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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에게 계율은 생명과 다름없지요- 해동율맥 11대 율사 수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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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의 현장을 찾아서 - 박원자 2001년 12월 238호

수진 스님에게 ‘나의 행자시절’을 취재하러 갔다가
율맥전수식의 모습을 함께 하게 되었다. ‘행자 이야기’가 ‘계율이야기’로 바뀌게 된 이유이다.
근래에 드문 경사스런 일인지라 지면도 늘리고 현장감도 아울러 살리는 의미에서 대담·정리하게 되었다.
- 편집자 주-

지난 11월 10일 담양 용화사 도량에선 근래에 보기 드문 전수식이 거행되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담양 용화사 주지인 수진 스님이 해동율맥 11대 율사를 전수받은 것.
10대 율사인 법홍 스님이 30년 이상을 수지하다가 9대 율사 묵담 스님의 손주상좌에게 전수되었기에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근래 한국불교에 계율에 대한 인식부족과 함께 그 실천의 중요성을 잊고 있는 출가자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오고 있는 터라, 수진 스님의 해동율맥 전수는 더욱 돋보였다.
본지에서는 여러 원로대덕 큰스님들과 오백여 명의 대중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전수식을 치르고 나온 수진 스님을 만나 보았다.

고승대덕에게 전수되어오던 해동율맥의 11대 율사가 되셨는데, 어깨가 무겁겠습니다.
묵담 스님의 손상좌로, 출가하자 곧 그 분의 시봉을 들며 모든 법을 배우고 익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십 년 후에 묵담 스님의 율맥을 전수받으시니 남다른 감회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묵담 큰스님의 엄격하신 교훈을 지금도 생생히 듣는 느낌입니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마다 노스님 영정 앞에서 직접 뵙듯이 여쭈면 바로 대답해 주시곤 합니다.
큰스님의 엄격한 가르침이 아니었으면 오늘날의 제가 있을 수 없었겠지요.
그리고 여러 선배 스님들께서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수행한 도반들과 뒤에서 밀어 준 후배 스님들, 또 저를 깊이 신뢰해 준 신도분들과 함께 할 때 앞으로도 제가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 불교인들에겐 해동율맥에 대한 이해가 좀 생소합니다.

우리 나라 율맥은 백제와 신라 때의 겸익·자장· 진표 율사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숭유억불정책으로 율맥이 거의 끊긴 상황에 이르렀지요.
그러다가 조선 제23대 순조26년(1826) 칠월 칠일에 하동 칠불선원에서 석가여래 69세 법손 연담 스님의 손상좌
대은 스님이 동국의 계맥이 거의 끊어짐을 탄식하여 스승이신 금담 스님과 함께 7일 7야를 불상 앞에서 걸계乞戒했는데,상서로운 빛이 대은 스님의 정수리에 내리고 차가운 향로에 불이 저절로 붙자 금담 스님께서 부처님의 영험한 신통에 깊이 감복하시고 대계大戒와 구족계를 대은 율사에게 전수한 것이 해동율맥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해동율맥은 중국이나 남방 율종에서 받아온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스님이 직접 기도하시어 부처님으로부터 친히
서상수계瑞相受戒한 점에서 길이 세계 불교사에 남을 율맥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일타 스님은 해인총림 율원에서 1991년 간행된 《계율과 수행》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중국에서 율법이 점점 쇠해져 원·명 시대에 전형典型이 다 없어지자 고심여향古心如響 (1541-1615) 스님은 오대산을 도보로 예배하면서 문수 보살에게 직접 스스로 수계할 것을 발원하여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보살을 친견하고 가사를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중국의 계법을 중흥시킨 바 있다.
조선 후기에 대은 율사大隱律師(1780-1841)는 스승 금담錦潭 장로와 함께 지리산 칠불선원에서 안거하다가 우리 나라의 계맥이 모호함을 탄식하고 자장慈藏 진표眞表의 성별수계聖別受戒를 흠모하여 7일기도 끝에 서상수계瑞相受戒로 우리 나라 계맥을 새로이 정립하게 된 것이다.
이는 대은大隱·금담錦潭· 초의草衣·범해梵海 ·제산霽山에게 이어져 마침내 용성龍城 스님에게로 전계傳戒 되었던 것이다.
또 범해 스님 밑으로 호은虎隱·금해錦海· 만암曼庵 스님 맥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없어진 계법을 기도를 통하여 스스로 수계하여 중흥시킨 것으로 이는 대승보살계법의 복고수계復古受戒의 방법으로 형식을 중요시하는 남방계법과는 또 다른 계맥이라 하겠다.”
이번에 수진 스님에게 전수된 계맥은 범해·제산·호은· 금해·만암·묵담·법홍 율사를 거친 것이다.
묵담 스님은 금해 스님을 18년간 시봉하며 경율론經律論 삼장과 각종불사 예식절차를 이어받은 분으로 조계종 5·6·7대 종정과 태고종 2·3대 종정을 역임했다.
만암 스님은 조계종 3·4대 종정을 역임했으며, 10대 율사 법홍 스님은 현재 원효종 종정이다.

스님의 출가수행의 길에 있어 묵담 노스님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을 텐데, 묵담 노스님과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셨는지요.

서예가였던 제 종조부가 노스님과 친분이 있었는데, 노스님께서 ‘혹 가족 중에 중노릇할 만한 아이가 있으면 보내라’고 하시며 당신이 공부를 잘 시켜서 훌륭한 중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시자, 마침 종조부댁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저를 묵담 노스님께 친견시켰고, 그게 출가인연이 되었습니다.

1973년 해인강원을 졸업하고 중강을 거쳐 해인사 선원과 경봉 스님, 서옹 스님 회상에서 참선공부하다가 묵담 노스님 회상에 있게 된 동기는요.

선방에 있으면서도 해제철에는 용화사에 내려와 노스님 시중을 들곤 했는데,한 번은 노스님께서 ‘이젠 강원도 끝냈고 선원도 다니며 만행도 할 만큼 했다.
내가 나이도 많고 너도 또한 앞으로 중생을 교화하려면 예식절차를 배워야한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렇게 몇 차례 말씀을 하셔도 제가 자꾸 선방에만 가려고 하니까 조용하고 엄중하게 나무라시며 ‘이제부터는 용화사를 떠나지 말고 계율공부를 철저히 하고, 복장의식, 예수재,수륙재 등 예식절차를 익히라’고 하시더군요.
노스님에 의해서 중이 되었고 또 스님의 연세도 연만하시어 시봉하는 게 좋겠다 생각하고 1~2년 모시다 보니까
1981년 임종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청정율사였던 묵담 노스님께선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계율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지 않으셨고,그에 따른 여러 일화가 많은데요.

노스님은 편법을 모르는 분이셨습니다.
매사에 원리 원칙대로 해야지, ‘그냥 넘어 갑시다,’
‘그냥 먹읍시다,’
‘그냥 그대로 합시다’ 하는 등의
‘그냥’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저도 되도록 원리 원칙에 충실하려고 하지 대충주의는 싫어합니다.
마음에서 말이 나오므로 한 번 약속한 것은 몇 년이 되어도 잊어본 적이 없는데, 이러한 것도 노스님에게서 배운 정신이지요.

노스님의 어떤 부분을 가장 많이 닮은 것 같습니까.

염불하는 소리가 닮았다고 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대중 앞에 섰을 때 당당한 모습도 닮았다고 합니다.
노스님을 그대로 다 따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계율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가르치셨던 노스님의 언행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과 율에 능통하고 이사理事를 겸전한 당대 선지식이었으며,근대불교에서 불교의식의 일인자였던 묵담 스님에게
수진 스님은 복장의식,수륙재, 영산재, 보살계, 가사불사 등 각종의식을 전수받았고, 특히 복장의식 분야에선 권위자로 통한다.
운주사 천불천탑의 지장 보살, 금산사 열한 부처님, 해인사 보현암 탱화, 운문사 부처님 등이 수진 스님에 의해
복장의식이 치러졌다.

불교의식을 철저히 익힌 수행자가 드문 것이 현재 불가의 현실인데, 출가자에게 불교의식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수행자는 수행과 교화를 겸비해야 합니다. 수행승은 철저한 계율에 입각해 염불, 간경, 참선에 힘을 쏟아야 하며 교화승은 교육, 포교 등 중생교화에 뛰어들어 그들과 동고동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행과 교화를 병행해서 중노릇할 수 있어야 진정한 수행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불교의식은 중생을 교화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스님께선 각종 불사에 저를 데리고 다니며 의식을 가르치시면서, ‘내가 전한 법에서 더 만들지도 말고 없애지도 말고 잘만 지키면 빛이 날 것이다’라고 하셨지요.

오늘날 한국 불교가 계율정신이 해이되어 승풍 진작에 힘써야 한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율사 스님으로서 이 시대 율정신은 어떠해야 하는지, 또 실천방안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수행자에게 있어 계율은 생명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계율을 지키지 않고는 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없음은 물론 수행을 한다 하더라도 헛수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전수식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온전한 계는 온전한 마음이요, 온전한 마음이란 곧 선한 마음’ 입니다. 선악을 잘 선택하고 착한 마음을 잘 유지하여 실천하는 것이 곧 계입니다.
모든 것이 열려 있는 요즘엔 계만 지키기만 해도 큰 공덕이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때로는 외출해서 먹고 자야 하는 상황에 있을 때 된장국 먹고, 잠잘 때 방심을 금해야 하는 것이 수행자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계의 실천이 되겠지요. 혹 율법이 잘 알려지지 못할까 염려하셔서 당신이 돌아가더라도 후계자가 나타나 이 녹음을 들을 상좌가 있으리라 예견하시고 《범망경》 전질을 진공관식 큰 테이프에 녹음해 두셨던 노스님의 마음을 이제야 헤아릴 것 같습니다.

이번에 용화사에 아일다阿逸多 율원을 개원하셨지요.

묵담 노스님께서 용화사를 창건하실 때 미륵세상을 염원하시어 용화사라고 명명하셨듯이, 용화회상은 미륵부처님의 교화정토이기 때문에 미륵이란 말을 따서 아일다 율원이라고 이름했습니다. 우리 불가에 해인사 율원, 송광사 율원, 파계사 영산율원 등이 있는데, 다른 율사 큰스님들과 정보교환을 해서 인재를 길러 나갈 생각입니다.

전수식에서 전계사 말씀을 하시던 법홍 스님께서 흘리셨던 눈물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후계자 문제도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불법의 역사는 흐르는 것 아닙니까. 10대 율사께서도 율맥을 30년 동안 유지해오셨듯, 앞으로 긴 시간을 두고 수행과 동시에 유능한 후계자를 길러서 율맥과 함께 부처님 법이 영원히 유지될 수 있도록 신명을 바칠 생각입니다.

율사로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일에 힘을 쏟을 생각이신지요.


불명갖기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율문에도 있듯 계를 받아야 성불할 수 있고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 새싹포교에 힘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법홍 노스님께서 수진 스님을 11대 율사로 지목한 까닭으로 신심이 깊고, 부지런하며, 타의 모범이 되는 청정승의 길을 선택해 준 점을 들었듯, 어른 스님들께 계행이 엄정하고 신심과 원력이 견고하며 수행이 여법한 수행자로 평가받고 있는 수진 스님. 한 삼십 년 후쯤엔 누가 해동율맥을 이으며 12대 율사로 태어날까. 수진 스님의 빠르고 힘찬 걸음걸이 속에서 쉼없이 흐르는 역사를 보는 듯했다.□