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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정법에 출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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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의 샘 - 보광 1997년 11월 189호
다음 달부터는 「유마경」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유마거사는 부처님이 계실 때 부처님 정도를 깨달은 분으로 불법을 깨닫는 데에는 승속과 남녀가 따로 없다는 것을 보인 산증인입니다. 세속인으로서 자부와 긍지를 가질 수 있게 한 분이기도 합니다.
사바세계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태어난 자는 병 끝에 죽게 되는 일입니다.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인데 이에 모두 속수무책일 뿐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우리는 팔만대장경 속에서 해결의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이유와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엄청난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중생은 바쁘다는 핑계로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천하없이 잘났어도 죽어서 썩어 문드러지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유마거사가 꾀병을 내었습니다. 유마거사는 억만장자였으며 자선도 많이 하고 수없이 많은 법문을 하는 인격이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임금부터 서민들까지 그의 덕을 칭찬하고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병이 들어 누워 있다는 소문이 나자 모두 가슴이 덜컥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앞을 다투어 병문안을 갔습니다. 다른 것으로 소문을 내면 모두가 오지 않을 터이니 모든 사림을 끌어모을 수 있는 방편으로 유마거사가 꾀병을 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일시에 모아놓고 법문을 할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생각대로 수만 명이 모였으나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유마거사는 은근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를 부처님이 모르실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제자 가운데 누구도 병문안을 가고자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당신을 대신해 병문안을 다녀오라고 제자들에게 일렀으나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고 모두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습니다. 할수 없이 부처님이 하나하나 지명을 했으나 모두 못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하나같이 ‘정진하고 있는데 때 없이 와서 어찌나 혼을 내는지 입이 딱 붙어 한마디도 못했다’ 는 것이었습니다. 설법 제일인 부루나존자 마저도 ‘유마거사가 나타나 그렇게 법문하면 못쓴다고 혼을 내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찌나 망신을 당했던지 못간다’ 는 것이었습니다. 병문안을 갔다가 무슨 망신을 또 당할지 몰라 못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천하에 내로라 하는 제자들은 물론 보살들도 가기를 꺼렸으니, 이는 유마거사의 지혜와 깨달음이 감히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은유의 표현입니다.
할 수 없이 부처님은 문수보살에게 “네가 나를 대신해 대중을 거느리고 다녀와야겠다” 하고 명합니다. 그러자 문수보살이 대답합니다.
“저도 자신이 없으나 명을 하시니 거역할 수 없어 갑니다만, 세존께서 응원해 주십시오.”
그러자 많은 대중이 대성인들이 주고 받을 문답을 보려고 앞다퉈 유마거사 집으로 갑니다. 「문수보살문병품」에는 문수보살이 유마거사의 집을 찾아간 얘기가 나옵니다. 유마거사는 부처님이 명해 문수가 오는 것을 알고 방의 물건을 모두 치워 버리게 합니다. 방은 물론 집을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워 놓게 했습니다. 문수보살이 대중을 거느리고 들어가니 유마거사가 말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문수보살이시여. 어찌 와도 온 상이 없이 오고 보아도 본 상이 없이 봅니까.”
문수보살이 방 안이 텅 비었다는 생각을 내니 유마거사가 한 점도 놓치지 않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문수보살이 이렇게 답합니다.
“거사이시여, 만일에 이미 왔다면 다시 올 것도 없을 것이요 만일 갔다면 갈 게 뭐 있겠습니까.”
유마거사가 방을 텅 비워 놓은 까닭은 본래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눈 앞에 있는 것을 영원한 것인 양 집착을 내니, 유마거사가 이런 차원에서 정신을 확 뒤바꿔 놓은 것입니다. 유마거사가 앓아 누운 것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은 허망한 것이다. 인간이 가장 집착하는 것이 육신인데 병들면 죽음이 닥친다’ 는 예고였습니다.

생生이 곧 사死라, 곧 죽어지면 몸아 분해되었다가 인연을 만나면 빙 돌아나옵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훌륭한 부모를 만나지 못한 것도 큰 일이지만 짐승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더 큰 일입니다. 잘못 선택하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어 다시 제자리에 돌아올 자신 있습니까. 본전이라도 할 수 있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본전 찾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도덕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윤리 도덕은 질서이며 자동차가 차선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차선을 어기면 서로 박치기해 죽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서라도 법칙을 지켜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게으릅니다. 선행 공덕을 닦는 데에는 게으르고 허욕을 부리는 데에는 지극히 부지런 합니다. 탐욕을 부리는 자는 반드시 어리석은 자요, 어리석은 자는 선행 공덕을 닦는 데에는 게으르다고 했습니다. 탐욕과 어리석음, 그리고 게으름을 보태면 무엇입니까. 바로 중생입니다.
문수보살이 유마거사의 방에 들어갔을 때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은 결국은 있는 문제는 없는 단계를 거쳐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바퀴 도는 날이면 없어집니다. 그래서 빈 방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빨리 공한 이치를 터득하라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아프다는 자체는 없어지는 전 단계에 도달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훌륭한 분도 병이 들면 죽는다는 것을, 곧 생로병사는 잘나고 못난 사람이 따로 없다는 것을 방편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스무살이 되기 전에 인생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보장된 임금 자리를 떨치고 천하가 다 말려도 설산으로 간 부처님의 그 용기와 결단은 참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산 부처님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죽으면 이름은 허공에 흩어져 있다가 한갓 메아리로 남을 뿐입니다.
순치 황제의 출가사를 보면 또한 대단합니다. 황제의 자리를 물리치고 출가를 했는데, 아무 것도 아닌 주제에 중생은 그저 집착할 뿐입니다. 이제 현실을 똑바로 보고 용기를 내어 대긍정심을 내야 할 때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오늘날 평등의 원리가 여기 있습니다. 인도의 계급제도가 그렇듯 심할 때, 이이 이천 오백 년 전 부처님은 사람은 물론 곤충 미물까지도 모양이나 지능은 다를지언정 생명체의 본바탕은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유마거사의 법문을 들은 오백 장자의 아들들이 애가타서 유마거사에게 매달리며 묻습니다.
“거사님, 저희들은 어떻게 하면 좋으리까.”
그러자 유마거사가 참으로 멋진 대답을 합니다.
“출가를 해라. 몸은 출가를 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부처님 법에 출가를 해라.”
이미 결혼을 하여 처자가 있고 세속에서 사업도 해야 하니 그렇게 말씀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훌륭했던 유마거사의 밀씀을 기록한「유마경」을 공부할 예정이니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말고 시간 내어 공부하시기 바라며, 다음 게송을 의미해보기 바랍니다.

중생과 부처님의 뿌리 똑같으나
한 생각 잘못해 중생 몸 받게 되었더라.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
금생에도 길이 탄식하고 죽어서도 탄식하더라.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