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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보살의 깨달음과 교화가 함께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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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현능 1991년 06월 112호
서울은 만원이다. 우스갯소리도 자조척 소리도 아닌 우리가 매낄 보고 듣고 부대끼며 느끼는 현실이다.
지하철도 시장도 빌딩도 차동차도 만원이고, 사람도 많고, 돈도 많고’ 물건도 많고, 아파트도 많다. 권력자의 독재도 만원이고, 그에 맞서 항의하는 데모도 만원이다. 더끊이 서울의 밤하늘을 온통 공동묘지로 만드는 교회외 십자가도 만원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불교는 서울에서 환가하고, 전법올 행하는 포교당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불교인들이 나태해서 열심히 전법의 길에 나서지 않아서인개 사캄들이 불교에 대한 믿음올 저버린 것인가. 그도저모 아니면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이 흘러넘치는 서울에 사찰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정법을 전하는 지극환 원력을 가진 사랍올 만날 수 없는 가.
이러한 의문과 회의는 출가 이후 늘 나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은 물음이었다.
학업을 마치고 다시 산중에 들어가 정진하면서 오로지 혼자의 깨달음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이 회색빛도시에 진정 물질의 풍요로움만으로 채워지지 않은 광활한 정신외 세계를 열어주는 전법의 길올 갈 것인가 망설임에 꾀롭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만나는 사람 가운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회구하고 스님네를 의지하고자 확한 사랍이 매우 많다는 것에 나 자신의 원력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력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길이 었다는 믿음 하나로 이 척박한 도시의 땅에 포교의 길을 나선 것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막막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두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활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일단은 조금이라도 불교에 대한 호기심 하나라도 있으면 되지 않겠나 싶어 가가호호 돌면서 불법의 바른 가르침을 만나서 생사의 고해에 벗어나 영원히 사는 길을 찾자고 권유 하는 전단을 무수히 뿌렸다. 그래도 처음 얼마간은 찾아오는 사람도 적고 반응도 미미했다. 이런 것에 개의치 않고 찾아오는 한 사람이라도 열파 성을 다해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고 설법하고’ 그들의 고민도 듣고 함께 풀어나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중에는 그저 고개 두어 번 끄덕이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무엇인가 마음속에 울림이 있어 열심히 포교당올 찾아주는 사람도 있었다. 부처님도 초전설법에 5비구로 시작했고, 중국의 구법승들도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멸고 험한 인도까지 불법 구하는 길에 나섰고, 이 땅에 불법 흥포를 위해 이차돈 성사는 순교의 길을 가지 않았나. 내가 가는 전법의 길은 결코 어려운 길이 아니다. 팔만대장경의 보배와 같은 말씀과, 역대 조사의 가르침과, 무엇보다도 부처님 가르침에 목말라하는 수많은 사랍이 었지 않은자 이렇게 차츰차츰 주변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얼마지 않아 우리 포교당은 법당이 비좁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포교당 일이 자연스럽게 풀려나간 것은 아니다. 신도가 많아지자 갖가지 불협화음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찰 운영의 불합리한 점이 발견되기도 하고, 더러는 이교도의 훼방이 가슴 아프게 하기도 했다.
도고마성이라고 했던자 어쨌든 이런 여러 가지 혼란과 어려움은 오직 기도를 통하여 이겨낼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처음 땐 껄법위주의 신행을 이끌었으나, 차츰 기도와 참선청진의 시간을 더 많이 주어 스스로 수행의 체험을 갖도록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보다 넓은 불교적 안목올 갖추는 것이 올바른 신행에 도움이 된다 싶어 교계의 큰스님올 자주 초청하여 설법을 들을 기회롤 만들어 주었다.
이제 우리 포교당은 스스로 잘 알아서 자기의 일을 챙기고, 하나라도 불교를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일보다 먼저 서둘러 하는 신도들로 가득하다. 누구 하나 전법의 보살도를 서원하지 않은 사람이 없올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을 본다.
이처럼 사람 사람이 함께하는 보살의 수행은 위없는 깨달음을 향한 정진과 함께 끝없는 정진일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저 혼자만의 고봉정상에 거니는 단독자의 것이 아닐진대” 사람들의 구체적 현장에서 그들의 삶의 질을 승화시키고 그들 삶 자체가 보살이 되도록 하는데 더 빛을 발할 것이다.
모든 것이 만원인 서울 땅은 만원인 만큼 혼란과 무질서와 범죄와 폭력이 난무한다. 보살의 원력을, 중생 사랑하는 자비의 마음을, 이런 오탁악세의 현장에 청량한 빛으로 깨끗한 믿음으로 바쳐야 하지 않겠나.
법회시건에 강단에 서서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을 열망하는 수많은 눈동자를 본다. 과거의 부처요, 당대의 부처요, 미래의 부처일지니 이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진정한 정진의 자리요, 육바라밀의 자리이겠다.
“중생이 병을 앓기 때문에 보살이 병들며, 중생의 병이 l+올 때 보살의 병도 낫는다”는 유마거사의 가르첨이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서 보살의 서원이 되어야 하고 정진이 되어야 하고 구경의 자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현능스님은 하동 상계사로 출가하여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사천왕사의 주지로 포교활동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