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流山房 그 투명 한 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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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성춘
1990년 01월 95호
일장스님, 그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갑자기 겨울바다가 보고 싶어서 방어진에 갔었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눈부신 얼굴로 넉넉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쓸쓸한 겨울바다에는 갈매기들과 해녀들 무리가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바다 속으로 자맥질하고 있었습니다. 이 차디찬 겨울 날에 나는 얼음같이 찬 바닷물 속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해녀들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아, 삶은 저토록 고통스러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아 저 해녀들처럼 온 몸을 던져서 최선을 다하는 삶, 정직한 삶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삶일까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일장스님.
그 곳 제주도 목부원의 삶은 어떻습니까? 요즘도 蘭을치면서 蘭향기처럼 맑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시는지요? 아름다운 삶을 명상하며 청정한 삶속에서 제주도의 바람과 흙들을 사랑하면서 고적한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그리고 제주도로 떠날 때 계획한 일은 이제 어느 정도 성공하셨나요? 이제 영 제주도 사람으로 지내시렵니까? 또다시 언제 옛날의 청류산방으로 돌아오시지는 않을는지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로 갈등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스님은 훌륭하신 분이라, 스님이 계신 곳은 무슨 일이든지 잘 될 것만 같은 나의 예감입니다.
얼마 전 나는 뜻밖에 서울로부터 반갑고도 고마운 전화한통을 받았습니다. 바로 음악선생인 저보다도 노래도 잘하시고 작곡도하시는, 이곳 울산동축사에 계시다가 지금은 서울로 가신 시명스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나는 시명스님의 다정한 전화 목소리 속에서 갑자기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하시던 제주도에 가신 스님의 낮고 따스한 목소리를 떠올렸고, 지난날 스님이 살았던 내원사 부근 淸流山房에서의 즐겁고 아름답던 추억의 테이프들이 나의 뇌리 속에 감겼다 이어졌다 하면서 슬슬 풀리기 시작하더군요.
일장 스님.
그때가 80년대 초입이던가요? 스님과의 만남은 저에게는 무슨 축복 같기만 한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왜 나는 틈만 나면 스님이 계신 금강대 쪽으로 마음 설레며 떠나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저는 불교가 무엇인지, (요즘은 나이 들수록 심오한 불교사상에 점점 빠져들고 있지만) 구도자의 삶은 어떤 모양이고 구도자의 삶은 왜 어려운지, 또 살아가면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깊히 모르고 그냥 금강대 부근의 자연과 스님의 인간적 체취가 좋아서 그곳을 찾은 것 같습니다. 무슨 거창한 종교적 매력이 아닌 아주 사소한 이유들, 이를테면 내 마음의 조그만 평화나 위안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그때 금강대토굴의 맑은바람, 맛나는 물, 새소리, 나무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가식없는 스님의 생활 철학, 따스한 인간미 들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천기(고양이)를 애인처럼 귀여워하사던 모습, 달밝은 봄 밤 소쩍새 울음소리 들으며 조지훈님의 詩를 암송하시던 고독한 모습들, 만날 때마다 정성스레 차려 주시던 은은한 녹차의 향기들, 간소하고 아름다운 생활 모습을 통해 저에게 마음의 평화를 나누어 주시곤 했지요. 그때 스님과 나눈 많은 삶의 얘기들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불교의‘空 사상’입니다. 그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모든 욕망을 버리고 버려서 얻게 되는 삶의 알맹이를 찾는 것이 불교의 ‘空 사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삶은 시작도 끝도 없는 막막한 것이고, 그래서 삶은 곧 죽음이고, 죽음은 곧 삶일 수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구도자는 시작도 끝도 안 보인다는 막막한 절대 고독속에서, 날마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라는 절대명제 속에 사색하고 정진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일장 스님,
이제 마지막 남은 달력 한장을 뜯으면 구십년대가 시작됩니다. 세월의 빠른 발소리를 들으며, 사십대 후반에서 내 삶을 뒤돌아봅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생각하면 아픈 회한이 따릅니다. 비록 내 삶이 실패일지라도 나는 내 실패의 삶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詩다운 詩를 써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고, 틈이 나면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가야금도 배우고 싶고, 중국어도 배우고 싶고, 우리 학생들을 위해 에어로빅과 포크댄스도 배워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작한 붓글씨 공부는 계속해서 서툴지만 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야 되겠지요.
결국 모든 것은 내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내 자신의 철저한 싸움만이 남았습니다. 이번 방학에는 읽고 싶었던 고전 작품 몇 권을 읽어서 정신의 재충전을 해둬야겠습니다. 흔히 얘기하듯이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나날. 그러나 잃은 것이 있어야 얻는 것도 있다는 말로 위로를 해봅니다.
언젠가 어디서 읽은 법정 스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살든 그 속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 바다처럼 갇히지 않고 영원히 흐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가슴속에 향기로운 꽃을 간직한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가슴속에 꽃은커녕 쓰레기통을 가진 사람도 있더군요. 제가 만난 스님들, 신부님들, 수녀님들은 한결같이 가슴에 평화로움과 가슴에 장미꽃 같은 향기를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분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큰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일장스님,
저희 근무처가 방어진 울기등대 곁이라 하루종일 바다를 보며 지낼 때가 많습니다. 끝없는 수평선을 보면서 제주도 서귀포에서 바라보던 막막한 수평선 생각도 해봅니다. 이 해가 저물기 전에 제주도로 전화를 내어서라도, 오늘 밤은 스님의 목소리를 한번 듣고 싶습니다. 언제나 부처님의 자비 속에서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성취하시길 멀리서 合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