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변덕만 는다”고 한 어느 노 철학자의 말은 나에게 위안이 되지않는다. 일상이란 어차피 교훈적일 수 없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래도 나는 아침에 했던 생각들이 저녁에도 생생하길 바란다. 지난밤에 했던 후회와 참회가 오늘 아침은 물론이고 앞으로 나를 그릇되지 않게 하길 바란다. 이것이 산사를 찾을 때마다 생각해보곤 하는 나의 바램이다.
얼마 전에도 나는 갈수록 수상한 시절과 내 척박하기만 한 일상 때문에 며칠을 우울해하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해인사를 찾았다.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긴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오는 손님을 웃으며 맞이하고, 무엇을 살것인가 물어보고, 정성껏 포장해서 정겹게 보내야하는, 4평 남짓한 나의 직업터인 가게에서 조금도 색다르지 않은 일상의 틀에 매여 지내야 하는 나로서는 마음을 낸다고 해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사행은 결코 아니다.
홍류동의 신록은 푸르다 못해 녹빛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절을 찾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산문이 저만큼 보일 때부터 움츠렸던 기분은 확 풀리고 마음은 고운 채로 걸러내듯 정화가 된다. 일주문을 들어섰을 때 문득 들려오는 청아한 목탁소리… 편안하다. 절은 절하는 곳이어서 절이라는, 큰스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법당에 올라 절을 한다. 적어도 백팔배는 해야지. 너무도 웅장하게 앉아 계시기에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손끝이 떨리는 부처님 앞에 향을 사루어 올리고 절을 한다.
“부처님. 삼라만상이 다부처라지만, 그리고 그걸 깨닫기 위해 마음의 눈을 떠야한다지만, 아무리 마음의 먼지를 털고 닦아내어도 제 안에서는 부처를 볼 수가 없읍니다. 한낱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 저는 지나가는 손님들이 물건을 사가기만 바라고 엄지와 검지로 느껴지는 지혜의 감촉에만 쏠려 급급히 하루를 마감하니, 나의 뜻은 빈 들판처럼 보잘것없고 마음은 접시물처럼 빈약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요즘 세상은 왜 이렇습니까?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면 연쇄살인 사건이 눈을 아리게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오후에 또 신문을 들치면 뜻푸른 대학생이 고문으로 죽었답니다. 죽인 사람들로서는 그 사실이 재수없게(?) 밝혀졌겠지만, 그 이면에 섬찟한 진상이 또다시 숨어 있어 종일을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일년에도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최루탄에 밀려 학업을 포기하고 감옥에서, 노동현장에서 고등 룸펜으로 사장되어 간다는 사실을 어찌하겠읍니까?
“우리처럼 변변찮은 생활인도 매일 대하는 사건들 때문에 평범한 하루조차 고통의 연속입니다. 삶을 살아볼 만한 것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것은 가족과 친구도 있겠고 개인의 조그마한 소망도 있겠지만 정말 우리에게 긍정의 마음을 주는 것은 내가 그 일원으로 속해 있는 이 사회가 진정 살아볼 만한 가치와 희망의 내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어떤 의미가 근본적으로 부여되는 데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 민족의 삶을 죽이고 살릴 수도 있는 저 높으신 분들은 정말 강심장인 것같습니다. 그들은 국민이 곧 자신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결코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외면해 버리는 것인지요.
“부처님! 당신은 ‘나를 믿지도 말고 의지하지도 말라’고 하셨지만, 이제 그 높은 단상을 헐고 내려와주십시오. 이제는 백두산 호랑이의 표효처럼 큰소리로 ‘나를 믿고 따르라’고 앞장서서 우리 중생들이 필요없는 핍박과 고통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게 이끌어 주십시오.”
나의 기도가 여기까지 미칠 때쯤, 문득하던 절을 멈추고 대체 누구에게 이렇듯 기구하며 벌고 염원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신문과 매스컴을 온통 뒤덮던 사건들을 대할 때면 손까지 떨며 경악스러워 하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잊어버리는 지신의 안일함에 백팔배가 아니라 수천번의 절이라도 무슨 소용이 닿으랴. 모든 불공은 자신의 참회진언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남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는 나 지신은 어떠한가. ‘나’와 ‘너’가 너무도 명백히 갈라져 있기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잘못은 ‘내’가 아닌 ‘너’에게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너와 내가 진정한 의미의 ‘우리’로 합쳐서 서로를 존귀한 존재로 대접할 수 있을때만 단상을 향한 백팔배의 나의 기원은 부처님의 가슴으로, 아름다운 이 산사로, 우리 한민족의 땅 전체로 올려나가리라. 다시 한번 내 마음을 향해 마지막 절을 하고 법당문을 나섰다.
시리도록 푸른 녹음의 가야산을 대하니 내 속에 방금까지도 숨은 상념의 그림자는 어느샌가 사라졌다. 억지로 틈을 내서 산사를 찾는 시간보다 수시로 사람들 틈에 끼기를 원한 부처님의 자세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시간들이 많아져야겠다. 그래서 우울한 것을 이유로 산사를 찾는 일이 적어져야겠다고 생각하며 하산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