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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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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자의 소리 - 임은주 1987년 07월 65호
불교의 의식 중에는 음력 3월 3일, 8월 15일 동에 거행하는 방생법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방생이라고 하는 것은 죽음에 직면해 있는 생물을 살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는 중생의 생명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오계나 팔관재계 등에도 불살생계를 지고의 계율로 손꼽고 있으며, 적극적인 불살생이라 할 수 있는 방생법회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방생의 의식은 부처님의 자비 정신을 몸소 실행하는 한 계기입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바로 알고, 인간의 제반 자유를 존중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재가신자의 한사람으로서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을 바라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읍니다.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건으로 우리 국민은 빗물 한방울도 피하면서 핵의 위력에 떨었읍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밑에 도사리고 있는 천여개의 핵은 인식하지 못한 채 태연스레 살아가고 있읍니다. 한국 사람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미국의 대소 싸움에 악용되고 있는 이 현실은 한국인의 죽음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인은 하찮은 벌레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는데 하물며 인간 생명의 소중함은 물어 무엇하겠읍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명을 시시각각 위협하고 있는 핵이 한반도 곳곳에 산재해 있음은 예토를 불국정토로 개혁하고자 하는 불교인을 부끄럽게 하고 있읍니다. 한편, 시민들은 거리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최루가스로 인해 눈물과 재채기, 피부병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읍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투경찰의 무차별한 직격탄 난사로 무고한 시민이 상처에 신음하고 있읍니다. 한 연세대학교 학생은 직격탄에 뇌를 다쳐 죽기 직전의 상태에 있읍니다. 국민의 생활을 불편하게 할뿐더러 소중한 생명까지 위협하는 살상 무기가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의 손에서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있읍니다. 부처님께서도 최루탄에 눈물짓고 계십니다. 지난1월에는 박 종철 법우가 경관의 무자비한 고문으로 죽음까지 당했읍니다. 권모 양은 성고문으로 아픈 울움을 토했고, 많은 양심수들은 고문의 아픔으로 아우성치고 있읍니다.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신체의 자유가 거리에서는 불심 검문, 불법 연행으로 공공연히 외면되고, 어두운 밀실에서는 욕설과 구타는 물론 불고문, 전기고문, 성고문 등의 파렴치한 행위로 유린당하고 있읍니다. 신체의 구속에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공권력의 폭행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은 인간의 존엄성을 망각한 마구니들에 의해 말법 시대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불살생의 계율을 가장 중요시하는 우리 불교인은 많은 사찰에서 수시로 방생법회를 거행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죽어가는 생물을 풀어주어 구원하는 이 자비 실천의 방생의식이 단순히 물고기를 강에다 놓아주고 자신들의 행복만을 기원하는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의식으로 점차 변질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놀부가 멀쩡한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여 자기 복을 비는 기만에서 벗어나, 죽음까지도 부르는 현실의 제도를 타파하고 뭇중생의 생명을 보유하는 적극적인 자비행이 오늘의 불교도에게 절실히 요구됩니다.
“산 것을 몸소 죽여서는 안 된다. 또 남을 시켜 죽여서도 안 된다. 그리고 죽이는 것을 보고 묵인해도 안 된다. 난폭한 것을 두려워하는 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거두어야 한다.”(숫타니파아타 소품 담미카 중에서)
“항상 방생을 행하고, 남도 방생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세상 사람이 축생을 죽이는 것을 보았을 때는 마땅히 방편을 써서 구호하여 괴로움에서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법망경 중에서)
한반도가 핵의 공포와 공권력의 폭압에서 탈피하여 참자유를 누리는 진정한 불국토가 되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드리며, 한반도의 참된 방생을 위해 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부처님 전에 서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