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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도의 불교 현실을 걱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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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강순임 1990년 01월 95호
교육대학을 마치고 교사로 부임한 첫해에는 낙도로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겐 크나큰 절망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나 여자의 몸으로. 어머님께서는 오랫만에 난 발령으로 기뻐하시기는 하셨지만 그 첫부임지가 외딴 작은 섬이라는 사실을 듣고 그만 시집이라도 가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딴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하기도 했습니다만 또 한편으로 외딴 섬이라는 엉뚱한 호기심과 함께 낭만 그리고 교사라는 자부심과 교육자적 양심( ? ), 이런 것들이 나를 이 외딴 섬으로 오게 한 복합적인 동기였습니다.
막상 섬으로 와서 체험한 것들은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를 감격하게 한 것은 더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밝은 웃음의 아이들과 하루종일 넘실대는 푸른 바다가 그랬습니다.
수업을 하다 가끔 눈을 주고 있노라면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언덕배기 넘어 출렁거리는 바다는 말 그대로 그리움이었습니다. 얼마 전 서귀포의 신천지화랑에서 보았던 한명섭 선생님의 그림들은 거의 모두가 제목이‘그리움’이었습니다만, 노을지는 언덕에 올라 낙조로 물든 바닷가의 모습을 보노라면 참으로 처절하기조차 하답니다. 애끓는 그리움, 무엇으로도 이름 붙일 수조차 없고 대상마저 없는 그리움 그러한 정서가 바닷기에는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의 무한정한 풍정을 나는 보았습니다. 바람부는 날은 바람 부는 대로, 잔잔한 날은 잔잔한대로, 봄바다는 봄바다대로, 또 여름바다, 가을바다, 그리고 겨울바다는 겨울바다대로, 그 모습은 참으로 천태만상의 모습입니다. 그 물빛도 같은 파랑이 아닙니다. 그렇게 다양한 파란 빛을, 바다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바다빛 기운데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는 가을달이 높이 뜬 밤바다입니다. 그런 날이면 밤에 잠마저 설치기가 일쑤입니다. 어떻게 베개머리에 넘실대는 푸른 파도와 함께 환한 달빛을 두고 잠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지난 달 좋은 가을날엔 김화영의 산문집을 읽거나 드뷔시나 슈만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께서 내 짐 속에 함께 넣어주신 어머니의 손때가 밴 작은 단주를 만지작거립니다.
참으로 이상한 사실은 이 작은 섬에도 교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요일이면 작은 종탑에서 종소리가 땡그랑거립니다.
교회의 오르간 소리와 함께 찬송가도 들리고요.
그러나 한국문화의 대표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불교의 사찰은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이 더욱 이상합니다. 해안가는 어디나 할 것 없이 토속신앙이 흔합니다만, 참으로 불교 문화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가끔 스님들이 여행차 다녀가는 일이 있지만 불교 문화를 전하고 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상한 모습의 사람으로 아이들에게 비칠 뿐입니다.
그래서, 낙도나 농촌의 포교 문제가 불교의 현실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퍽 염려스럽게 느껴집니다. 일전에 제주도에서 잠시 만난 어떤 스님을 통하여 불교의 진리에 대하여 잠시 듣기는 했지만 소외되고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는 불교가 더욱 절실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이곳 시골 사람들은 순박하고 어른들은 길흉화복과 같은 현실적이고 현세 이익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특히 바다에 목을 매고 사는 사람들에겐 정신적인 의지처가 참으로 필요합니다. 특별하고 어려운 교리보다는 좀더 간단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많이 간직한 불교가, 이를테면, 불교 설화 같은 이야기라도 들려줄수 있는 작은 포교소 등을 운영할수 없는지 퍽 얀타깝습니다.

지금 지라나고 있는 아이들은 12월이 되면서 크리스마스에 교회 가는 기대로 가슴이 가득 부푼 것을 봅니다만, 목적이 어디에 있든지, 아이들은 단순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바로 현실이요 그리고 전부라는 사실을 봅니다.
때때로 종교적 편견에 아이들이 빠질까 염려하여, 교육하는 입장에서 내가 알고 있는 불교 설화를 교실에서 이야기해 주면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렇듯 종교에 대한 관심이 학교 아이들에게서 확연히 나타남을 볼 때, 농어촌의 불교 현실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태도와 같이 안이하게 생각할 때가 아니라는 점을 절감합니다. 아무리 고준하고 철학적이고 찬란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겠습니까? 현재와 현실에 같이 동참하고 호흡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재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 입장으로서는 불교든 기독교든 어떤 종교라도 바른 인격을 형성하는 데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이미 이 섬에서는 그러한 평균적인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 퍽 염려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구십년대에는 불교도 대중속에서 함께 하는 종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우리 집안은 조상 대대로 불교를 신앙해 왔습니다만, 나의 불심은 아직도 제대로 영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집을 멀리 떠나와 있는 나에게는 어머니가 주신 염주가 나의 신앙이요, 의지처입니다.
새해에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염주에 걸맞게 어머니가 그토록 정성으로 믿으시는 불교에 관한 입문서를 푸른 바다와 푸른 달빛과 함께 나의 머리맡에 놓아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