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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계/출가는 세간과의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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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원철 1991년 06월 112호
산내에서 터가 가장 순하다는 이곳. 눈부신 초여름 오후 햇살이 더없는 편안함으로 닿야온다. 조금은 서
툰 듯한 솜씨로 옮겨 지은 기교없는 율원 극락전은 한생각 쉬어버린 수행자 같은 고졸한 모습으로 앉아
었다.
출가한 지 이태홈 되었올 무렵이다. 속기에서 기별이 왔다. 한번 따녀 갔으면 한다교 긴한 일도 있고
하니. 사질 장남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부담감이 마음 한구석에 늘 자꾀하고 있던지라 어쩔까 하고 망셜였
다. 그건 ‘출가자’라는 명분과 세간적인 정감이 교차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강펀 교지 편집실에서 주최한 ‘율주 일타 큰스님과의 패담’이 있었다. 나도 끝자리를 차지한 터였다. 대담이 거의 끝날 무렵 각본에도 없는 질문을 넌즈시 집어 넣어 여쭈었다.

“------아무개 스님께서 집에서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 그래서 필요한 것들을 대충 챙겨길을 나섰지. 미올 어귀에 이르러서 목탁올 꺼내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기 시작했어. 수십 년 만에 집에 들어가니 ‘누구네 아들 왔다’고 동네 사랍들이 야단인가 그래도 아랑곳 없이 ‘아미타불’만 불혔다는거。
이유고 공양 때가 되자 모친이 상올 준비하면서 ‘아무개야! 이것 좀 먹고 하거라’ 하길래 그냥 못들은 체하고 계속 정근만 했더니 나중에는, ‘스님 ! 이것 좀 드시고 하섭시오’라고 하시더란다. 그래서 못이기는 체하고 공양을 마치고 다시 밤새도록 정근을 했지. 급기야 나중에는 문상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아미타불’을 따라서 하더라는 거야 그리하여 결국 여법하게 장례를 마철 수 있었고, 또한 ‘누구네는 아들 하나 잘 두었다’는 말올 들으면 서 돌아왔다는 게악 이처럼 출가자로서 모든 중생에 게 이익이 될 수 있다면 장례식이 아니더라도 가보는 게 좋겠지. 二l행지 못할 바에야---
사실 나의 망셜임은 출가자로서의 망설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부끄러웠다. 그 뒤로부터는 가능한 한 출가자답게 생깎하고, 출가자답게 행동하고, 출가자 답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바태 존자의 당부 말씀처럼 첫째는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올 똑똑히 구별’함이요, 둘째는 그러한 분별력으로 ‘기야만 할 길을 고고하게 찾아서 가는’ 실천력이라고 믿게 되었다.
사실 ‘출가자다웅’이란 ‘출가’라는 말에서 보듯 먼 저 세간과의 단절올 그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것은 세간에 대한 회피나 방판 또는 초월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왜냐하면 ‘출가자다움’으로 다시 세간으로 돌아감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출가자다움-’
이 더욱 빛나게 될 것이므로. 몇년 전에 봉은사에서 업척하신 영암스님이 해인사에 사실 때의 일화. 축담을 쓸고난 후 물을 뿌리다가 한 방울일지라도 나무기둥에 될라치면 당장 걸망올 싸도록 했다, 누구 든지. 기둥을 상하게 하여 삼보의 재산올 낭비하게 한다교 청소하면서 어느 노스님께 이 이야기를 듣고난 후 나 역시 조심조심 물을 뿌리게 되었다. 행여나 쫓겨날까봐.


원철스님은 해인사로 출가하여 해인승가대학을 졸업하엿으며, 지금은 해인총림 율원에서 수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