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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기는 오로지 간절히 믿는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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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7년 11월 189호
우리는 흔히 믿음이 돈독하고 불도 수행을 엄격히 잘하는 사람을 보면 상근기라 하고, 불교를 건성으로 믿거나 수행에 게으른 사람을 하근기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정한 기준없이 자신의 입장에서 적당히 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의 근기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은 없는 것일까?
「무량수경」에는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중생의 근기를 그들의 수행에 따라 상, 중, 하 세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상근기(上輩)의 사람은, 출가사문이 되어 보리심을 발하고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염하며 갖가지 공덕을 닦아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이. 중근기(中輩)의 사람은, 재가의 신자로서 보리심을 발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하며 보시, 지계 등 선근 공덕을 쌓아 이것을 회향해서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이. 하근기(下輩)의 사람은, 여러 가지 공덕을 쌓지는 못하더라도 보리심을 발하고 생각을 오로지 해서 단지 열 번만이라도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이, 또는 심오한법문을 듣고 깊은 환희심으로 믿고 따르며 다만 한번만이라도 아미타불을 염해서 지극정성으로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이를 말한다.
위의 설명 가운데서 보리심을 발하는 것과 아미타불을 외우는 염불은 세 종류의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설해져 있으므로, 발보리심과 염불은 수행의 우열에 상관없이 극락왕생을 위해서는 누구나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임을 알 수 있다. 또 원효는 이런 「무량수경」의 내용에 대해, 왕생의 직접적인 요인은 보리심을 발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으며, 우리 범부는 보리심을 발하기 어려운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곧 원효는 보리심을 발하는 것에는 세속의 일에 따라 발심하는 수사隨事발심과 이론에 따라 발심하는 순리順理발심이 있는데, 수사발심은 모든 번뇌를 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닦아 무량한 중생을 다 구제하기를 원하는 것이고, 순리발심은 세속적인 관계를 모두 끊고 일체는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음을 믿고 공空의 이치에 따라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라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발심은 흔히 우리가 불교에 처음으로 입문한 사람들에게 말하는 초발심의 의미가 아니라, “처음으로 발심했을 때 곧 정각을 이룬다(初發心時便成正學)”고 하는 「화엄경」의 글귀처럼, 처음에 발심한 그 마음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그대로 수행으로 이어져 결국은 성불할 수 있게 되는 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수사발심이나 순리발심의 내용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일반범부로서 초지일관해서 수사발심이나 순리발심의 내용대로 실천 수행하여 끝까지 보리심을 얻을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 생각이 타당하다면 결국 우리 일반 범부는 보리심을 발할 수 없기 때문에 「무량수경」에서 설하는 삼배중생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근기에 속한다는 말인가?
「무량수경」에는 삼배중생의 왕생과는 별도로 부처님의 지혜를 의심하는 중생의 왕생문제를 따로 취급하고 있다. 내용은 부처님의 지혜를 믿고 정토에 왕생하려는 이는, 극락에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며 많은 공덕을 쌓는다. 그러나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不思議智, 不可稱智 , 大乘廣智, 無等無倫最上勝智)를 의심하여, 혼자 힘으로 선을 닦아 극락왕생하고자 하는 사람(四疑感樂生)은 그 선업으로 극락에 태어나기는 하지만, 극락의 변두리에 있는 왕궁에 갇혀서 오백 년 동안이나 부처님과 보살들을 만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법도 들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의 목적은 그 곳에 태어나 불, 보살을 뵙고 불도를 닦기 위해서인데, 오백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불, 보살을 만나기는 커녕 불법에 관한 이야기도 듣지 못한다면 어찌 지옥과 다르지 않겠는가? 도대체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를 의심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원효는 “성품이 소박하지도 못하고 정직하지도 않아 삿되게 총명하고, 잘난 체하는 아만심으로 불도를 닦을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라 하였다. 이것은 불교를 건성으로 믿으며 잘난 체 뽐내고 교만하며 불심이 강하지 못해 마음 한편으로는 의심을 품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천사백여 년 전에 원효가 한 말이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원효는 이런 의혹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그들이 의심하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무량수경」에 임종 때 한번만이라도 아미타불을 염하면 극락왕생할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의심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경전에 선, 악업의 길과 죄와 복은 결코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과보를 받는 것은 필연적이라 했는데, 어떻게 일생 동안 악업을 짓고도 단 한번의 염불만으로 모든 죄를 소멸하고,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성불이 보장된 정정취에 들어 영원히 삼악도를 여의고 불퇴전의 경지에 들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의심한다는 것이다.
확실한 신심을 갖지 못하고 있는 우리 범부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경전의 말씀이라 하지만 임종때 단지 한번만 아미타불을 염해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하면 반신반의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원효는 의혹중생이 지혜가 얕아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의 작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마음의 눈을 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부처님을 간절히 믿는 마음만 있으면 정토의 변두리가 이닌 정토의 한복판에 바로 태어날수 있다고 함으로써 극락왕생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원효가 정의한 의혹중생, 곧 “성품이 소박하지도 않고 정직하지도 않아 삿되게 총명하고, 잘난 체하는 아만심으로 불도를 닦을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들”과 우리 범부가 다르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삼배중생의 어느 것도 아닌 의혹중생에 포함된다. 그러나 부처님을 간절히 믿는 마음이 있으면 하근기는 물론 상근기 중생도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므로 우리의 근기는 오로지 간절히 믿는 마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