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여대생
외국어대 총학생회실에서는 단식 농성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 비구니아닌 비구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것을 본 순간 원각사 법당 최루탄 난사에 항의하여 단식 농성에 들어갔었던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한쪽은 잿빛 가사를 걸쳤고, 한쪽은 세속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조지훈의 시처럼 과르라니 깎은 머리는 마찬가지였다.
외국어대 여학생 부장인 한양은 6월 5일 하오 2시 외국어대 도서관 앞에서 삭발 득도식(?)을 가졌다.
“한 때의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때문에 밤새껏 고민해 보고 아침에야 결심이 섰어요.”
한양의 생각대로 삭발식을 할 때 모든 학생들이 한양의 의사를 제대로 알아준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가 절인 줄 아나?”
“쳇, 자기가 무슨 대단한 뭐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군.”
몇몇 학생들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한양은 삭발을 하였으며 그의 머리가 잘려 나갈 때는 굳은 결심에도 불구하고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삭발도 의사전달 방법입니다. 화염병, 돌을 던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때가 때인지라 그녀에게 삭발의 이유를 묻는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대답은 아주 평범한 것이다.
“인간답게 사는 것.”
당나라의 도림선사(道林禪師)는 백낙천에게 삼척동자도 다 알지만 팔십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것이 불타의 가르침이라고 일침하였다. 유난히도 인간답지 못하는것이 범람하는 우리의 현실, 그 속에서 참다운 인간다움을 찾기 위해 삭발을 한 한모 양은 우리에게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바른 모습을 비유해 주고 있다.
농담 아닌 농담으로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가니 거기에는 목사, 신부, 승려만이 있더라고…. 진정한 출가 정신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한양의 삭발인가?……
썩은 고기를 매었던 새끼줄
“‘탁’ 하고 쳤더니 ‘윽’ 하고 죽었다”
-1월 16일 경찰
“박 종철 군은 서울대 민민투위 인문대책으로 경찰 내부의 C급 수배자였다. 그를 1월 14일 오전 8시 10분 3명의 경관이 연행하여 9시 20분부터 조사를 착수하였다. 이때 2명의 경관이 조사를 하였으며 박군이 말을 듣지 않아 두 차례 물고문을 하다가 오전 11시 20분경 욕조턱에 목이 눌려 사망했다.”
-1월 19일 경찰
“박 종철 군은 피의자 겸 참고인 신분으로 오전6시 40윈 6명의 경관이 연행하여 조사를 착수하였다. 이때 시간은 10시50분이었다. 이 후 2명의 경관이 조사를 하였으며 박군이 사실을 밝히지 않아 두차례 물고문을 하다가 30분만인 l1시 20분 욕조턱에 눌려 사망했다”
-l월 24일 검찰
“박군의 엄지와 검지 사이의 출혈반은 전기 고문 때 직류 전기의 유입구에 나타난 반점이며 사타구니와 폐에 나타난 출혈반은 직류의 유출부에 나타난 전류반이다. 따라서 박군의 최종 사인은 ‘전기고문에 의한 충격사’ 이다.”
-2월 20일 신민당
“박군을 직접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진짜 범인은 현재 구속 기소돼 재판계류중인 조 한경 경위와 강 진규 경사가 아니라 학원문화 1반 소속 경찰관 3명으로 현재 경찰관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5월 18일 천주교정의사제단
“박군 치사의 범인은 두사람이 확실하며 두 사람 이외의 가담자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정의사제단 성명은 전혀 사실 무근이다.”
-5월 20일 치안본부
“정의사제단 성명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이다. 조작설은 터무니 없는 짓이며 이같은 주장이 나오게 된 경위를 조사하겠다.”
-5월 20일 검찰
“박군 고문 치사 사건에 관련된 경관3명 추가 구속, 검찰은 지난 12일부터 이를 파악하고 조사를 해왔다. 의정부 교도소에 있는 조 경위 등 2명이 신창언 부장검사에게 이를 이야기했다.”
-5월 21일 검찰
법구경에 보면 부처님이 길을 가다가 제자에게 종이를 주워 오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종이는 이마 향을 쌌던 종이였나 보다. 냄새가 향기로왔다. 마찬가지로 썩은 고기를 매어 두었던 새끼줄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그 냄새는 맡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히 알게 된다. 썩은 고기를 맨 새끼줄에서 향내가 나기를 바라는 정부 당국자의 어리석음에 애처러움을 느낄 뿐이다.
인과응보의 금석지감(今昔之感)
고문(拷問) 이야기가 나오니 옛날(?)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것은 1923년 4월16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인데 박 종철 군 고문 치사사건으로 추가 구속된 3명의 경관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그 기사를 현대말로 그대로 옮겨본다.
-“고문순사(拷問巡査) 전근만 시켜-애매한 사람을 쳐서 눈동자가 나오게해
원산경찰서 풍하(豊下) 경찰관 주재소에 근무하는 순사 일본인 고시모는 조선인 모씨를 검거하여 심문을 할 때에 어찌나 몹시 고문을 하였던지 눈동자가 튀어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모씨는 조사 결과 무죄임이 밝혀져 풀려 나오게 되었는데 이후 고문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자 며칠 후에 모씨를 다시 주재소에 불러 ‘네가 눈동자가 나온 것은 길에서 넘어져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큰 일을 당할 것’ 이라고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이에 피해자 모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만 있다고 하는데 당국은 대무죄한 사람을 고문해 병신까지 만든 고시모 순사를 다른 곳으로 전근만사켰다고 한다.”
그 옛날 조선인을 고문하던 일본 순사는 그 인과응보인지 이 땅에서 쫓겨났지만 그들과 같이 조선인을 고문하던 조선순사는 해방 후 무엇을 했는지, 또 오늘 고문을 하다가 구속된 경찰관은 그것으로 인과응보를 다 치루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금석지감을 느낀다.
최후에는 누가 누구를 쫓아내는가
잘 닦여진 도로,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아파트의 시가지로 바뀌어진 목동을 바라보니 어느 아줌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도대체 세상에 뭘 믿고 살겄소. 신문도 텔레비도 맨날 거짓말만 늘어놔 쌌고 말도 못하게 고생만 해도 허구헌날 속는게 일이니 말은 해 뭣하겄소?
우리도 이 나라 국민인데 나라에서 필요한 땅이라면 언제든지 내놓을 수 있는겨. 나라에서 필요하다는데 왜 안내놀껴. 나라에서 거지 같은 우리들 땅 뺏어 장사하려니까 화나는겨. 게다가 지금 당장 어디 가서 굶지야 않겠지만 시방 거지돼서 쫓겨나 옛날 목동같은 데 가서 또 살만큼해 놓으면 거기서 또 쫓겨날 것 아녀?”
1964년 가을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신설동에서 2만원 보증금에 월세 천원짜리 삭월세로 서울 변두리 행로의 첫 발을 디딘 제천댁(50세)의 이야기이다 서울에 온 뒤 이제 여기선 좀 오래 뿌리내리고 살아야지 하면, 그 다음날로 계고장이 나오고 그래서 여기 저기 변두리 판자촌으로 쫓겨다니다가 72년에 목동에 이사를 온 것이 이 아줌마의 서울 변두리 행로이다. 그러나 제천댁의 변두리 행로는 목동에서 끝이 나지 않았다.
“내가 왜 이 집을, 이 땅을 떠나야 혀. 어떻게 만든 건데. 없이 살다가 모진 고생 다하면서도 이 집서 내 반생을 보냈는데 어떻게 여길 떠나란 겨? 이렇게 더럽게 살아도 내 집이 좋은 겨. 내 집서 살고싶은 겨.”
제천댁의 이 바램은 결국 신시가지를 만들어 장사를 하겠다고 포크레인과 무쇠망치와 쇠파이프로 무장한 서울시의 철거반에 의해 짓밟혀지고 지금 새로 세워진 아파트 어디에도 제천댁의 행방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목동 이후 사당동, 상계동, 양평동에서 들려오는 철거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는 제천댁의 이야기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서울시의 철거반원과 전경, 최루탄을 앞세운 철거 작전도 변함이 없고.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일곱 마리의 뱀은 그 꼬리를 놓지 않는 이상에 모두가 모두에게 먹히고 말것이다. 상의상관(相依相關)을 무시한 제 욕심 채우기 식의 정책은 결국 스스로 쫓겨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일불다불(-佛多佛)
현실 그 자체가 비로자나불이라는 화엄경에 보면 선재동자 이야기가 나온다. 선재동자는 도를 구하고 53의 선지식을 찾아 다니는데 그것은 다른 말로 일불(一佛)을 구하기 위해 다불(多佛;衆生)을 찾아 다니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면을 고찰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법을 구하는 것이 소년 즉동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구도 정신이 가장 전형적으로 소년의 몸에 응결해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둘째는 53선지식 중에 세속적 권력자, 외도인(外道人), 노동자, 경제인, 창녀가 속해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보살의 구도정신은 이런 곳에서도 일불을 찾아낼 수 있는 지혜이며 용기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가운데 일불(一佛)을 찾은 이가 있다면 그에게도 선재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