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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 나무처럼 맑은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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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도리천 1990년 01월 95호
한문 시구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山中無曆日 花葉記春秋
“산중에 달력이 없으니, 꽃 피고 낙엽 지는 것을 보아 봄과 가을을 알 수가 있다.”
요즈음 깊은 산중에도 전화가 설치되어 있고 우편물이 매일 잘 배달되고 있으니 현대의 고급문화를 산간벽지에서도 그 혜택을 고루 누릴 수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암의 수행원이 갖추어야 할 제 모습은 위에서 보인 한시의 내용처럼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물론 산중무력일(山中無曆日)과 같은 사암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행자라면 최소한 화엽기춘추(花葉記春秋)의 대자연이 주는 환경에서 수도에 전념하는 것이 출가정신에 걸맞다 할 것이다. 숲속을 거니는 수행자의 모습과 빌딩 사이를 거니는 수행자의 모습을 서로 비교해 볼 때 전자의 모습이 훨씬 더 값지고 더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일게다.
숲속에 천년 침묵으로 놓여 있는 바위와 마냥 곧고 푸르게 솟아 있는 나무들이 바로 우리 수행자의 참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산중에 머물러 10년을 정진하게 되면 시중에서의 백년 이상의 진리를 얻게 되고, 시중에 머물러 10년을 헛되이 보내게 되면 산중의 백년 이상의 대도(大道)를 잃게 된다는 말씀처럼, 수행자는 응당 산을 가까이 하고 숲을 가까이 하면서 몸에서는 항상 흙내음 풀내음이 물씬 풍기도록 해야 한다. 흙내음 풀내음이 바로 도(道)의 향기이며 우리의 전형적 이상향(理想鄕)의 정서인 것이다.
산중에 머물다 보면 두 가지의 반대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게 된다. 그 첫째는 멈춰 있는 것이요, 그 둘째는 움직이고 있음이다. 멈춰 있는 것은 굳센 바위와 나무들이요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부드럽게 흐르는 산골의 물인 것이다.
수행자는 바위와 나무들과 같이 굳센 의지로 산중에서 몇몇 세월 동안 정진하여 얻은 지혜로, 세상 아래로 아래로 부드럽게 물처럼 흘러가 사람들의 갈증을 촉촉히 적셔 주어야 한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감로법문(甘露法門)이라 일컫고 있다.
불교를 신앙하고 있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근본 취지는 성취에 있다. 그 성취를 얻으려면 먼저 자신에게 굳센 의지가 있어야 하며, 또한 인류에게 성취를 주려면 저 스스로가 먼저 그 일에 성취되어 있어야 한다.
산곡에서 아래로 또는 얕은 곳으로 쉴 사이 없이 흘러가고 있는 산골물은 ‘맑음’이라고 하는 성취가 있기 때문에 그 돌 뿌리에 부딪치면서도 오히려 즐겁게 강과 바다라고 하는 사회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보살도행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자아완성의 빛은 태양 그 자체와 같아서 한없이 위대하고 한없이 거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밝아라 그러면 세상을 비추일 것이다”라는 경전의 말씀처럼, 밝아지기란 무척 어려워도 밝아지는 쪽으로 가는 길이 바로 수도의 길이며 모든 부처님도 이미 그 길을 걸으셨던 것이다.
새들이 양지 쪽으로 둥지를 트는 것도 밝음을 얻기 위한 것이며 인간이 사는 건물의 창을 동남쪽으로 다는 것도 또한 빛을 얻기 위한 것에서 연유한다.
평범하게 사는 조류나 인간은 빛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여 생활의 도구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세속을 벗어난 수행자는 빛을 내부로부터 발휘하여 모든 외계의 사물에게 밝은 광명을 고루 베풀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설산고행처럼 각고의 정진이 뒤따라야 한다.
정진(精進)은 하나의 건물을 완성하는데에서 가장 먼저 놓여야 할 주초와 같은 것이다. 그 주초가 반듯하고 힘차게 놓여 있을 때에 그 건물은 빗물과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이 오래도록 그의 사명을 튼튼히 이루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오래 전에 군에 입대하여 차량수송부의 벽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이 말의 뜻은 물론 차량이라고 하는 기계를 녹슬지 않게 잘 손질하고 고장이 없도록 잘 관리해야 된다는 상부의 지시방침이며 하부의 관리방침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구가 지금까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잊혀지지 않고 본인의 수행방침이 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에서일까.
불교적 입장에서 풀어볼 때 그 첫번째 닦는다는 뜻은 꾸준히 수행하여 심신을 연마하여야 한다는 뜻이며, 그 두번째 조인다는 뜻은 게으름이 없이 반성과 참회로 느슨하게 풀어져가고 있는 몸과 마음에 채찍질을 내려야 한다는 뜻이며, 그 세번째 기름친다는 뜻은 참선과 독경과 또한 크고 작은 법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좋은 법문을 많이 듣고 메마른 심신에 값진 자양이 되게 해야 된다는 뜻으로서 깊게 새기고 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친다”는 이 셋 가운데에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소홀히 하거나 관리가 부족하다면 그의 차량은 완전한 기능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된다. 차량 그 자체가 완전한 기능을 잃을 때 어떻게 많은 병력이나 다량의 군용물자를 원활하게 수송할 수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수행자도 위에서 보인 바와 같이 이 세 가지의 부분을 수행의 길잡이로 삼아 먼저 지혜의 눈을 얻어야 하고 그 다음 세상을 크게 밝혀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가르치고 있다.
바닷가 작은 암자에 바람이 스쳐간다.
이 밤에 바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람은 길을 떠날 때 가벼운 몸가짐으로 길을 떠난다. 그러므로 바람은 바다를 딛고 사뿐사뿐 건너간다.
바람은 길에서 돌아올 때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길에서 돌아온다. 그러므로 바람은 섬과 섬을 딛고 징검징검 건너온다. 수행자의 모습과 같은 바람소리가 또 들려온다.
새해 새아침의 붉은 태양을 솟게 하기 위하여 바다는 밤새도록 큰 파도의 몸부림이 있었나보다. 수행자의 아픈 고뇌 위에 떠오르는 그 빛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