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는 ‘원각사 사태’ 이후 불교계의 거센 반발로서의 규탄대회를 정리하여 기록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광주 사암연합회 성명서 발표
· 원각사 불일청년회 성명서 발표
· 원각사 주지 광민스님 등 13명 단식
· 조계종 총무원, 포교원, 전국신도회, 불교신문사 성명서 발표
· 나주사암연합회, 대전 청림회(비구니)성명서 발표
· 동국대 석림회 성명서 발표, 11명 단식
· 중앙승가대학 규탄 성명, 59명 단식
· 민불련, 대불련, 청토구현 전국 승가회규탄 성명, 35명 단식
· 정토구현 전국 승가회 고발장 서명 운동, 승려 523명 재가 신도 280명 명의로 대검찰청에 고발장 접수
· 법주사 학인승려 56명 단식
· 전국 비구니회 규탄 성명
· 운문사 승가대학 학인 229명 단식
· 해인사 학인 75명 단식
· 동학사 승려 120명 단식
· 직지사 승가대 학인 75명 단식, 규탄 성명
· 광주 사암연합회 주최 대규모 규탄 대회, 승려 500여명 신도 및 시민 5000여명 참석, 규탄 대회 후 500여명 청년회원 가두 진출 연좌 농성
· 개운사 중앙승가대 학인, 각사암 승가대학학인, 정토구현 승가회, 동국대 석림회 등 300여명의 승려와 민불련, 대불련, 원각사청년회 서울불청 등 청년회원 400여명 참석 규탄대회, 가두 진출연화 농성
· 대불련 부산지부, 소림사 불교회관 150여명 규탄대회, 가두 진출 연좌 농성 대불련 대구 경북지부 5일간 철야농성법회, 지부장 김 성일 법우 외 4명 단식, 가두 진출 연좌 농성, 54명 연행 밤 12시 석방
· 대구 사암주지 연합회 팔공산승가회 주최 보현사 대구지역 규탄대회, 대회 책임자들은 나타나지 않고 내무부장관 사과 서한만 발표하고 해산 종용, 이에 격분한 청년불자 독자적 규탄 대회 실시 종단 규탄까지로 비화
대불련 대구 경북지부 회원 150여명이 5일간의 철야농성을 마치고 규탄 내용의 즉각적인 실행을 요구하며 보현사에서 관음사까지 평화적 행진을 시도하다가 반월당 네거리에서 전경과 대치하여 연좌농성을 벌이던 중 54명이 개처럼 끌려가게 되었다. 경찰서에 연행되어간 청년불자들은 박 종철 군을 고문 치사한 경찰의 폭력성과 그 궤를 같이 하는 원각사 사태의 해결은 폭력과 기만을 일삼는 현정권의 퇴진으로 가능하다고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떳떳하게 그들의 주장을 펴고 있을 때, 서울의 한복판 어느 음식점에서는 내노라하는 조계종 원로 중친 스님들과 신도 회장이 모여 물리적 시위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며 모든 민주 인사와 종교계가 참여하는 6.10 대회의 불참 선언을 하였던 것이다. 진정 ‘원각사사태’와 같은 경찰의 안하무인격 폭력이 어디로부터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전혀 모르는 처사일 수 밖에 없으며 많은 시민의 호응을 받고 있고 또한 이땅에 사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바램인 민주화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반역사적 행위를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연출해내는 꼴이었다. 기독교나 가톨릭에서 보여 준민주화를 위한 호헌 철폐의 시국 선언은 못할망정 침묵이라도 지켜주었다면 6.10대회로 옥고를 치루고 있는 지선, 진관 스님들께 진리의 길을 같이 가는 수행자로서 면목이나 설 것을 하기야 지난번 해인사에서 개최된 불교 제악법 철폐 불교 자주화쟁취 전국 승려 대회 때 2000여명의 승려들 앞에서 정권에 대한 수위높은 인기발언을 서슴치 않았던 중진스님들이 자기들의 이권 관계에 금이 갈 것을 두려워하여 전 불교도들의 열화 같은 바램을 짓밟아 버리고 불교 재산 관리법의 수정안을 내용상 아무런 변화없이 문귀 몇자만 바꾸고 종회에서 통과시킨 전례가 있는데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원각사사태’는 끝이 난 것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불교계가 얼마만큼 그 힘을 결집하여 응징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응징은 모든 불교인들이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고 불교 자주성 쟁취의 연장선상에 사회의 민주화와 그 궤를 같이 하며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는 아이 젖 한번 더 준다고 외치고 싸워도 줄까 말까 한데 아무렇게나 짓밟아 버려도 꿈틀조차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당연히 ‘명동 성당 사태’와 비교되는 ‘원각사사태’ 정도의 대접밖에 못 받게 되는 것이다. 모일간지 논설위원의 말대로 정치인이 정치를 제대로 못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을 때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성직자(승려, 신부, 목사)가 정치인 대신에 정치적 역할을 담당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길이 바로 잘못된 정치로부터 고통받는 많은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일이므로 이는 곧 성직자들의 본연의 암무와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자기 밥그릇 싸움만 하다보면 그 밥그릇조차 빼앗길 수 있으나 이웃의 밥그릇을 걱정해주다 보면 자기 밥그릇도 기름진 음식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분명 불교의 문제는 이미 다른 사회의 제문제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불교 문제의 해결은 사회의 제문제에 대한 해결을 병행하지 않을 때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불교가 이땅에서 그 존재 가치를 영원히 상실해 버리는 사태가 당도하기 전에 불교인 모두는 눈을 부릅뜨고 역사사회의 고통에 동참하여야 한다. 이 길만이 지금의 한국불교를 재생시킬 수 있는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