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해인선원에서 /15년째 정진에 힘쓰고 계시는 도정스님께서는 “내가 이 산에 들어온 뒤로 잎이 푸르게 되고 누렇게 되어 지는 것만 알았지 몇번이나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지 못한다”고 하신 옛 선사의 말씀처럼 세월을 잊고 사시는 분이다.
스님을 처음 뵙는 순간 벼록 작은 체구지만 카량카랑한 목소리와 눈에는 광채가 흘러 한눈에 수행승의 면모를 느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랜 동안 수행을 닦는 사람을 가리켜 ‘도인(道人)’이라고 부르며, 그런 분들의 몸 전체에서는 향기가 뿜어 나온다고 하는 것일까.
스님께서는 “솔직히 말해서 공부를 잘 해서 나가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지내다보니 세월만 보내면서 밥만 축낸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긴 세월 동안 한번도 좌복 곁을 떠나지 않아 이제 해인선원의 산중인이 되고 만 셈이다.
스님께 대뜸 어떻게 공부를 저어나가야 옳은지를 여쭈었더니, “공부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우선 그 사람의 근기(根氣)에 따라 틀리지만 참선공부는 너무 급하게 서둘러도 안되고 너무 나태해도 안되는 것이에요‘ 되면 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끈질끼게 물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봐요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하면 무슨 경계가 일어나 아는 체를 하는데 무엇을 좀 안다고 해서 아는 체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아요 또 그런 경계가 나타나면 자기가 공부를 잘해서 된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것은 공부를 지어나가는 한 과정에 지나지 않아요. 누구나 힘써서 공부하다보면 그런 경계가 나타나기 마련이지요” 하신다.
되면 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자꾸 물고 늘어지는 공부가 말처럼 어찌 쉬울까. 그래서 승가에서는 참선공부를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라고 하지 않는가 결국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치열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아닐지….
도정스님께서는 선방으로 첫 발올 들여놓은 곳도 해인선원이며, 별다른 천재지변이 없다면 앞으로도 다른 곳에는 갈 생각이 없으시고 오로지 참선 수행만 하는 선방 수좌로서의 삶을 이어가실 모양이다. 어쩌면 해인선원이 개설된 이후로 한곳에 가장 오래 머무는 선객이 될 듯도 싶다.
처음에 선열당에서 퇴셜당으로 지금은 신장경각 건물로 선원이 옮겨지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언제나 여여한 마음- 그대로시다.
“처음 선방에 들어와 되면 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물고 늘어지기를 팔 년을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가 중앙망막염이란 눈병이 생겨 병을 고치다 보니 그 후로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았어요 요즘에는 그전처럼 공부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아요”
스님의 안타까움 섞인 말씀을 듣고 보니 옛 어른 스님들의 “공부를 하다 보면 병이 오기 쉽고 병이 나면 병 고치려다 마음대로 공부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그래서 젊고 건강할 때 부지런히 정진에 힘써야 한다고 이르신 것인가 보화.
스님께서는 해인사 구석구석올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며, 해인선원에 오래 머물다 보니 이제는 해인선원의 가풍이 몸에 젖어버린 지 오래다.
“지금까지 지내온 경함으로 봐서 우리나라 선방 중에서 해인선원에 가장 많은 수좌들이 모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보니 바랍이 세다고들 하지요 외부에서 볼 때는 금방 넘어지거나 못 쓰게 될 것처럼 보여도 그 물결이 지나가고 나면 여전히 정진할 수 있는 독특한 가풍이 있어요-또 자연적인 조건이나 선원에 대한 배려가 잘 되어 있고, 해마다 젊은 납자들의 방부 들이는 숫자도 늘고 있어요 이미 전국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해인사 선방은 선객이 살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전통은 결제 기간 중에는 반드시 일주일씩 용맹정진올 시킨다는 점이에요”
옛날에 큰스님들께서 살아계실 때만 해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화두를 챙기는 그 용맹정진이야말로 생사해탈의 대전제를 앞에 놓은 불꽃 튀는 전쟁이나 진배 없었다고 한다.
“용맹정진 기간 동안에는 유별나게 죽비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요 잠도 자지 못하고 정진올 하다보니 헛소리롤 하는 사람, 눈을 감고 글씨를 쓰는 사랍, 심지어는 벌떡 일어나 죽여버린다고 고함 지르는 사람 퉁퉁 용맹정진 기간에는 사소한 사건들이 일어나곤하지요”
해인선원에서 행해지는 용맹정진은 그 규율도 엄격하다. 선방 수좌라면 아무리 몸이 아프다고 해도 화장실만 출입할 수 있으면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걸망올 지고 산 밖으로 내쫓긴다. 그밖에 강원의 학인이나 사중 식구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참석할 수 있는데 일단 참여했으면 정진시간에 한 시간이라도 빠지게 되면 누구 활 것 없이 조용히 절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이처럼 어려운 과정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내내 동참하셨다. 숫자로 따지자면 지금까지 삼십 번이나 참석한 게되니까 이백십일 동안 용맹정진을 하신게 된다. 그저 업이 다물어지고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스님께서는 용맹정진 뿐만아니라 십 년 가까이 묵언정진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묵언정진이란 게 말처럼 그리쉬운 것은 아니에요 사오 년 정도는 제대로 묵언을 했지만 그 나머지 기간에는 법다히 하지 못했어요. 때때로 묵언공부가 필요하지만 근기가 약한 사람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벙어리가 살인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묵언정진을 하면 실지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묵언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옆에서 마음의 격분을 돋구는 수가 있는데 그 격랑을 이기지 못하면 실패하고 말지요. 그런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저 참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어요.”
외부세계와의 단절을 통해서 철두철미하게 내면세계로 침잠해 보려는 묵언정진은 선원에서 종종 행해지는 수행방법이지만 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웬만한 결심으로 결실을 얻기가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은 더러 스님을 가리켜 고집스럽다고 한다지만 참선공부가 그만한 고집 없이는 이루어질 것 같지가 않다.
스님께서는 그 동안 선방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고 옛과 비교되는 격세지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하시며, “예전 스님들은 공부할 때는 철저히 공부하고 놀때는 도 열심히 놀았어요.
말하자면 패기와 용기가 넘쳐 흘렀어요. 그러면서도 승려로서의 기본 계율은 반드시 지켰지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쫓을 정도로 엄격한 구석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스님들은 기본 상식조차 지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예전과 같은 정열이 많이 식어 버린 듯해요”라며 서슬퍼런 수좌정신이 부족함을 못내 아쉬워하신다.
스님께서는 해제가 되어도 특별한 볼일이 없으면 산문 밖 출입을 안하신다. 또 선원이란 대중 위주로 사는 곳이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이라도 큰방에서 정진하고 있으면 정진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한번은 해제철이 되어 모두가 나가고 혼자서 정진할 개인데 색다른 광경을 보았다고 하시며 들려 주셨다.
“퇴설당에서 혼자서 정진을 하고 있는데 파리 환 마리7L보였어요. 그것이 정한하고 있는 나를 좋아하듯 주위를 맴톨고 있었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벌이 한 마리 들어와 앵앵거리니까 파리가 있는 힘을 다하여 벌올 내동탱이쳐 내쫓는 것을 보고는 참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또 한번은 혼자서 정진하고 있는데 금개구리가 어디서 와서는 벽을 한참 기어다니다가 나가는 것을 보고 순간 그것이 통도사 지장암의 금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일이 있은 후 바로 퇴설당올 개축하는 공사가 벌어졌어요.”
바위도 뚫는다는 정진력이고 보면 하찮은 곤충 미물이야 정진력 앞에서는 감히 함부로 날뛰지 못 함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을 빼면 대부분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서 참선정진하는 선방이란 것을 곤충까지도 상식적으로 알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스님의 본사는 통도사이다. 일암(一훌) 스님올 은사로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출가를 하셨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출가를 결심한 후로 철저히 육식은 하지 않고 절에 갈 생각만 하였는데 몇 번 절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붙잡혀 가는 과정을 겪느라 수계가 늦어진 ‘늦깎이’가 되었지만 오히려 공부하는 마음자세는 남 못지 않게 곧은 성품이시다.
스님께서는 통도사 강원에서 치문을 배울 때 홍법스님께서 일러준 말씀을 언제 어디에 있든 중노릇의 표준으로 삼으신다.
그것은 디름 아닌 고려 때 십육국사의 한 분이신 진각국사와 오계이다. 요즘 출가자들에게는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 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저 스님께서는 그 말씀이 바로 중노릇의 표준되는 산법문이라고 생각하여 가슴 깊이 새기며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고 하신다.
“옛날에 어떤 사미가 진각국사께 어떻게 해야 중노릇을 잘 하는 것인지를 물으니 다음과 같은 오계를 일러 주셨어요.
첫째, 나이가 들어 음심(淫心)이 일어나면 사람의 몸에 구더기가 가득하여 썩은 냄새가 나는 송장으로 생각하여 그 음심을 버려야 한다.
둘째, 술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더러운 똥오줌을 마시는 것처럼 여겨서 그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셋째, 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면 자기 가슴의 살을 도려내는 것과 같이 아픈 생각을 하여서 그 마음을 억제해야 한다.
넷째, 남을 때릴 일이 있으면 자기의 등줄기가 맞아서 아픈 것처럼 여겨 폭력을 써서는 안된다.
다섯째, 벌레를 죽일 때는 자기와 가장 친한 도반이나 스승, 나아가서는 부모를 자기가 직접 죽이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여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
스님께서는 이 말씀을 꼭 후학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요즘처럼 계율 정신이 흐려지고 있는 때에 다시 한번 새겨 들어야 할 말씀이 아닌가 싶다. 해인사 가야산의 푸른 솔이 언제나 푸르름을 잃지 않듯 도정스님의 구도를 향한 지고 지순한 마음 또한 늘푸르리라.
글/이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