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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의 인연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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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서갑숙 1987년 07월 65호
산(山)스님,
절 올립니다.
향이 반쯤 넘게 타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의 절은 저의 번뇌망상을 어루만지듯 마쳤읍니다. 백팔번의 절을 한 지 열흘이 되었읍니다. 아직도 절을 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처음보다는 거뜬함을 느낍니다.
법당문을 열고 뜨락에 내려서니 새벽공기에 따라나온 향 내음이 산사의 풍경과 어울려 소리를 냅니다. 마당을 쓸고 계시는 노스님께 합장하고 숲으로 걷다보니 다람쥐가 달려가고 휘파람새 소리가 숲속에 가득합니다.
오래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새벽 안개로 싸인 숲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늘 새벽 산사로 향하던 길에서 만난 늙은 개를 떠올렸읍니다.
개 한 마리가 털도 빠지고 힘없는 꼬리를 내려뜨린 채 길 가운데서 서성거리고 있었읍니다. 놀랜 저는 헤드라이트를 비추고 크랙숀 소리를 높여도 그 늙은 개는 꼼짝할 생각도 않고 서 있었읍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개의 눈은 자신의 죽음을 원하는 눈빛이었읍니다. 개가 죽을 생각을 하다니, 하필 내게 죽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다니, 갑자기 머리 속이 혼미해졌읍니다.
부처님 말씀을 생각했읍니다 -모든생명체에는 불성(佛性)이 있다.
저 늙은 개도 비록 짐승의 몸을 빌어 태어났지만 부처님의 법을 깨우치려 얼마나 애를 썼을까? 이 생에서 못 다한 공부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고 싶다는 소원으로 내게 죽여 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보인 것이 아닐까?
저는 먼 길을 돌아서 간신히 그 개에게서 멀어졌지만 그대로 그 자리에 서서 저를 바라보던 그 개의 모습이 제 머릿속을 영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백팔번의 절을 하면서 자비로우신 부처님께 개를 위해 발원해 보았읍니다. 개의 목숨 다하거든 불법승에 귀의하여 내생에는 사람 몸 받아 부처님의 바른 법을 만나서 많은 깨달음 얻고 중생들 제도할 수 있게 되길.
산(山)스님,
저는 사실 백팔번의 절을 하면서 진정절하는 의미는 알지 못했읍니다. 단순한 무릎의 굴절 운동 이상 무엇이 있을까 하고 자문도 해보았읍니다. 물론 그 깊은 의미 전부를 지금 다 알 수는 없지만 오늘에서야 그 의미의 작은 부분이라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한번 절하면서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깊은 가르침과 부처님 말씀따라 수행하며 재가불자들을 깨우치시는 스님들께 귀의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채웠고, 두 번 절하면서는 저를 감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들을 수용하도록 발원하였고, 세번 절하면서는 제가 지닌 자만함들 모두 버리자고, 또 네번 절하면서…, 다섯번 절하면서…
누군가에게 또는 자신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고개 숙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겠지요.
몸과 마음을 한데 모아 부처님 전에 조아리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마음 한켠에 어떤 향기로움으로 쌓여감을 느낍니다.
산(山)스님,
제가 부처님과 인연 맺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겠지요? 저의 어머니는 벌써 오래 전부터 절에 다니셨지만 저는 종교의 모순만 찾아 이 종교 저 종교를 기웃거리고 있었읍니다. 어떤 종교도 알지 못하면서 단순히 논리의 단점이나 모순만 생각했었읍니다. 나름대로 갖는 편견만이 진지했고 모든 이치는 톱니바퀴에 물리지 않았읍니다. 그런 저의 내면 한쪽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할 때 스님을 뵙게 된 것입니다. 스님, 그때 스님 뺨에 저와 똑같은 위치 똑같은 크기의 점이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랬는지 모릅니다. 장난스러운 저는 “어머 왜 이제 오셨어요. 천년 전에 약속하셨잖아요. 왼쪽 뺨에 점으로 알아 보자구요” 했더니 웃으시며 “차 한잔하고 가시지요” 하시며 다기를 준비하시던 스님의 모습에서 저는 왠지 산 그림자 닮아 시리도록 푸른 외로용을 접했었답니다. 뒤늦게서야 그 푸른 외로움이 스님께서 오랫동안 다져온 수행과 비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말입니다. 그 이후에도 스님을 뵈러 갈 때마다 스님이 끓여 주시던 차의 향기는 저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부처님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였고 이상하리만치 불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시던 스님의 침묵 행위가 지금은 오히려 부처님 가르침을 향한 뜨거움으로 변모하여 허공처럼 저를 덮게 되었읍니다. 이 모든것이 스님의 말씀대로 무량한 인연 때문 인가봅니다. 그 무량한 인연으로 만날 수 있었던 부처님과의 만남을 계속 지켜 주신다면 부처님과 많은 중생들에게 올리는 저의 백팔 참회와 발원은 이 생이 맺음되도록 끊이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산스님,
여름이 짙어가고 있읍니다. 이번 휴가때에는 물이 흐르고 지혜향기 그옥한 작은 산사에 가서 바쁘고 여유없이 보낸 도시의 생활과 연기(演技)하며 느꼈던 부족함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언행이 수선스럽지나 않았던가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았던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앞으로의 모든 일상을 보람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새기기에 좋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 지혜향기 옮겨다 저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나눠주고 제가 하고 있는 부끄러운 연기나 일상들의 바탕이 되고자 노력하겠읍니다.
스님, 많은 중생들 위해 더 큰불도 이루십시오.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