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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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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7년 07월 65호
그런 승호가 어느날 외숙부님께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승숙이랑 승기랑 안방에 모여 놀고 있는데, 사랑방에서 큰 소리가 난 것이다. 소쩍새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봄밤인데, 승호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궁금해졌다.
함께 었있 외숙모와 점례랑 점득이도 입을 다물고 사랑방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날밤, 점득이는 점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샅샅이 얘기했다.
“승호형이 아버지를 많이 따랐다고 했어.”
“그럴거야. 너희 아버지도 승호를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승호오빠는 소련 군인이 밉다 했어.”
“……”
어머니는 갑자기 업을 다물었다.
“승호형은 소련놈 편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 편이라 했어.”


점득에는 그래놓고는
“엄마, 동지가 뭐야?”
하고 물었다.
“그건 엄마도 모른다.”
잠지리에 들어가지고도 점득이는 한참 동안 잠을 못 이루었다. 다음날, 승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밭에 일을 나갔다.
여름이 오고, 그리고 가을이 왔다.
어머니는 여름내 가으내 날품을 팔았다. 그 덕택에 먹을 것도 생기고 두부 만들 콩밑천도 장만했다. 그해 겨울, 승호는 외숙부께 또 꾸중을 들었다.
승호는 어느날 점득이를 데리고 전에 올라갔던 뒷산으로 갔다. 승호형의 얼굴이 여느 때 같지 않았다. 희고 파리한 기운 없는 얼굴이었다.
“점득아, 사람은 말이지. 평생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점득이는 갑자기 어려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지 몰랐다.
“난 말이지. 아버지 말씀 거역하기 위해 내 마음대로 하자는 건 아니거든. 그런데 …”
승호는 한숨을 쉬었다.
“형은 뭘 하려는거야?”
점득이는 지난 어느 봄날 밤, 외숙부한테 뺨을 얻어맞아 가면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난 말이지. 아버지가 하지 말라 하시는 걸 하려고 맘먹었거든.”
점득이는 마음 속으로 얼른 손꼽아 보았다.
(동지, 가난한 사람들 편, 좋고 나쁜 것…)
“어떻게 하는 건데, 그건?”
점득이는? 승호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
승호는 대답대신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그것 아주 아주 힘드는 거야?”
“그래, 힘들고 어렵단다.”
“많이 어려워?”
“응.”
“……”
“점득아”
“왜 그래, 형?”
“너희 집, 만주에서 고생 많이 했지?”
“그래,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무척 고생하셨어.”
“점득이네 뿐만이 아니고, 우리나라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살고 있단다. 그래서 만주에도 갔고, 일본에도 갔고, 더 멀리 남의 나라에 가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단다. 그게 모두가 나라가 굳건하게 서 있지 못한 탓이야.”
승호는 이제 여덟살밖에 되지 않는 점득이한테 아주 자상하게 차근차근 들려 주고 있었다. 날씨가 추운 탓만이 아닐게다. 승호의 얼굴이 유달리 창백한 것은 무언가 괴로운 걱정이 있는 것이다.
겨울 하늘에 이따끔 검은 덩어리진 구름이 해를 가리었다. 그때마다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귓가를 차갑게 스치고 갔다.
승호는 점득이의 어깨를 꼭 싸안으며 다시 말했다.
“점득아, 형은 아버지보다 나라를 더 사랑하고 싶어. 그렇다고 아버지가 미운 건 아니거든. 그래서 슬프단다.”
승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또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점득이를 일으켜 세우고는 자신도 일어났다.
“점득이는 고모님 잘 모셔야 해. 그리고 씩씩한 아이가 되어야 해.”
점득이는 자꾸 이상해졌다. 그리고 승호형이 어딘가 먼 곳에 가버리는 듯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걸 물어보지도 못하고 산을 내려와 버렸다.
다음날, 흰눈이 펑펑 쏟아지는 새벽에 승호는 집을 나가, 버렸다. 대추나무집 중탁이와 텃논집 석호와 그 외 남식이, 무영이, 모두 일곱 명이었다.
외숙부는 자리에 눕고 외숙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점득이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뒷산 동성이를 바라보았다.
(승호 형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눈이 내리는데도 집을 몰래 나가야 하는 걸까?)
모과나무골은 쏟아지는 눈보라와 함께 걱정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마을에서는 승호네들의 행동이 옳다는 쪽과 나쁘다는 쪽으로 반반씩 나뉘어졌다. 대추나무집 중탁이네 아버지되는 최씨는 이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젊은이들은 옳은 일을 위해 일어나야지. 나라도 백성도 언제까지나 짓눌려 살아서는 안돼. 정말 해방은 아직 멀었어.”
어느 집 사랑방에 모이기만 하면, 최씨는 되풀이 되풀이 진짜 해방을 위해 젊은이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럼, 8.15는 해방이 아니고 뭐란 말씀인가요?”
승호네들의 행동이 나쁘다고 주장하는 무영이네 아버지 장씨의 말이었다.
“일본이 물러간 것으로 해방됐다고 생각해선 안 돼. 진짜 해방은 자유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삼팔선 그어 놓고 남북을 갈라놓은 건 더 큰 자유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최씨는 아주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그럼, 젊은이들이 모두 빨갱이가 되어야만 해방이 되는 건가요?”
장씨가 불끈 화를 내며 물었다.
“빨갱이란 말은 걷어치우시오. 빨갱이란 말도 왜놈들어 우리 독립군에게 붙인 이름이지 않소. 우리 중탁이랑 같이 나간 젊은이들은 모두 착한 애들이오.”
“……”
장씨는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점득이네는 두부 만드는 일에 매일 바빴다. 승호가 갑자기 집을 나가버려 땔나무를 해오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새벽 일찍 일어나 콩을 갈고, 두부를 쑤었다. 그리고는 낮에 산에 가서 나무를 했다. 어머니와 함께 점례도 점득이도 따라가서 억새풀을 베고 소나무의 마른 가지를 쳐왔다.
나뭇단을 이고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어머니가 넘어지기도 하고 점득이도 넘어졌다. 나뭇단이 굴러가 개울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흩어지고, 무릎이 깨지기도 했다. 점득이는 울음이 자꾸 터져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머니도 역시 다친 무릎을 쓸어내리며 흩어진 나뭇가지를 다시 모아서 묶었다. 거칠어진 손이 군데 군데 갈라져 피가 났다. 바람이 불면 어머니의 머리칼이 날려 앞 이마를 가리었다.
셋이서 해온 나무도 두부만드는 데 간신히 이어나갈 뿐이었다. 점득이는 고달프고 서러웠다. 어머니도 가없고, 점례누나도 불쌍했다.
“엄마 우리도 두부장사 하지 말고 농사지으면 좋겠다.”
점례가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점득이는 후딱 정신이 들었다.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얼른 쳐다봤다.
“농사지으려면 땅이 있어야지.”
어머니는 가볍게 대답하고는 콩함지박을 끌어다놓고 쭉정이를 골라내는 일을 했다.
“우리는 왜 땅이 없어?”
점례는 다시 어머니께 물었다.
“옛날부터 없었던 거야. 그래서 아버지랑 만주까지 땅을 찾아 갔던 거지.”
“옛날부터 왜 없었어?”
“땅은 모두 양반들 것이었으니까 없었지.”
“양반들이란 뭐야?”
점례는 자꾸 다그쳐 물었다.
“벼슬하는 사람들이지.”
“벼슬이 뭔데?”
“글공부해서 면장도 되고, 군수도 되고 그런 거지.”
“그러면 땅을 가지는거야?”
“그래, 높은 양반들이니까 땅도 많이 가지고 세도도 부리고, 그래서 편하게 살지.”
점득이는 어쩐지 궁금해졌다.
“엄마!”
“으응?”
어머니는 점득이를 돌아다 봤다.
“아버지는 글공부도 하셨잖어? 책도 읽고 편지도 썼는데…”
“하지만 아버지는 벼슬하는 공부는 안 하셨어.”
“그럼, 벼슬하는 공부는 따로 있나?”
“그래, 엄마는 잘 모르지만 공부도 두 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남을 위해 하는 공부고, 하나는 자기만 위해 하는 공부가 있단다.”
“그럼, 아버지는 벼슬하는 공부는 안 하고 어떤 공부를 했나?”
“그냥 아버지는 혼자서 책을 읽고 쓰고, 그것 뿐이였지. 그러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였어.”
점득이는 알듯 알듯하면서도 얼른 깨달을 수 없었다.
“엄마, 인민들이란 뭐야?”
점례가 물었다. 만주에서도 들었고 조선에 와서 여기 저기서 들어온 말이다.
“인민이란 우리 같은 백성이지. 가난하고 힘없고 서러운 사람들이지.”
“그럼, 나도 인민이란 말이지?”
“……”
어머니는 말없이 조용히 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