어진 타토육서도 방광에 의해 드러난 일인데다가 부처님의 반야의 지혜가 곧 광명이라 할 수 있다면 설법·입정·지동·우화·중희 따위 기적 모두가 방광서 하나에 거두어져 마땅할 것이므로, 이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방광이 있은 순간에 일체를 알아차려야 했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그렇게 되면 오늘의 법화경은 없었을 터이니까 역시 잘 물은 것이라 해야 하며, 어차피 우리의 처지에서는 의혹은 남는 터이므로 그런 우리의 심경을 대변해 준 미륵보살에게 감사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면 칠불(七佛)의 조사라는 문수보살은 무엇이라 하셨던가.

ㄹ. 옛날의 부처님들
“선남자들아, 내 헤아림 같아서는 이제 부처님께선 큰 법을 설하려 하시며 큰 법의 비를 내리려 하시며 큰 법의 소리를 불려 하시며 큰 법의 북을 치려 하시며 큰 법의 뜻을 펴려 하심이로다.”
요컨대 지금까지 없었던 위대한 가르침이 설해질 조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옛 부처님들에 대한 긴 이야기를 늘어 놓았는데 그 요지는 이렇다.
“무량·무변 불가사의한 아승지겁 전의 일이다. 그때 일월등명불(日月燈明佛)이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성문(聲聞) 구하는 자 위하여는 사제(四諦)의 법을 설하여 응하시와 생사병노 벗어나서 열반에 곧 이르게 하시며 벽지불( 支佛) 구하는 자 위하여는 십이인연(十二因緣) 설하여 응하시며 여러 보살 위하여는 육바라밀(六波羅蜜) 설하여 응하시와 아뇩다라삼막삼보리 얻어 일체종지(一切種智) 이루게 하셨다.
다음에 이만 명의 부처님이 차례로 나타나시더니 이름이 똑같이 일월등명불이셨는데, 그 마지막 일월등명불 때의 일이다.
이 부처님은 출가하시기 전에 여덟 명의 아들을 두셨는데 아버지가 성불하심을 듣고는 다 출가하여 대승의 뜻 일으켜 항상 범행(梵行) 닦은 끝에 모두 법사 되었으니 이미 천만 부처님 계신 곳에서 온갖 선근 심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 부처님의 교화 방법도 이전의 모든 일월등명불의 경우처럼 성문·연각 보살에게 각각 사제·십이인연·육바라밀을 설하시는 일이었을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만년에 이르시자 무량의경을 설하시고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味)에 드시니 이 때 천신이 만다라화 마하만다라화 만수사화 마하만수사화를 비오게 하여 부처님 위와 온갖 대중에게 백리며 두루 부처님의 세계 여섯 가지로 진동하는 신변(神變)이 일어나 모두 기뻐하는 중에 부처님께서는 다시 미간의 백호상으로부터 한줄기 광명을 놓으시와 동방 만팔천 세계를 비춰 두루 미치지 않음 없으시니 지금 석가여래의 경우와 똑같았다.
그래서 광명이 비추시는 까닭을 모두 알고자 원하므로 이에 부처님이 묘광보살(妙光菩薩)을 상대하여 대승경을 설하하시니 그것이 법화경이었다. 육십소겁(六十小劫) 동안 법화경의 설법은 계속되었는데 청중들은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자오되 한끼의 밥 먹는 때쯤 되는 줄’여겼다.
법화경의 설법을 마치신 부처님은 덕장(德藏)이라는 보살에게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예언을 주시고 열반에 드셨고 그 여덟 명의 왕자는 묘광보살을 스승으로 모시고 법화경의 도리를 닦은 끝에 모두 성불하시니 그 마지막으로 부처 되신 이가 열등불(燃燈佛)이시다.
그리고 묘광보살에게는 여덟 왕자 외에도 팔백의 제자가

“미륵아, 마땅히 알라. 그때의 묘광보살이 어찌 다른 사람이랴
이 몸이 바로 그요 구명보살은 바로 너였느니라.
이제 이 조짐 보매 본래의 그것과 다름없을새 그러기에 헤아리건대
오늘 여래께선 마땅히 대송경 설하시되 이름이 묘법연화요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님네 호념(護念)하시는 바이시니라.”

있었는데 그중 구명 (求名)이라는 보살이 있었다. “이익에 집착하여 비록 여러 경전 듣는다 해도 망각함 많으므로, 이름이 구명이었으나 무수한 부처님을 만나뵈어 선근을 심은 사람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문수보살은 이렇게 털어 놓으면서 결론을 지었다.
“미륵아, 마땅히 알라. 그때의 묘광보살이 어찌 다른 사람이랴. 이 몸이 바로 그요 구명보살은 바로 너였느니라. 이제 이 조짐 보매 본래의 그것과 다름없을새 그러기에 헤아리건대 오늘 여래께선 마땅히 대승경 설하시되 이름이 묘법연화요 보살올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님네 호념(護念)하시는 바이시리라.”

이 긴 설화에는 검토되어야 할 문제가 많거니와 먼저 부분적인 것부터 점검해 보자 먼저 그만의 부처님 이름이 왜 동일하다 한 것일까 이름이란 사람을 구별하기 위한 것인데 그만의 부처님의 명호가 동일했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는 비록 이름은 각기 달라도 내용(실질)에 있어서는 같았음을 뜻하는 것이라 봄이 좋다. 불교에는 많은 부처님이 등장하시므로 그 중의 어느 한 부처님을 취해 높다 여겨 다른 부처님을 무시하거나 배격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완전한 보편성에 도달한 분이 부처님이라 할 때 거기에 어떻게 나와 너를 가르는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추호라도 있다면 부처님이 아니실 것이고 또 만약에 그러했다면 석가여래께서는 왜 다른 부처님에 대해 그토록 설하셨겠는가 이는‘일월등명’이라는 이름을 검토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니 일(日)은 지혜며 월(月)은 선정이어서 이 정혜 (定慧)는 자행(自行)이요등명(燈明)은 화타(化他)라는 천태대사의 해석을 따를 때 어느 부처님이라 해서 일월등명불 아님이 있으시겠는가.
그러므로 행적과 교화 방법 또한 같으심이니 일월등명불이 성문·연각(벽지불) ·보살에 맞추어 삼승(三承}을 설하셨 듯 석가여래 또한 그러하시며 마지막에 법화경을 설하고 열반에 드셨던 석가여래 또한 그러하시며 저 부처님의 여덟 왕자가 출가해 법사가 되었듯 석가여래의 아드님 나후라도 출가해 아라한이 된 것이었다. 물론 저 부처님의 아들은 보살이 되고 이 부처님의 아들은 아라한이 된 차이가 없지 않으나 과거의 대승과는 달리 법화경에서는 성문 연각도 기실은 보살임을 밝히는 터이므로 사실에 있어 동일한 것이 된다.
요컨대 그만의 과거불의 예에서 미루어 볼 때 그동안 3승으로 교화해 오시던 부처님이 방광해 만팔천 국토를 비추어 보이신 것은 법화경을 설하려 하심을 보이는 것이라 함이니 이런 견지에 서서 전체를 바라보면 디음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첫째는 부처님의 마지막 진리가 설해진 것이 법화경이라는 점이니 이것이 고금을 일관하는 구경(究竟)의 가르침임을 보이기 위해 무량겁 전의 부처님들과 지금의 부처님을 함께 섬기는 문수와 미륵을 등장시킨 것이다.
둘째는 법화경이 단순한 대승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니 삼승으로 교화하시다가 끝에 가서 법화경을 설하고 나서 열반에 드신다는 것은 소승·대승을 지양하여 진정한 불의(佛意)를 밝히시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단순히 소승보다 우월함을 내세우는 대승이라면 과거의 대승경전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세째는 법화경을 설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입멸(入滅) 후의 사정까지 자세히 서술된 것은 이 경이 3승 간의 대립을 조화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불멸(不滅) 후에 불교에 대해서도 명확한 주장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타토육서에서 이끌어냈던 결론 곧 삼승의 대립 속에서 무엇이 진정한 불교냐는 것과 불멸 후의 불교도는 어떤 부처님을 받들어야 할 것이냐는 문제와도 부합된다. 실로 경 전체의 성격을 서품이 여실히 나타내 보이고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